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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했던 6일 오후, 16일째 총파업 중인 평택 쌍용자동차의 4WD 도장공장 앞 화단에  물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 쌍용자동차에서 7년 넘게 일했고 며칠 전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박 씨였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도장공장 앞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도장공장 앞
ⓒ 백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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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해고 통보서를 받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회사와 가족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일한다고 해왔는데 이렇게 됐습니다. 회사 측에서 대상자 선정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열심히 일하던 분들도 많이 통보를 받으셨거든요. 식구가 많은 사람은 대상이 아니라고 했는데 꼭 그렇게 되지도 않았고... 관리직은 대부분 남았구요. 자동차 공장은 숙련공이 매우 중요해서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오래 일하신 분들을 남기고 관리직을 줄여야할 것 같은데...

- 정리해고에 대한 동료들 반응은 어땠나요
여기는 10년 경력은 기본이예요. 저는 오히려 적게 일한 편이죠. 다들 교육비 같이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돈도 많은데 고민이 많죠. 형편이 정말 어려운 동료는 낮에는 식당에 가서  일도 하고 마트에 가서 뭘 팔기도 하고 그래요. 당장 돈이 급한데 어쩔 수 없죠. 벌써 월급이 제대로 안 나온 지는 오래됐으니 다들 형편은 빡빡하지요.

박 씨가 다시 여러 개의 물통에 물을 길어오고 나서 대화를 이었다.

-공장에서 생활하고 계신데 분위기는 어떤가요
공장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게 편하지는 않지만 70미터 굴뚝에 올라가 있는 동료들에 비하면 천국이죠. 도장공장 같은 경우는 먼지 하나라도 들어가면 안 될 정도로 청결이 중요하거든요. 그런 곳에서 밥을 해먹어야 하니 맘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라도 공장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모두 청결히 생활하고 있어요. 음식물 쓰레기는 깨끗이 치워서 혹시라도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있구요. 그렇게 해놔야 하루라도 빨리 일을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곧 일을 시작할 수도 있으니 마음을 다 잡고 있어요.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상태지만 여전히 박 씨는 회사 걱정이 앞섰다.

C100이 나오면 정리해고에서 제외돼 남은 사람만으로 작업이 힘들 것 같은데 회사 측 생각을 모르겠어요. 주야간 계속 돌린다고 해도 어려울텐데. 도장 작업 같은 경우는 불량률이 대단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숙련공이 중요해요. 회사 측에서는 나중에 필요하면 비정규직으로 보충하려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 제대로 생산이 안 될 거예요. 파업이 길어지면 (정리해고) 대상자와 비대상자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도장공장 앞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도장공장 앞
ⓒ 백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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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물 주는 것도 제가 원래부터 해오는 일이니까 하는 거예요. 우리가 파업한다고 꽃들이 목이 말라서야 되겠습니까.

박 씨에게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4WD 도장공장'은 여전히 그의 직장이었다.

노조에서 준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다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온 김종우(39)씨를 만났다. 김 씨와 동료들은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종우(가운데)씨와 동료들
 김종우(가운데)씨와 동료들
ⓒ 백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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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긴 하죠. 멀리 와 있으니까 가족들이 보고 싶어요. 저희는 창원에서 왔거든요. 가족들이 응원하러 왔는데 다시 내려갔습니다.

- '정리해고 사태'가 잘 해결될 걸로 보시나요
잘 해결될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로 사회 분위기도 달라졌잖아요. 안에 있는 저희들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는 염두에 두고 계시지 않나요.
저희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요. 그런 경우라면 한 판 붙어볼 수 밖에 없겠죠. 힘으로 대결해야할 거라는 의견을 말하는 동료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전에 잘 해결될 걸로 봅니다.

70미터 높이의 굴뚝 밑에 물레방아와 바위로 꾸며놓은 작은 연못 앞에는 어린이 세 명이 가볍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내 굴뚝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내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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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내 굴뚝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내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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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예진이(13)와 남동생 시현이(10)는 3주가 넘도록 목소리 밖에 들을 수 없는 아빠가 계속 걱정이다. 예진이와 시현이의 아버지는 25일째(6일 현재) 굴뚝에서 생활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부지부장 김봉민씨다.

왼쪽부터 김예진(13) 최지원(13) 김시현(10)
 왼쪽부터 김예진(13) 최지원(13) 김시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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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이는 아빠가 굴뚝에 올라간 이후 학교가 끝나면 전화기부터 붙잡는다.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 날씨를 알기 위해서다. 시현이는 씩씩하게 아빠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아빠 얼른 승리하셔서 빨리 내려오세요!

- 아빠한테 날씨 알려드리면 뭐라고 하셔?
알겠다고, 고맙다고 하세요. 기상청 번호요? 131번이예요. 아빠 걱정이 많이 돼요. 어떠냐고 여쭤보면 괜찮다고 하시는데 저희가 걱정되서 그냥 괜찮다고 하시는 거 같아요. 정말 괜찮으시겠죠?

예진이는 아빠가 '잘려도' 된다고 했다.

