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6년 여름,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으로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베로니크 쿠르조 에 대해 프랑스 법원이 18일 결국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지난 9일부터 프랑스 엥드르 에 루아르 중죄재판소에서 시작된 베로니크 재판에 대해 프랑스 여론은 '임신거부증'에 의한 병적행위라는 동정론과 의도적 살인이라는 단죄론으로 팽팽히 맞서왔다.

판결에 앞서 프랑스 서부 투르 지방검찰청의 필립 바랭 검사는 17일(현지시간) "베로니크 쿠르조를 악마로 만들어서도 안 되지만 더는 우상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며 징역 10년을 구형한 바 있다.  

베로니크 쿠르조의 영아살해사건 내용을 다룬 2007년 Aujourd'hui 보도
 베로니크 쿠르조의 영아살해사건 내용을 다룬 2007년 Aujourd'hui 보도
ⓒ Aujourd'hui

관련사진보기


2006년 한국-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한 영아살해사건

2006년 7월 23일, 한국에 발령 근무 중이었던 프랑스 엔지니어 장-루이 쿠르조는 서울의 자기 집 냉동고에서 플라스틱 종이에 싸인 영아 시체 2구를 발견했다. 아연실색한 그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아내인 베로니크와 두 아들은 프랑스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이틀 후인 25일 장-루이 쿠르조는 DNA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결과 시체로 발견된 영아의 부모는 쿠르조 부부였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8월 22일 쿠르조 부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국 정부의 실수와 음모의 희생자라며 도리어 한국 정부를 비판했다.

결국 10월 10일 DNA 재검사를 시행했던 프랑스 측에서 한국의 검사를 공식 인정함으로써 쿠르조 부부는 경찰에 연행됐다. 다음날, 베로니크 쿠르조는 2002년과 2003년에 아무도 모르게 목욕탕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질식사시켰다고 자백했다. 이어 자신이 이미 1999년에 프랑스에서 자신의 신생아를 살해한 경험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3명의 영아살해범이 되었고, 바로 구속됐다.

처음에 공범으로 의심을 받았던 남편 쿠르조는 그의 주장대로 무죄임이 드러나 2009년 1월 23일 면소가 되었다.

베일에 싸인 여인, '엄마' 베로니크

9일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베로니크는 2년 7개월간의 수감생활로 상당히 여윈 모습이었다. 사건이 천하에 공개되었을 당시 38세였던 156cm의 작고 통통한 모습의 여인은 41세가 된 지금 7kg이나 살이 빠진 모습이었다. 사건이 드러나기 전까지 현모양처로 알려졌던 평소 모습대로 그녀는 그동안 모범수의 생활을 했고 일주일에 2번씩 정신치료도 병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년 동안 그녀의 가족들은 한 번도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1주일에 세 번 있는 정기 방문 시 돌아가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그녀를 방문했다고 한다.

소규모 포도 재배자 부모 밑에서 7남매의 6째 딸로 태어난 그녀의 친정 식구들을 비롯하여 시집 식구들은 그녀를 두둔해왔다. 학교 성적이 탁월한 12세와 14세의 두 아들도 하루빨리 엄마와 함께 살기를 고대했다고.

그러나 특히 타인의 눈길을 끄는 것은 남편 장-루이의 헌신적인 아내 사랑이다. 처음에 아내가 자신의 범죄를 자백했을 때 경악심 속에서도 아내를 품에 안으며 보듬었던 장-루이는 재판기간 내내 아내의 죄를 경감해 줄 방법을 모색해왔다.

그런데 베로니크는 왜 자신이 낳은 갓난아이를 죽였을까. 변호인들과 의학계 일부는 그녀가 '임신거부증'이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베로니크 쿠르조 부부
 베로니크 쿠르조 부부
ⓒ TF1

관련사진보기


베로니크의 영아살해는 '임신거부증' 때문?

피임을 하지 않았던 베로니크가 여러 번 임신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녀의 정신상태. 아이를 둘 낳고 난 이후 그녀는 자신의 임신 가능성을 부정한 상태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임신이 된 상태이지만 머릿속에서는 자신의 임신을 부정했다는 것인데, 이것을 의학에서는 '임신거부증'이라고 부른다. '임신거부증'은 의학계에서조차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병이다.

'임신거부증'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임신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임신이 된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때문에 임신중절이나 피임도 생각지 않는다. 베로니크는 2006년과 2007년에 자신을 담당했던 정신과 의사에게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난 내가 임신이 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므로 태아에게 말도 건네지 않았다. 내 두 아들인 쥘과 니콜라의 경우와는 달랐다."

'임신거부증'에 걸린 환자들은 실제로 배도 부르지 않고 생리도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육체가 정신에 의해 완전히 지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뱃속에 있는 태아도 마치 엄마의 정신 상태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밀항자처럼 뱃속 깊이깊이 숨어버린 상태에서 부피가 아니라 길이로 몰래 성장한다.

