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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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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게 다 전화 한 통 때문이다. 지난주, 편집국으로 전화를 걸어온 이는 동국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미국인 교수였다. 미국의 전 상원의원이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에 왔는데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내 목소리에 큰 관심이 묻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한국인의 촛불시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배척되는 현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경험에 비춰봤을 때, 한국의 촛불시위를 아는 미국인은 드물었고 그 이유까지 아는 이는 희박했다. 하물며 그 의미를 이해하는 외국인을 만나는 것은 청와대에서 소통을 찾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니만큼 <오마이뉴스>에서 꼭 관심을 가져달라."

약간의 호기심이 일어나는 찰나, 그가 마무리 펀치를 날렸다. 무슨 연유로 그가 민주주의와 <오마이뉴스>를 연결 지었는지는 묻지 못했다. 그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처럼 인터뷰이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 적었다. 마이크 그러벨(Mike Gravel) 전 상원의원. 79세. 그리고 연이어 도착한 이메일을 통해 그에 대한 몇 가지 자료와 웹사이트 주소(www.mikegravel.us)를 받았다.

웹사이트를 열자 그의 이름 옆에 있는 '국민이 결정하게 하라!'(Let the People Decide!)는 구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이쿠, 그는 직접민주주의 운동을 하는 활동가였다. 과문한 탓인지, 고등학교 교과서에나 잠자고 있는 줄 알았던 '직접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대명천지에 세상을 활보하고 있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사실, 인터뷰 석상에서 그가 빛바랜 상원의원 명함을 꺼내 든다고 주눅들 내가 아니다. 한때는 우리도 '국민이 대통령' 아니었던가. 다만, 상원에서 18대 1로 싸웠다는 식의 무용담이나 듣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을뿐더러, 인터뷰 후 기사를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는 상황은 피하고자 그의 웹사이트를 사전답사했던 것이다. 노병(老兵)인가 의심했더니 노혁명가(老革命家)였던 셈이다.

자유를 쥘 수 있는 열쇠는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국민발의'

ⓒ 웹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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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에 있는 한 호텔에서 만난 마이크 그러벨씨는 눈빛이 선한 백발의 노신사였다. 자비를 들여 한국에 왔다는 그는 작은 객실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비용 때문에 부인과 같이 올 수 없었다며, 자신은 부자가 아니라면서 웃었다. 두 달의 체류 일정을 마치고 오는 11일 미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지만 9월에 다시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국민발의'(initiative)를 전파하고자 한국에 왔다고 했다. 학창시절 한 번씩 들어봤음 직한 '국민발의'는 국민이 직접 헌법개정안이나 중요한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절감한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다.

그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촛불집회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지난해 거리를 달구었던 촛불집회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웹사이트에 올린 '한국의 현 세대가 운명과 랑데부하고 있다'는 글에서 촛불집회를 "국민의 주권적 권력의 자연분출적 발로에 더 가깝다고 느꼈으며 대의정부의 가부장적 거만함에 대한 정치적 분노의 한 형태"라고 분석했다.

쉽게 말해, "'시위'란 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몸에 질병이 있으면 열이 나기 마련인데 그 열은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해석이 곁들여졌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의미를 명쾌하게 해석한 그는 2000년 전 고대 로마 정치가의 말을 인용했다.

"키케로가 '자유'를 '권력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만약 당신이 권력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면 자유가 아니라는 말이고 단지 권력의 대상일 뿐이라는 의미다. 권력이란 '입법'이다. 입법기관에서 법을 만들지 않나. 그게 바로 힘이다."

즉, 남이 만든 규칙을 따르느냐 아니면 내가 규칙을 정하느냐가 '권력'을 결정하게 되고 그 권력이 자유를 규정한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자유를 경험하려면 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쥐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끊임없이 반복될 뿐인 시위는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자유를 쥘 수 있는 열쇠는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국민발의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인용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실현되었다고 말했지만 결코 사실이 아니다. '국민의 정부'는 대의정치제도에서, '국민을 위한 정부'는 민주주의에서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국민에 의한 정부'는 실현되지 못했다. 지구상에서 이를 실현한 유일한 국가는 스위스다."

