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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초중고등학교 동창이었으니 어지간한 인연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 친구는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진은 영화 <그 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초중고등학교 동창이었으니 어지간한 인연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 친구는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진은 영화 <그 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 그때는그에게안부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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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랜만이었다. 왜 내가 그의 결혼식에 참석을 했는지 생각해 본다. 당시 시골 산골에서 살던 나와 아내는 서울에서 열리는 경조사에 참석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늦가을인가 겨울인가 결혼했던 그놈 결혼식에 참석한 이유는 아마 방배동이라는 위치 때문이었을 거다. 부모님이 사는 동네여서 가족행사나 명절 때 갔다가 며칠 묵고 결혼식에 참석했을 거다.

그 이후로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우리 아이 돌 때 초대했는데 현장이라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던 것 같다. 그놈의 아이 돌 때도 내가 가지 못했다. 아니, 이동의 자유가 있는 나로서는 안 갔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다.

그 결혼식을 되돌아본다. 그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놈의 아내는 예뻤던가, 아니었나? 얼핏 보고 밥을 먹으러 갔다가 사진 찍을 때 간단한 인사만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년 전이던가, 아니 일 년 반 정도 됐겠네.

이 글을 쓰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다. 동네 나이 많은 아주머님, 할아버지, 할머니의 병 소식은 쉬이 듣고 머릿속을 잠깐 맴돌다 떠났다. 그러나 이놈 이야기는 이틀이 되도록 머리를 떠나지 않고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굳이 따지자면 초, 중, 고 동창이었으니 어지간한 인연이긴 하다. 세 번인가 같은 반이 된 것을 기억한다. 오학년 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한번씩. 맞나? 고등학교 때는 아니었던가? 하긴, 고교시절은 거의 기억에 없다. 체육선생에게 심하게 맞던 것과 선도부실 끌려갔던 것. 1학년 때 선배한테 맞은 기억뿐이다. 누구와 함께 그 당시를 나누었는지 별로 기억이 없다.

전화로 실컷 안부를 물었다. 그래, 공격적인 단어가 어울린다. '왜 했어', '거기서 뭐 해먹고 사냐?' 등 상투적 인사말이 오고 갔는데, 내 기대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지리산에 와 있다는 이야기. 의아했다. 서울에 있는 꽤 큰 규모의 건설회사에서 현장관리를 했다. 아파트를 했다, 강남역 근처 빌딩도 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소식을 몰랐는데 갑자기 지리산이라니.

"거기에 현장 있냐?"
"요양하고 있다."
"까는 소리 하네. 요양은, 무슨. 현장이지?"
"진주에 있다가 이리로 요양 왔어."
"뭐 짓는 현장이냐."
"나, 암 걸렸다."
"…"
"수술 받고. 항암치료 받는 중에 요양 왔다."

"새끼, 그러게 조심 좀 하며 살지"

한참 만에 마음을 다잡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부신암. 처음 들어보는 장기의 이름과 그 단어 끝에 암이라는 단어를 조합하기가 매우 어색했다. 사진은 영화 <그 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한참 만에 마음을 다잡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부신암. 처음 들어보는 장기의 이름과 그 단어 끝에 암이라는 단어를 조합하기가 매우 어색했다. 사진은 영화 <그 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 그때는그에게안부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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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멍해졌다.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했다. 차분하고 담담한 그의 목소리가 장난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하긴 누가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거짓이나 농을 하겠는가. 내 전화응대는 이후 한껏 누그러져서 그간의 경과와 어떻게 '치료' 받는지, 어떤 부위의 암인지를 물으며 오고 갔다. 친구는 요양원이 불편해서 집을 하나 얻었으면 한다고 했다.

마침 시골 촌구석에 산다는 내가 생각나서 전화한 차였다. 마을 자연환경이 어떠한지, 빈집이나 세를 얻을 곳은 있는지를 묻고는 한번 놀러오겠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한숨이 길게 나왔다. 하긴, 이제 젊은 나이는 아니니까. 왜. 왜? 벌써. 나는 잘 모른다. 지금 1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내 동기들은 힘들다.

가끔 이곳 자연을 주제 삼아 문자라도 주면 '네 팔자가 매우 부럽다'는 말이 대부분인 그들이다. 덧붙여 자신의 처지를 낙관하는 이는 별로 되지 않는다. 대부분 과장, 차장 등의 자리에 있는 그네들은 윗사람 비위 맞추랴, 넘치는 과업에 치이고 아랫사람들을 잘 다루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책임지고 있다. 넘치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자식은 어리고 앞으로 창창한 날들이 부모에겐 부담이다. 유치원 때부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교육에 관한 문제부터, 장기 융자로 산 집의 빚 갚기까지 하나같이 부담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경제 한파로 더 커졌다.

한참 만에 마음을 다잡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부신암. 처음 들어보는 장기의 이름과 그 단어 끝에 암이라는 단어를 조합하기가 매우 어색했다. 부신피질호르몬이라는 단어는 들어봤어도 그곳에 암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검색사이트에서 검색자료들은 담담하고 딱딱한 의학용어들을 나열하는데 내 눈은 '악성'이라는 글자에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었다. 가슴에 한줄기 바람이 부는 듯했다. 싸하니 아렸다.

"새끼, 그러게 조심 좀 하며 살지."

하긴, 나도 별로 신경 안 쓰고 살고 있으니 남한테 그 말 할 처지는 아닌 듯하다. 30도를 넘는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반팔 티셔츠 밑으로 비죽이 나온 양팔에 갑자기 서늘함이 느껴졌다.


태그:#친구에게, #암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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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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