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롱베이 가는 길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아침. 우리는 여전히 바빴다. 그 전날 밤 잠을 설치는 바람에 늦게 일어난 우리는, 관광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호텔의 뷔페 식사는커녕 어제 사다 놓은 한국산 컵라면 국물도 끝까지 들이키지 못한 채 호텔 로비를 빠져나와야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나같이 쌀국수를 손에 들고 있는 하노이 사람들의 아침. 이제 난 언제나 저 베트남식 아침식사를 할 수 있을꼬.

 

여느 베트남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지 여행사에서 예약했던 터라 소형 관광버스는 하노이 시내를 뱅뱅 돌면서 관광객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배낭여행을 한다는 두 명의 이탈리아 여성부터 퇴직 이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네덜란드 노부부, 효도관광을 온 태국인들, 이탈리아 여성들을 꼬시기 위해 쉴 새도 없이 떠드는 영국인 등 어느덧 관광버스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버스가 하노이 홍강(Red River)을 건너자 주변 풍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커다란 공장과 그에 종사하는 촌락 등이 보여 우리의 중소도시를 연상케 하더니 이내 차창 밖으로는 정겨운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전통 모자를 쓰고 논에서 일하는 베트남 여성들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

 

 

그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논 한가운데 자리한 수많은 무덤들이었다. 작은 사당 모양으로 제각기 지어진 무덤들이 한 무더기로 모여 띄엄띄엄 자리를 차지하는 그들의 장묘문화. 워낙에 평야가 넓어 무덤조차 논 한가운데 썼던 것일까? 평지가 모자라 산에 계단식 논밭까지 만들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만한 풍경이었다. 아마도 저 무덤들은 촌락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중요한 공유점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도 저 무덤들은 기존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까? 도로변에 들어선 수많은 공장들을 보아하니 베트남 역시 기존의 촌락이 붕괴되고 있을 터, 요원한 일인 듯했다. 우리의 경우 자본주의 도입과 함께 무덤이 모여 있는 선산마저도 돈으로 치환되면서 가족 간의 의가 끊어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과연 아직까지 표면적으로 공산주의를 칭하고 있는 베트남의 촌락공동체는 지켜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창밖으로 미디어에서 보아 온 하롱베이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섬처럼 뚝뚝 떨어져 있는 작은 규모의 산들. 하롱베이와 차이가 있다면 그 산들이 바다 대신 평지 한가운데 자리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하롱베이와 같은 연유로 형성되었지만 지반의 융기로 바다가 육지로 변한 것이리라.

 

그러나 차이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하롱베이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명소로 각광을 받는데 반해 이곳 육지의 섬들은 하나같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산의 대부분이 석회석으로 이루어졌는지 농촌 곳곳에 시멘트 공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흉물스럽게 하얀 속살을 드러 내놓은 구릉들. 우리의 영월쯤을 연상케 하는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의 산업화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어떤 꼴로 만들어 놓을까?

 

용이 내려온 곳, 하(HA;下) 롱(LONG;龍) 베이

 

시멘트 공장이 간간이 자리한 농촌을 지나자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하롱베이.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온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입에서 보석과 구슬을 쏟아내어 만들어졌다는 유래를 간직한 하롱베이에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관광용 선박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나짱을 떠나 이틀 만에 맡아보는 바다 내음. 고작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었지만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도시 전체를 부수고 짓는 하노이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냄새인 터라 그 짠내도 마냥 반갑게 느껴졌다. 하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다시 서울의 그 매캐한 공기 속에서 살아갈 터 콧구멍을 넓혀 좀 더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일행들이 모두 오르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배. 과거 범선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배들이 일제히 흩어져 저 멀리 아련하게 보이는 하롱베이로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전함들이 진을 펴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두둥둥둥둥~

 

 

곧이어 눈앞에 펼쳐지는 하롱베이. 처음 시작은 우리의 남해 한려해상수도쯤을 떠올리게 하더니, 배가 깊숙이 더 들어가자 영화에서나 보아오던 바로 그 풍경이 펼쳐졌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섬들과 기암괴석들. 과연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할 만한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그 아름다움을 칭하였을까.

