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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의 예능 프로그램 '스타 골든벨'을 보면서 가장 특이하고 재미있는 꼭지는 정니콜씨가 문제를 설명하는 "눈높이를 맞춰요" 꼭지이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연예인이 속담이나 영화제목, 사물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설명하고 그 설명을 듣는 상대방은 완전히 다른 인지구조와 설명방식 때문에 일순간 당황하지만 찬찬히 그의 설명을 해석해냄으로써 문제를 푸는 모양새가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정니콜씨가 설명하는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오락프로그램으로서도 재미있지만 학문적으로 접근해도 정말 재미있는 얘기가 나올 것 같다. 나는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라서 더 깊게는 못들어가겠지만 언어학자, 기호학자, 인지심리학자, 국어학자, 그리고 영어학자, 교육학자들이 함께 연구해도 괜찮을 연구거리라고 생각한다. 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신 분들이 더 잘 설명해주시리라믿는다.

외국에서 자라서 외국문화에 둘러싸여서 자란 이들이 한국어권으로 들어와서 한국어를 사용하게 될 때 한국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지에 대한 좋은 사례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건 세계화시대라는 환경에 비추어볼 때 영어나 외국어를 우리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울 것인가라는 화두만큼이나 외국인이나 해외동포들이 우리말을 어떻게 배우고 받아들이게끔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정니콜씨가 문제를 설명하는 방식을 몇 가지로 분류해보자. 전체적으로 그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글자를 하나나 둘씩 끊어서 그 글자를 설명하고 상대방이 끌어내서 다시 조립(?)해서 낱말이나 문장을 만들게끔 한다. 그것이 전반적인 방향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는 글자의 모양새를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왕이 모자를 썼어요'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왕이 모자를 썼다는 말에서 '황'이라는 글자를 연상해내야 한다. 둘째는 십진법이나 영어의 알파벳, 우리말의 가나다 순서 등을 활용해서 몇 번째 나오는 글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정니콜씨는 '가갸거겨고교....' 와 같은 표현을 자주 쓴다. '교'다음에는 '구'가 나오니까 '구'를 유추해내야 한다. 또는 알파벳에서 '시 디 이'에서 디를 빼고 '디'자리에 무엇을 넣는다. 그러면 결과적으로는 '시누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정니콜씨가 지금은 십대 후반의 여성이기 때문에 설명할 때 그런 세대의 정체성, 성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십대 후반의 여성이 아닌 사람들은 그런 설명이 나올 때는 잘 맞히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는 잘 맞힌다. 예를 들어 정니콜씨가 자기가 화장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화장'을 거꾸로 하면 상대방이 여성이면 비교적 쉽게 '장화홍련'이라는 답을 맞출 수 있다.

그러니까 정니콜씨와 전혀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맞히기 어려워져서 무슨 암호풀이나 수수께끼, 또는 선불교의 선문답같은 놀이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정말 외계어인 셈이다. 이런 언어와 암호풀이를 잘 이용한 문학의 장르가 바로 추리소설이고 그 추리소설의 기호학적인 특성을 잘 활용한 소설중 하나가 바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소설의 한대목에서 라틴어로 쓰여진 '아프리카의 끝finis africae'을 누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을 해석하지 못하다가 우연찮게 그 말이 아프리카의'카'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냄으로써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얻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정니콜씨의 설명방식하고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나라 설화나 역사를 보면 이런 언어놀이들이 꽤 된다. 우선 유명한 것은 한자의 파자놀이이다. 시대극 '대장금'을 보면 장금이의 아버지가 어떤 초야선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 선사는 인생에서 세 명의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여자들을 뜻하는 계집 녀자가들어가는 세 글자를 써준다. 그것을 근처 절에 가서 어떤 스님에게 물어보니 그 스님이 그 글자를 풀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그것외에도 조선 태조 이성계가 꿈에 나무 세 개를 지고가니 꿈 해몽하는 사람이 그것은 왕이 될 꿈이라고 해몽해주었다는 설화도 그런 예의 하나이다.

파자 놀이는 한자의 회의나 형성의 원리를 응용해서 만들어낸 얘기들이고, 그것을 우리말의 발음과 뜻에 맞춰 이두식 표기로 적절히 가지고 노는 이로서는 김삿갓이 대표적인 것같다. 김삿갓의 일화들은 우리말로는 야하고 저속한 표현들인데 그것을 한시로 써서 잘난척하는 양반사대부들을 조롱하는 통쾌한 얘기들이 많다. 그래서 김삿갓의 일화들은 한글, 우리말, 한자 사이에 묘한 긴장관계와 거기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위계를 통렬히 비판하는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니콜씨의 설명방식은 우리가 아닌 타자가 우리 문화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리고 정니콜씨가 설명하는 방식을 응용해서 외국인용 한글학습교재나 어린이용 한글학습교재를 만들어도 재밌을 것같다. 한글과 한국어를 놀면서 배울 수 있게 할 수 있지않은가. 특히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미녀들 중 언어학을 전공하는 구잘같은 분이 자기나라 말과 한국말, 한글의 차이, 또 자기나라나 한국의 동화나 옛날 이야기를 응용해서 학습교재를 만들면 아주 재미있는 교재가 나올 것같다.

덧붙이는 글 | 제 시네21 블로그 '사과애'와 사이월드 미니홈피에도 올렸습니다.



태그:#정니콜, #스타 골든벨, #움베르토 에코,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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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영화보고 책보고 글쓰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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