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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나흘째 되는 26일 덕수궁 대한문 시민 분향소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저녁 7시 이후에는 시청역 3번 출구 앞에서 시작되는 줄이 20분 만에 길 건너 4번 출구 밖까지 이어져 시민들은 4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조문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초등학생 다섯 명과 함께 온 H초등학교 교사는 "이렇게 줄이 길 줄은 몰랐다. 여기서부터 4시간이 걸려 아이들은 보내고 다시 올 생각이었는데 노약자 배려 차원에서 바로 분향을 드릴 수 있다고 해 다행이다. 아이들이 어려도 분명히 배우는 점이 있다고 본다. 역사가 기억하는 순간을 함께 했다는 자체가 공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달고 하얀 국화꽃 한 송이씩 손에 쥔 조문객들은 시청역 지하보도에서부터 덕수궁 돌담 벽에까지 빽빽이 붙어있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추모사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거나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한편에서 노 전 대통령 생전에 지금의 반만 지지를 보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한 시민의 목소리가 들렸고 조문객들은 말없이 촛불에 하나 둘씩 불을 밝혔다. 퇴근 후 검은 옷을 갖춰 입고 나온 회사원 박진흠(32)씨는 "국민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비록 정치적으로 그분의 모든 걸 지지한건 아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신념과 인간적인 면을 존경했다. 가슴이 아파 혼자 울 것 같아 친구와 함께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많은 추모객을 보게 되어 놀랐다. 다 같은 마음 아니겠느냐" 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조문객의 분향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분향소 뒤 도로에 세워 놓은 경찰 버스를 철수시켰지만 여전히 시청광장 주위는 막아 놓고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광장으로 통하는 시청역 5번 출구에는 경찰병력과 함께 '행사 관계로 5번 출구를 통제합니다' 라는 안내가 붙어있었고 한 시민은 "저 안에 아무도 없는데 무슨 행사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회사원 정진철(32)씨는 "전경들도 고생이다.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에 상관없이 조직의 특성상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 사실인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순수한 추모행사에 고생해가며 동원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씁쓸해 했다.

 

저녁 11시쯤이 돼서야 줄이 줄어드는 모습이었지만 조문객들은 여전히 두 시간여를 기다려야 고인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올릴 수가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흰 종이학을 접거나 추도사를 적어 붙이며 고인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회연대은행'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재혁씨는(28)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 정권을 지우려는 데만 급급해 사회 각층에 있는 진보적 인사들을 무리하게 몰아내려 기를 썼는데 결국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 노 전 대통령의 정책들이 내가 생각하는 진보적 가치와 부딪히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허락하는 진보가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였고 그마저 이렇게 폭력적으로 끝나는 것을 보며 참담하다" 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송영길 의원과 공동 상주로서 대한문 분향소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24일 관악산에서 예정됐던 '언론자유 민주주의 수호 100일 행동' 관련 활동을 중단하고 이곳에 왔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을 시작한 장소 아닌가. 서울역사박물관에 가면 1분도 안 걸려 분향할 수 있지만 조문객들은 서너 시간이 걸려도 마다하지 않고 이곳을 찾아온다. 민심이 이러한데 서울시 시청광장을 닫아 놓고 애도하는 시민들을 막고 있다"며 광장을 열 것을 촉구했다.

 

자정이 되어도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을 기억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졌다. 돌담길을 둘러싼 노란 리본 하나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노무현 아저씨 왜 돌아가셨어요?'라고 적힌 질문에는 말없이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사진만이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 유정혜 기자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 스쿨 대학원생입니다. 


태그:#덕수궁, #대한문, #분향소,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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