때문에 '임신거부증'에 걸린 사람들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 주치의까지도 이들의 임신을 눈치 채지 못한다고 한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아내의 잠옷 색깔은 기억해도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임신 거부증'에 걸린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는데 바로 그 순간부터 배가 불러오고 태아도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된다고 한다.

한 중년여인은 15일 밤 <프랑스2> TV에서 방영된 '냉동 영아' 특별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20대 초반, 나도 '임신거부증'에 걸린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주치의를 방문했는데 내가 임신 7~8개월쯤 되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난 기절초풍하도록 놀랐다. 그동안 배도 부르지 않았고 아무런 임신 증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의사에게 납작한 배를 보이려고 일어섰더니 그 순간부터 갑자기 배가 마구 불러왔다. 8개월 임신한 여자의 배처럼 불러오는데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여인은 어렸을 때 친오빠에게 근친상간을 당한 경험이 있어 무의식적으로 육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억압하고 살았음이 드러났다. 이 여인은 이후 정상적으로 태아를 출산하고 이 외에 두 명의 자식을 더 낳았다.

위 여인과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임신거부증'에 걸린 사람들은 출산 때까지 자신의 임신 사실을 모르고 지낸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해산을 하게 되는데,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영아를 살해하거나 쓰레기통 혹은 후미진 정원 구석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희한한 병 '임신거부증'

6월 9일 재판에 나선 베로니크 쿠르조를 다룬 '24heures' 보도.
 6월 9일 재판에 나선 베로니크 쿠르조를 다룬 '24heures' 보도.
ⓒ 24heures

관련사진보기

'임신거부증'이란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의학문학에서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병의 기원을 더 오래 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600년 전 브르타뉴 지방에서 영아살해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그것. 그러나 구체적 자료의 부족으로 오늘날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지 아닌지,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프랑스에는 '임신거부증'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협회가 있는데 이 협회에서는 매년 프랑스에서 1600~2000여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임신거부증' 환자 모두가 영아살해라는 극단적 행동을 보이지는 않는다고.

'임신거부증'은 반드시 첫애인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나이나 사회, 가정환경과 관계없이 모든 연령, 모든 계층의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데 보통은 애를 낳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경우일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내성적이고 말이 별로 없으며 그다지 만족하지 못한 결혼생활(성생활)을 하는 여성에게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 병에 걸린 여성들은 대부분 가족들과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낸 공통점이 있다고 하는데 베로니크 쿠르조의 경우도 바로 이 케이스에 속한다는 주장이다.(대가족이지만 외롭게 혼자서 소설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베로니크는 혼자만의 성을 쌓으며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멀리하며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810년 프랑스 형법은 영아살해를 특별범죄로 지정해 형벌을 가해왔으나(Infanticide, 영아살해라는 법적인 용어 사용) 1994년부터는 일종의 '과실치사'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산모가 사건을 미리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2000년 이후 프랑스에서는 8건의 영아살해 사건이 공식적으로 밝혀졌는데 이 중의 2건이 올해 일어났다. 그러나 영아살해 사건 중 어떤 것이 임신거부증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베로니크 쿠르조의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인 6월 12일, 브르타뉴 지방에서 자신의 영아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중이었던 36세의 발레리 세르는 8년형이라는 실형을 받았다. 이미 두 아이의 엄마였던 발레리는 자신의 임신과 해산 사실을 알면 남편이 횡포를 부릴까봐 아이를 살해했다고 밝혔다.
 
베로니크의 영아살해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

장-루이 쿠르조는 아내가 '임신거부증' 환자라는 이유를 들며, 베로니크의 병적 상황을 참작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베로니크 담당 정신과 의사 2명은 "베로니크는 임신거부증 환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임신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출산 상태나 영아 살인 상태, 냉동 보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 새로 이사갈 서울 집에 미리 가서 냉동고를 설치한 점, 사건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무죄를 표명한 점 등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이 병에 걸려 영아살해까지 간 사람들은 즉시 자백을 하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그녀가 살해한 아이를 버리지 않고 몇 년씩이나 집에 보관한 이유를 영아와 헤어질 수 없다는 일종의 모성애의 표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구속 당시 '마녀'로 취급됐던 베로니크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의 동정을 사 왔다. 이 건을 통해 '임신거부증'이라는 병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만 해도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18일 프랑스 법원의 판결이 '징역 8년'으로 나온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베로니크에 대한 동정론이 일부 받아들여졌다고 보고 있다. 당초 무기징역까지 거론됐던 것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형량이다. 배심원들은 7시간 동안의 오랜 심의 끝에(현지시각 오후 8시반) 이런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베로니크 영아살해사건의 진짜 동기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태그:#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 #베로니크 쿠르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