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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목) 오후 다시 서울에 갔다가 다음날 오후에 돌아왔습니다. 28일 저녁 7시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고 노무현 유스토 형제의 영혼을 위한 추도미사에 참례하고, 다음날 29일에는 세종로와 서울광장에서 '노짱'을 배웅하는 수십 만 명 속의 일점(一點)으로 역사의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피곤함과 슬픔 가운데서도, 기쁘고 행복했던 이틀이었습니다.

 

몸이 많이 피곤한 상태입니다. 마음이 너무도 허탈해서 지금도 몸의 기력이 절로 빠져나가는 기분입니다.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도 않아서 가만히 휴식이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편안한 휴식이란 가능한 일이 아닐 터였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어줍잖은 글이라도 써야 위안이 될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위안할 수 있는 방편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28일 오후 7시 명동성당에서 추도미사가 봉헌된다는 소식을 컴퓨터 화면에서 듣는 순간 나는 성호를 그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내 입에서 나왔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심장이며 대표 성당인 명동성당에서 거행되는 추도미사는 노무현 유스토 형제의 영혼을 위해서 하느님께 봉헌되는 위령미사이면서 동시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크신 은총의 선물일 터였습니다.

 

그 미사에 참례하여 온 마음을 다해 노무현 유스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 안에서 위로를 얻고 싶었습니다. 미사의 은총 안에서 흘리는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기도 할 터였습니다.

 

나는 6시 50분쯤 명동성당에 도착했는데, 미사에 참례하러 오신 신자들이 워낙 많아서 대성당 안은 이미 초만원이었습니다. 나는 별관 꼬스트홀에서 대형 화면으로 제대를 보며 미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별관으로 가기 전에 잠시 마당에 서서, 입장 시간을 기다리시는 50여 명 사제님들을 보며 또 한번 입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감사 기도를 했습니다. 사제님들이 두 줄로 길게 서서 입장하시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다음 별관으로 갔습니다.

 

미사 시작과 함께 미사의 지향을 알리는 주례 사제(김병상 몬시뇰) 님의 입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아!"하는 탄성이기도 하고 환성이기도 한 소리들이 새어나왔습니다. 나는 "오, 하느님!" 소리를 작게 발했습니다.

 

제1독서 후 화답송으로는 성가 229번을 불렀습니다. 내가 평소 연도를 가서 선창을 할 때마다 꼭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애절한 노래이기도 해서겠지만 내 옆에 계신 수녀님은 중간에 노래를 멈추고 눈물을 지으시더군요. 그 바람에 나도 더욱 울음이 복받쳤지만, 나는 끝까지 울음 섞인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면서 '위로의 실체'를 얻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내가 눈물을 지으면서 기도를 한다는 것, 울음 섞인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에서 야릇한 행복감을 얻는 기분이기도 했습니다. 다시금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절로 하게 되더군요.

 

미사를 지내면서, 내가 왜 서울까지 올라와서 노무현 유스토를 위한 추도미사에 참례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가족들과 식사를 하거나 환담을 나누다가도 노짱 생각만 하면 절로 맥이 풀리는 이유는 뭘까. 왜 무시로 노짱 생각이 나고 눈물을 짓게 되는 걸까. 이런 현상이 내게서 언제까지 이어질까…?

 