아빠 혹시 회사에서 잘려도 건강하게만 내려오시면 돼요. 가족들하고 같이 여행도 가요.
용돈 못 받으면 어떻게 하냐구요? 괜찮아요. 저 용돈 안 받아도 되요. 아빠만 건강하게 내려오셨으면 좋겠어요.

공장에서 만나 곧 예진이와 친구가 된 지원이(13)도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아빠를 응원했다.

아빠 항상 밝게 지내시구요, 우리 가족도 곧 여행가서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좋겠어요. 회사는 잘못되더라도 같이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쌍용차 평택공장은 옥쇄파업으로 공장 전체가 폐쇄되어 있다. 노동자들이 만든 자동차는 이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바리케이트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그 안의 노동자들은 쌍용자동차를 여전히 자신의 직장으로 생각하고 아끼고 있었다. 도장공장 앞에서 꽃에 물을 주던 박 씨는 '법정관리인도 보고서만 봐서 그렇지 공장 한 번 내려와서 상황을 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거라고 했다.

하늘과 맞닿은 곳에 있는 아빠를 걱정해 시원이는 오늘도 기상청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아빠'들은 밝은 미래를 꿈꾸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3명의 노조원들이 25일째 생활하고 있는 굴뚝 밑에는 누군가가 붙여놓은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하얀 천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들의 목소리에 정부와 회사는 귀를 열어야 한다.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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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민주노총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기획부장

- 쌍용차의 협력사 1,600여개, 영업소 및 서비스 대리점 협의회, 부품대리점 협의회 소속 4,000여명이 5일 오전 평택시 공설운동장에서 '쌍용차 정상화 촉구 결의대회'를 열어 어려움을 호소하고 파업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는데 이에 대한 노조의 입장은.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문제는 쌍용차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쌍용차의 조업 중단으로  일감이 없어서 협력사 및 부품대리점 노동자들이 고용 안정성이 저해되는 부분이 일부 있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경영이 어려우면 쉽게 노동자를 자르는 정리해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쌍용차의 노동자들이 잘려나가면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소리 없이 더욱 많은 분들이 잘려나가게 된다. 정리해고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다면 사측은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사측의 일방적인 해고를 막는다면 협력사와 부품대리점 노동자들 입장에서도 이익이다. 또한 표면적으로는 집회를 협력사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열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회사에 의해 동원된 사람들이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공감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집회가 아니다. 참가 인원이 4,000명이라고 언론에 보도됐지만 실제로 확인해보니 1,500명 수준이다. 쌍용차 사측에 의해 희망퇴직자나 정리해고에서 제외된 분들도 동원됐음을 확인했다.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를 구석에 몰아넣으려는 사측의 계획된 행동이다.

- 모 언론사에서 쌍용차 노조가 볼트투척 훈련을 하고 있다며 노조의 폭력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사실관계를 왜곡하여 파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기 위한 기사다. 모 언론사의 볼트투척 훈련 사진밑 가판에는 사진을 찍은 기자의 이름이 들어 있었으나 나중에는 빠졌다. 그 사진은 기자가 찍은 사진이 아니고 사측에 의해 제공받은 사진을 보도한 것이다. 노조의 문제제기에 의한 것이다. 직접 취재과정도 없이 사진과 사측의 설명만 듣고 작문을 했다. 한정된 정보만 가지고 대단히 악의적으로 쓰고 있다.

- 경영진이 '공권력 투입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겠다'고 한 8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공권력 투입이 될 것으로 보나

예측이 의미가 없다. 들어오면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공장은 특수성이 있다. 도장공장 내부 등 위험물질이 많다. 쉽게 생각하고 들어온다고 해도 쉽게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왔다. 앞으로도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공권력으로 해결한다고 하면 우리도 그것에 맞서는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다.

- 5일 노사정이 참여하는 회의가 있었지만 경찰은 노조간부 9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은 상황이다. 정부가 쌍용자동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뜻이 있다고 보는가.

대화가 제대로 되려면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회사에서도, 정부에서도 찾을 수 없다. 체포영장 떨어뜨려놓고 대화를 할 수 있겠냐. 다만 '체포영장이 발부 되었으니 못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체포영장이나 공권력 투입에 초점을 맞추면 '정리해고 철회' 문제 자체가 소외된다.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정부의 공권력 대 노조의 저항 이라는 논점으로만 좁혀지는 경우가 이미 너무나 많았다. 정리해고 문제 해결이 일순위다. 대화가 잘 되어야 하지만 정리해고 자체가 철회되지 않으면 신차 개발비 조달 등 노조가 제안했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있다. 정부는 책임은 피하고 중요한 결정은 마지막에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쌍용차 문제는 정부가 당연히 해결해야 하는 것인데 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바라는 것을 희망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평택시장도 '대화 없는 공권력 투입'은 반대하고 있다.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한다.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희망퇴직으로 1,500명의 동료들이 눈물을 흘리며 공장을 떠났다. 노조가 약속했던 총고용보장은 달성되지 못했다. 노조의 기본적 요구가 이미 많이 꺾였다. 회사와 정부가 갈등의 극한 값이 어딘가를 확인하려는 것 같아 답답하다. 하지만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마지막 싸움은 미루거나 멈추지 않을 것이다.


태그:#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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