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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아닌데요. 두미도인데요."

경남 통영시에 있는 원량초등학교 두남분교를 가려고, 선생님께 확인 전화를 한 순간 어딘가 '쾅'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원량초등학교 본교는 욕지도에 있다. 본교가 섬에 있다고 하니, 당연히 분교인 두남분교도 욕지도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미도로 가는 정기여객선은  하루 2회 운항된다. 통영에서 욕지도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섬의 모양이 꼬리가 있는 동물의 머리와 비슷하여 '두미도'라 불리게 되었다.

두미도
 두미도
ⓒ 여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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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7일 새벽 6시30분 홀로 배에 몸을 실었다. 규민이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규민이의 아버지는 통영 두남분교 재직 중이신 김윤용 교사다. 욕지도에 있는 원량초등학교 본교에 2년간 교사로 재직했다. 올해 두미도에 있는 원량초등학교 두남분교로 오게 되면서 규민이도 통영에서 욕지도로, 욕지도에서 다시 두미도로 오게 된 것.

두미분교의 전교생은 총 4명. 이들 중 규민이(8)와 유리(12)는 남매이고, 진성이(9)와 현준이(11)는 형제다. 임화천(52) 교사, 규민이의 아버지인 김윤용(38) 교사, 그리고 학교 살림을 책임지고 계신 규민이 어머니 이현미(38)씨. 이렇게 일곱 식구는 통영 원량초등학교 두남분교의 한 가족이다.

전국노래자랑 초대가수 규민이

작년 욕지도에서 병설 유치원을 다니던 규민이의 별명은 '전국노래자랑 초대가수'였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땡벌'과 '무조건'을 즐겨 부른다. 한 곡만 불러달라는 부탁에 약간 쑥스러워했지만, 노래를 안 하면 "서울 못 간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이내 신나게 불렀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땡벌."

듣고 있던 교사들은 "아싸! 아싸!" 중간 중간 추임새를 넣으시고, 다른 아이들은 목청 컷 크게 "땡벌땡벌"을 외쳤다.

규민이
 규민이
ⓒ 여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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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천씨는 규민이와 누나 유리의 담임교사다. 한 교실에 남매 뿐 이라니,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닌 듯 했다.

"누나랑 같은 교실에 있으면, 누나가 모르는 것을 많이 가르쳐줘서 좋아요."

누나랑 함께 공부해서 좋다는 규민이. 아직 선후배라는 개념은 없지만 누나랑 같은 교실에 있어서 좋단다. 아버지인 김윤용씨가 담당하시는 2학년, 4학년의 교실에는 현준이(11)와 진성이(9) 형제가 공부하고 있었다.

임화천 선생님, 김윤용 선생님과 두남분교 학생들.
 임화천 선생님, 김윤용 선생님과 두남분교 학생들.
ⓒ 여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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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학년과 5학년이, 2학년과 4학년이 한 교실에 공부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비슷한 학년이 함께 공부하면 경쟁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해진 반뿐만 아니라, 유동적으로 이동하며 수업하고 있습니다."

김윤용씨와 마찬가지로 임화천 교사도 올해 두미도로 부임하셨다. 김윤용씨 가족과 함께 온 것과 달리, 임화천씨는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학교 뒤편에 있는 사택에 살고 있는 임화천 교사는 규민이네와 학교에서 늘 식사를 함께 한다.

엄마는 우리학교 영양사

규민이네 가족은 원래 통영에서 살았다.

"욕지도도 섬이긴 하지만, 그래도 욕지도는 섬 안에서 다 해결이 가능하거든요. 하지만 두미도는 슈퍼마켓이 없으니까 부족한 게 많아요. 두미도로 들어갈 때 사람들이 '특별시'에 들어간다고 말을 했어요. 군대 간다고 생각하고 3년만 참으라고."

규민이 어머니 이현미씨는 처음에는 규민이 아버지를 따라서 섬에서 산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그렇게 섬에 온지 벌써 2년의 시간이 지났다. 올해만 생활을 하면 섬에서 육지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규민이 어머니는 규민이네 가족이 떠날 후 남겨질 아이들을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에 계시던 선생님들도 잘해주셨지만, 저희가 떠나고 나면 여기서 급식해주실 분이 안 계시잖아요. 휴일에도 진성이랑 현준이가 학교에서 급식을 먹거든요. 어느 날 진성이한테 '라면 먹을까' 했더니, 진성이가 그러던라고요. '이모 저 라면 싫어요'라고. 아이들은 원래 라면을 좋아하는데. 남자 선생님들만 계시다보니 학교에서 급식으로 예전에는 라면을 종종 먹었데요."

규민이 어머니는 타칭, 자칭 두남분교의 영양사다. 학교 왼편에 있는 작은 텃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상추, 청경채, 옥수수,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깻잎 등을 키우고 있다. 농약을 안 쓰는 탓에 벌레도 있지만, 직접 키운 것을 먹는다는 보람도 있다. 텃밭 뿐 아니라 한 쪽 편에는 어제 섬 뒤편에서 따왔다던 미역이 널려 있었다.

"누가 오디 다 따먹었어?"

지나가던 동네 주민이 아이들을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두미도에는 슈퍼마켓이 없어 인스턴트 간식을 거의 먹지 못한다. 그래서 일까. 주변에 보이는 오디, 산딸기, 고구마가 아이들의 최고 간식이다.

산딸기를 따고 있는 유리.
 산딸기를 따고 있는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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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민이 누나인 유리가 산딸기를 내민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두 번째 내밀었을 때, 입에다 쏙 넣었다. 야생에서 자란 산딸기는 그 맛을 잊지 못할 정도로 좋았다.

친구와 축구하고 싶은 규민이

취재를 하러가기 이틀 전 아이들은 중간고사를 봤다. 규민이 어머니 이현미씨의 설명이다.

"규민이와 유리는 백점을 맞았고, 진성이와 현준이는 하나씩 틀렸거든요. 기특한 마음에 시험이 끝나고, '잘했다'는 칭찬의 의미로 두미도에 들어오는 배를 통해 피자 시켜먹었어요. 하지만 이미 두미도에 도착하기 전에 피자가 굳어있더라고요."

그래도 아이들은 좋아했다고. 두미도에서 누나, 형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규민이도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규민아, 친구만나면, 뭐하고 싶어?"
"저 친구 없는데요."

규민이의 그림 일기.
 규민이의 그림 일기.
ⓒ 여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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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민이의 대답이 아련하다. 규민이는 친구를 만나면, 함께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배타고 힘든데 갈 수 있겠나?"

엄마의 질문에 규민이는 "네, 갈래요"라고 대답했다. 배를 타고 통영으로 나갔던 어느 날, 규민이의 그림일기에는 '멀미나'라고 쓰여 있었다. 1학년 어린이에게 한 시간 반 동안 배를 타고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를 만나러 가야하는 먼 길. 배 멀미를 싫어하는 규민이도 '더불어 함께 입학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태그:#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더불어 함께 입학식, #두남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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