그러나 현존하는 국민발의 모델은 스위스지만, 따라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니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대의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약점이 있으며 그 과정이 지루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다른 국가에는 적합하지 않고 오로지 스위스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모델의 국민발의가 가장 유력한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그 첫째 이유로 한국인들은 정치적으로 정부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꼽았다. 촛불집회의 예에서 보듯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통해 대표자들을 압박하는 투박한 방식은 직접 법을 만듦으로써 정책을 바꾸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도구로서 한국 헌법은 미국 헌법보다도 훨씬 우수하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는 미국 헌법에도 없는 조항이라는 것이다. 헌법 개정을 비준할 수 있는 주체는 국민뿐이라는 명확한 선언은 국민발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준비한 자료를 넘겨가며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에 넘쳤다. 그의 손가락에, 목소리에, 그리고 무엇보다 눈동자에 신념이 배어 있었다. 한국의 국민발의 가능성에 한국인보다 더 애착을 보이고 있는 그에게, 미국보다 한국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것 아니냐고 슬쩍 딴죽을 걸었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첫 번째 정체성이 '세계시민'임을 자랑스레 설명했다. 미국시민이기 이전에, 자신이 속한 주의 주민이기 전에, 자신은 동등한 세계시민 중 한 명이라고 했다. 따라서 한국에 와서 이렇게 활동하고 다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꼭 이루고자 하는 바이며, 한국은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진 나라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그는 만약 한국에서 국민발의가 성공하면 3년 이내에 미국을 포함한 G20 국가의 절반이 따라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국가들의 통치방식에 일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만족하지 못한다면 위임을 끝내고 경영 참여를 고려해야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학은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 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며 작가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했고, '비도덕적인 권력이 지식인들의 정의로운 외침을 힘으로 억누를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지키기 위해 교수들도 나섰다.

마이크 그러벨씨가 제안한 '국민발의'가 한국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차례의 발열을 통해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는 우리 몸에 막대한 양의 해열제만 쏟아부으려는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니면 더 근원적인 문제를 다스리기 위해 수술을 검토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를 일컬어 민주주의라 한다면 그 이상과 우리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그러벨씨의 제안은 주목할 만하다. 국민을 단지 몇 년에 한 번 정도 표를 던지는 행사의 손님으로 인식하는 상황이라면, 이제 위탁이나 위임을 끝내고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국민발의'에 수반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나 절차상의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질문이 자연스레 뒤따랐다. 이런 지적에 그는'입법절차법'을 내밀었다. 수많은 학자와 연구자들이 모여 다년간의 연구 끝에 만든 일종의 시안이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궁금해할 거의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법절차법'을 공개해도 되는지 물었다. 간단명료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내가 썼지만 내 것이 아니고 세계인의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자신이 상원의원이었을 때는 사무실에만도 50여 명의 사람들이 있어 도와주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모든 것을 혼자 하려니 늘 시간에 쫓긴다고 했다. 한국어로 웹사이트도 만들고 싶은데 자원봉사로 모든 것을 꾸려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듯했다. 그렇지만, 비록 돈은 없어도 '매우 행복하다'고 했고 이 모든 일의 원동력은 '사랑'이라며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세계인의 지성을 모아 '사람 사는 세상'에 적합한 정치 모델을 연구하는 정치인 출신의 활동가일 수도 있다. 그가 하는 일은 그저 적합한 토양을 찾았다며 잊고 있었던 과실의 씨앗을 전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씨앗을 심고 물을 주어 키워나가야 하는 주체는 바로 그 열매를 맛볼 이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한때는 온 국민이 줄기세포를 연구하더니 또 한때는 광우병에 대해 '열공'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이어졌다. 이제는 민주주의다. 그리고 이번엔 공부할 것이 더 많다. 이 모든 게 다 전화 한 통 때문이다.


태그:#국민발의, #마이크 그러벨, #촛불시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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