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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무소에서 저소득 서민자금도 받고 은행융자도 받을 수 있는대로 받는 등 여기 저기 돈을 긁어 모아 그때는 허허벌판이었던 곳인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평생 맡아보지 않았던 어떤 냄새 때문에….

샐러리맨 가장을 두고 15년 동안  알뜰살뜰 살림만을 하는 전업주부로 살았던 적이 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운다고 주인이 싫어해서 이사를 하고, 쌈짓돈을 보태 약간 넓은 방으로 가기도 하는 등  결혼생활동안 13번 이사를 했다. 그래서  간신히 마련한 30여평의 집에서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두 다리 뻗고 아이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마음대로 켜도 누구 뭐라하는 사람없이 단란하게  잘 살아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폭풍이 부는 바다이듯이 어느 날 내가 탄 가정이란 배는 전복되고 세상이란 망망대해에서  홀로 헤엄치기를 해야 했다. 졸지에 의료보험도 없이 사글세방에서 한 동안 살다가 잘 아는 사회복지사의 안내로 중증 2급장애인으로 등록을 하고 11평의 영세민임대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기초수급자들이 많이 사는 임대아파트가 있는 신흥동네는 이곳 소도시에서 넓은 평수의 고층아파트가 많아서 부자동네로 인지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 임대아파트가 있는 작은 단지는 어떤 섬처럼 인지되고 유리되어 있었다.

유리된 만큼 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물살이 센 강물에 흐르는 뗏목처럼 끈끈한 유대가 형성되고, 여름이면 모두 대문을 열어놓고 살았으며 누구 누구 집에 수저가 몇이고, 어떤 손님이 왔다 갔는지는 대부분 알았다.

혼자 직장 다니는 휠체어 여성장애인을 위해 어떤 할아버지는 아침 저녁으로 미리 아파트 마당에 나와있다가, 차를  타거나 현관계단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거나, 이웃들은 정해진 요일에 배달되는 계란이나 화장지 등 혼자 사기 어려운 물건들도 대신 사서 갖다 주기도 했다.

그 아파트에 이사를 처음 갔을 때가 선명히 기억이 난다.  내 또래 되는 눈웃음 많은 아저씨가 공사장에서 다리를 다쳤는지 집 밖에서 지팡이를 짚고 산책을 하다가 옆 집으로 이사오느냐고 웃으며 반겨주었다. 주택가가 아닌 아파트 단지에서 옆 집에 이사오는 사람에게 말을 붙이고 인사를 하는 풍경이 드문 세상이기 때문에 고마웠다.

그 후 아저씨는 가끔 한 번씩 누군지 모를 아줌마와 데이트 하는 모습도 간혹 눈에 띄었고, 동네 할아버지와 장기판을 두는 모습도 보였다가 어둑어둑한 늦가을의 어느 날에는 까만봉지에 소주를 두어 병 들고 쓸쓸히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눈이 유독 많이 내리는 겨울 날, 갑자기 집 안에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마침 아파서 학교를 휴학하고 내 곁에 온 큰 딸이 아침이면 더욱 핼쓱한 표정이 되어 "엄마! 우리 이사가면 안 될까?" 했다. 넓은 집에서 아빠랑 살다가 가난한 작은 내 집이 싫은가 보다 싶어 이유를 묻지 않았다. 돈이 수중에 없으니 할 수 없었지만, 굳이 정들이 넘쳐보이는 이 동네를 떠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소설 대설도 지났는데 이상하게 한 여름날 시궁창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갑자기 파리와 모기가 생겨서 파리잡기가 바쁘고 모기향을 한겨울에 피우고 자야 했다.  냄새는 점점 더 심해졌다. 아랫집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인가 싶어 매일마다 싱크대하수구와 욕실에 유한락스도 부어보고 벽에 방향제도 뿌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외출을 하려는데 대문이 열리지 않았다. 간신히 문을 조금 열어보니 우리집 앞에 하얀 방제복과 마스크를 쓴 보건소 사람들과 경찰들이 옆 집의 세간들을 모두 꺼내고 부수고 철거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서둘러 큰 딸을 불렀다.

"이게 무슨 일일까? 옆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어…!"

큰 딸이 밖에 나가 동정을 살피고 들어와서 전해주었다.

"엄마! 옆 집 아저씨가 죽었대! 그것도 한 참 되었나봐… 사실 밤이면 옆 집 아저씨가 혼자 방바닥이나 벽을 두드리면서 우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에 그동안 내가 잠을 못 잤어! 엄마는 소리를 못 들으니까 모르잖아?  그래서 자세히 이야기를 못하고 그냥 너무 신경쓰이고 공부안되고 싫어서 이사를 가자고 했던 거야!"

옆집 아저씨는 이혼하고 혼자 막노동을 하고 살았는데 나름대로 혼자라도 열심히 살려고 무진 애를 쓴 것 같다. 그러나 독거의 외로움과 툭하면 빚 독촉하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인생의 패배자라는 자괴감에 날마다 소주를 벗하다가 간이 손상되었고, 변변한 간경화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쓸쓸히 세상을 떠났고 한참 후에야 발견된 것이다.

보건소 사람들과 경찰들이 옆 집을 깨끗이 치우고, 대문을 보름 가량 그냥 열어 두더니 관리실에서 도배를 했다. 도배를 하고도 한참 동안 문을 그냥 열어 두더니 어느 날 입춘이 시작될 때 새로운 입주민이 영문을 모른 채 그냥 오랫동안 집을 기다렸던지 무척 즐거워 하며 들어왔다.

그러나 바로 옆집인 우리 집에는 모기와 파리는 서서히 없어졌지만 자꾸만 밤이면 옆 집 아저씨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면 딸아이가 예민해졌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나는 이사를 준비했다. 벽에 배여 없어지지 않는 냄새의 정체를 안 이상, 그리고 수능준비하는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그 집에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 때는 잠을 못 이루게 할 정도로 지독했던 냄새였지만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그 냄새의 기억으로 해서 딸은 그 동네를 지나가더라도 그 아파트는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애써 쳐다본다. 그 아저씨가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다면  아마 저 하늘의 존재가 희미한 별이 되어서라도 누군가를 바라보지 않을까 싶다.

내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아저씨가 병들어 혼자 저 세상으로 쓸쓸히 떠나면서 남긴 지독한 냄새가 아니다. 우리가 이사할 때 반겨 맞아 주던 따스한 이웃으로서의  웃음과 쓸쓸히 빈 집으로 들어가는 세상살이에 지친 누구나가 보일 수 있는 외로운 인간의 뒷모습이다.

아마 지금도 세상의 하늘 아래 어떤 지붕 안에서 가족없이 혼자 소주병을 기울고 사무치게 그리움과 외로움의 쌍곡선에 깊이 잠겨 울거나, 혼자 아픈 배를 얼싸안고 방을 뒹굴거나 하면서 그렇게 쓸쓸히 세상과 이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언제 어디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픈 냄새가 우리에게 다가오는지는 전혀 예측을 못하고, 닭장 같은 아파트 단지나 다세대공동주택의 위, 아래, 옆 집 등에 거주하면서 옆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모르고, 구동백 같은 살아있는 순수한 바보아저씨의 드라마를 보고 웃거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요살스러운 미소처럼 섬찟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치킨다리를 뜯거나 하면서 지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냄새이야기 공모



태그:#사람의 냄새,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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