 

넋을 놓고 풍경을 구경하고 있자니 불쑥 욕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곳 하롱베이의 일몰과 일출은 어떠하며 사계절은 어떤 모습일까? 하롱베이는 못해도 1박 2일을 구경해야 한다더니 괜한 말이 아니지 싶었다. 이런 것도 모르고 하롱베이를 하루에 다 구경하겠다며 하노이에서 4시간씩이나 버스를 타고 온 우리의 욕심이 과한 것이려니.

 

하롱베이 반나절 여행 코스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하롱베이의 진면목을 이제 좀 보는가 싶었더니, 선상에서 점심을 먹은 이후 선장은 뱃머리를 돌려 다시 뭍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저 뒤로 하롱베이의 유수한 풍경을 놔두고 이리 가야하다니 이렇게 억울하고 허무할 수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이틀 정도를 비워 놓을 것을.

 

 

허탈한 관광객들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일까? 배는 곧장 뭍으로 향하는 대신 어느 섬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이야기인즉슨 이곳에 볼만한 석회암 동굴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하롱베이의 섬 전체가 석회암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곳곳에 석회암 동굴이 있을 수밖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커다란 동굴입구가 나왔고 그 안으로는 화려한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의 아기자기한 고수동굴 보다는 커다란 환선굴과 비슷한 모양의 동굴이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베트남 사람들이 살면서 그 생계를 이어나갔으려니.

 

그러나 동굴에 대한 감흥은 별로 없었다. 워낙 우리나라에 그 비슷한 동굴들이 많아서일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쳐갈 뿐이었다. 차라리 이 시간에 하롱베이의 모습을 조금 더 보여 줄 것이지. 아까 뭍에서 떠날 때 보았던 선박 하나 자체를 통으로 빌려 하롱베이로 출발하던 유럽인들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언제쯤 이곳에 다시 와 하롱베이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려나.

 

두 개의 동굴을 휘뚜루마뚜루 모두 구경하고 나니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때마침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롱베이의 노을. 저 태양이 새빨갛게 물들어 물속에 잠길 때 이곳은 얼마나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낼까. 혹여 하롱베이로 여행을 떠나실 분이 있다면 꼭 그곳에서 1박은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집으로

 

하노이로 돌아오는 길. 버스로 4시간 거리이기에 지루하기도 지루했지만 그보다 하노이에 도착하면 이제 곧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할 뿐이었다. 워낙 오래 쉬었던 탓에 인천 공항에 새벽에 도착하면 당장 그 날 오후에 출근해야 하는 이 갑갑한 심정. 결혼을 하고 나면 몇 년은 이 신혼여행의 기억으로 살아간다더니 이제 그 신혼여행의 종착지에 다다랐는가.

 

어느덧 날은 어두워졌고 우리는 20시쯤 하노이에 도착했다. 시간이 없었다. 서울발 23시 30분이면 적어도 공항에 22시까지는 도착해야 할 터, 우리는 저녁식사는커녕 신혼여행 선물을 사느라 동분서주 뛰어다녀야 했다. 끝까지 빨빨거리며 바쁜 우리의 신혼여행.

 

 

베트남의 유명한 특산품이 커피라 하기에 우리는 호텔에서 추천받은 카페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신혼여행 선물로 산 뒤 공항으로 향했다. 다행히 호텔에서 저렴한 값에 리무진을 붙여줬기에 비교적 편한 운행이었다. 게다가 영어까지 구사하는 운전기사. 덕분에 나는 그 마지막까지 그에게 베트남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우리에 대한 생각, 그들의 미래에 대한 생각, 그들이 현시대를 바라보는 관점 등등.

 

결국 그 많은 이야기를 통틀어 내가 베트남에게 느낀 바는 자신감이었다. 그들은 모든 바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 몽골제국과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무찌를 수 있었던 그들의 자산이며, 그 옛날 중국에는 조공을 바칠 지언 정 국내로 돌아와서는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그 주위 국가들에 조공을 받았던 그들의 자존감이었다. 우리는 그런 그들의 특성을 인지하며 그들과 상호 공존해야 할 것이다.

 

드디어 비행기 탑승. 이제 곧 서울이다. 이렇게 우리의 신혼여행은 마무리 되었다. 아내 배 속에 잉태된 새로운 생명과 함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베트남, #하롱베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