사실 그는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나누지 않은 사람이고, 손 한번 잡아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내게 누구보다도 친근한 사람이었고, '희망'을 갖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노사모'에 가입한 사람도 아니고, 언제나 그를 지지했던 사람도 아닙니다. 그가 대통령 자리에 올라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고, 또 야당을 향해 대연정인가 뭔가를 제안할 때는 그것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한 사람입니다. 나는 일정 부분 그에게 비판적인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애정과 희망은 늘 내 가슴에 살아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내게 많은 '사유의 강'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의 애처로운 죽음은 내 가슴에 깊은 '억울함'도 안겨주었습니다. 그가 온힘을 다해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관련하는 숭고한 가치들이 마구 훼손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그 억울함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상실감과 박탈감 같은 것이 함께 하는 억울함이지요. 그런 것들로 해서 정녕 그의 죽음은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깊은 사유의 강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지내면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을 둘러싼 울창한 사유의 숲 속에는 애처로움과 억울함 속에서 오늘의 상황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눈을 뜨고자 하는 의지들도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마음을 공유한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의 일치된 기원 속에서 미사를 지낸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젖먹이 시절에 영세하여 60년 이상을 변함 없이 올곧은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 상황과 관련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일치된 기원 속에서 미사를 지낸다는 것은 사실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노무현 유스토의 죽음과 관련하여 천주교 신자들의 관점이 크게 갈리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를 위한 기도와 미사가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리와 신앙을 전면에 내세우는 반 신앙적인 주장들은 어느 면으로는 살벌하기조차 합니다.

 

그런 논란들과는 상관없이 나는 오로지 기도를 하고자 합니다. 신자로서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이유만 대는 사람이기보다는, 그런 논란들 가운데서도 나는 올곧은 자세로 기도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가 추도미사에 참례하러 서울에 가던 28일은 1986년에 별세하신 내 선친의 89회 생신이었습니다. 해마다 선친의 생신 때는 꼭꼭 해온 미사봉헌과 성묘와 가족 외식 등을 뒤로 미루고 서울에 가는 것이 노모께는 죄송한 일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29일 저녁에 가족 외식 행사부터 치렀습니다. 육류 음식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섭섭하겠지만, 어머니 위주로 아구탕을 즐기면서, 장례를 치르며 잔치를 벌이는 우리 민족의 습속을 의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30일) 오후에는 가족과 함께 선친 묘소를 찾아 기도와 절을 올렸습니다. 선친께서 생전에 즐기신 막걸리도 따라 올리고 음복도 했습니다.

 

저녁에는 온 가족이 함께 성당에 가서 아버님을 위한 위령미사를 지내면서 노무현 유스토를 위한 미사도 함께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매년 5월 23일에는 노무현 유스토를 위한 미사를 지내고, 해마다 지내는 선친의 생신과 기일 위령미사에 꼭꼭 노무현 유스토를 위한 위령미사를 겸하기로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나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을 위한 미사에도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얼마 전에는 용산참사 때 희생된 다섯 분과 김남훈 경사를 위해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습니다. 이태 전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 때는 배성규 목사와 심성민씨를 위해 위령미사를 봉헌했지요. 가끔 주변에서 일어나는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 소식을 들을 때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곤 합니다. 특히 '자살' 소식을 들을 때는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합니다.

 

정성껏 미사예물을 준비하고 봉투에다가 그의 이름을 적기만 하면 됩니다. 굳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죽었는지 사제께 말씀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가 누구이고 어떻게 죽었는지 상관하지 않고 그의 이름을 적어 미사를 봉헌하면 됩니다. 내가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봉헌하는 미사를 하느님께서 어찌 대하실지는 하느님 소관입니다. 미사의 효력 여부는 사랑이시고 자비이신 하느님께 맡기고 나는 다만 기도할 뿐입니다.

 

깊이 헤아려 보지도 않으면서 표피적인 교리 구절만을 내세우고, 천주교 신자라는 주장만을 할 뿐 자신은 기도하지 않으면서 남들이 기도하고 미사 지내는 것까지 비난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습니다. 천주교를 걱정하고 교리를 수호하려는 듯한 태도 속에 반 신앙적인 '증오'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느낄 때는 아득해지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지금은 노무현 유스토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이 밉기도 하지만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나는 훗날 이명박 대통령이 나보다 먼저 운명을 하게 되면, 개신교 신자인 그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랑의 반대 개념인 증오심을 버리고, 가타부타 시끄러운 논란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유명을 달리한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태그:#노무현 서거, #추도미사, #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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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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