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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꼭 같이 결혼해서 난 여자애, 넌 남자애를 낳은 다음 그 둘을 결혼시키자고 약속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약속대로 지금 잘 생긴 아들을 낳았다. 다른 게 있다면, 나만 빼고 혼자 낳았다는 거. 언젠가 나이가 들면 여성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살자 약속한 친구도 있었다. 지금은 지방에서 다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도 이번 여름이면 귀여운 아이의 엄마가 된다.

언제까지나 친구들이 나와 함께 이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어느덧 서른 하나에 맞는 따스한 오월. 나를 두고 자꾸만, 친구들이 결혼한다!

<오월엔 결혼할꺼야>는 어떤 연극?
보습학원 수학선생 세연, 3류 잡지에 에로소설을 연재하는 정은, 오랫동안 백조생활을 해온 공주병 지희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 적금을 든다. "제일 먼저 결혼하는 사람에게 축의금으로 몰아 주자"는 약속을 하며.

시간은 10년이 지나 어느덧 위기와 불안의 스물 아홉을 맞이한 세 사람. 그래도 아직 결혼은 먼 얘기라 생각했는데, 지희가 느닷없이 결혼을 발표한다. 그것도 선본 지 1주일만에 날을 잡았다고. 친구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보다 충격적인 건 그동안 함께 모은 3825만원을 홀라당 빼앗기기 직전이라는 것.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지희보다 빨리 오월 안에 결혼해버릴 수밖에! 정은은 5년을 만난 남자친구에게 결혼하자고 조르고, 세연은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을 찾아다니며 '오월에 시간 있냐'고 물어보고 다니는데...

더 이상 결혼 소식이 기쁘게만 들리지 않는 건 내가 싱글이어서 그런 건가? 결혼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건가? 뭐든 간에…. 제발, 결혼이니 임신 소식이니 이젠 그만 듣고 싶다!!

황금같은 주말이 각종 행사에 묻혀 그냥 지나가는 것도 아쉽다. 나는 할지 안 할지도 모를 결혼에 쏟아붓는 돈은 대체 얼마인가.

날 좋은 지난 9일, 골드미스가 되기엔 모자란 게 너무 많고 딱히 싱글을 원하지도 않는 여자 셋이 모였다. 연극 <오월엔 결혼할꺼야>를 보기 위해.

서른을 넘어선 여자 친구 셋이 함께 보기엔 자칫 우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바로 얼마 전에 우리도 지나쳐온 스물아홉의 시간을 보내는 세연, 정은, 지희의 이야기에 손벽치고 웃으며 또 한편으로는 짠해하며 극장을 나섰다.

그 후 우리가 나눈, 골드미스가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은 싱글 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참, 너무 솔직한 얘기들이라 실명은 좀 그렇고 각자 맘에 드는 연극 캐릭터의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으니 이해해주시길.

"결혼할 남자,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 나이에 남자를 보는 기준은, 내가 이 남자와 잘 수 있냐, 없느냐야."
- 극 중 '정은' 대사

ⓒ 나온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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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연극 어땠어? 난 정말 재밌게 봤는데."
지희 "난 솔직히 처음엔 재미없었어. 설정이 맘에 안 들어서 그랬나. 아니 아무렴 3800만원을 혼자 먹으려는 친구가 어딨어. 말이 안 돼. 뭐, 중간 정도부터는 그냥 재밌게 봤지만."
세연 "나도 재밌게 봤는데. 캐릭터들이 재밌었어. 남녀 사이에 친구는 안 된다는 얘기에 엄청 공감하면서 봤지."

정은 "근데 정말 선보고 1주일 만에 결혼을 생각할 수 있나? 이거 그냥 연극이라 그런 거야, 아님 정말 가능한 거야?"
지희 "1주일까지는 모르겠지만, 2~3번 만나고 결혼하기도 하는데 뭐."
세연 "맞아, 만난 지 2~3개월 만에 결혼 결정하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

정은 "우리가 세연이나 정은이 같은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지희 "음, 어쨌건 돈을 한 명이 다 가져간다는 건 말이 안 돼. 그 친구를 설득해서 셋이서 나누자고 할 거야. 내가 먼저 결혼을 한다고 해도 난 나눠 줄래."
세연 "난 세연처럼 그동안 알던 남자들 연락해 볼 거 같애. 극중 대사처럼, 남자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잖아. 결혼을 할 필요가 있으면 골라서 하면 되는 거지."

정은 "하긴,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있겠어. 근데 그럼 결혼 상대의 기준은 뭐야? 결혼 상대를 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지희 "일단은 경제력이지. 어쩔 수 없어. 좋아하는 감정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직장은 있어야 할 거 아냐. 사실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들 대부분 '나를 굶기지 않을 것 같은 남자' 그런 느낌이었던 거 같애. 종교도 중요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일단은 경제력이지."
세연 "나는 연극에서 정은이 말했던 것처럼 내가 같이 잘 수 있는 사람인가가 중요한 거 같애.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그럴 수 있는 거니까."

정은 "결국 감정이 중요하다는 뜻인가?"
세연 "그런 셈이지. 예전에는 뭔가 나랑 비슷한 일을 하거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여겼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보니까, 결국은 끌리는 감정이 있어야 하더라고. 경제력도 중요하긴 하지."
지희 "내가 좋아했던 한 사람은, 키도 작고, 얼굴도 솔직히 내 스타일이 아니었어. 그런데 어느 순간 좋아지더라. 뭐냐면, 그 남자가 회사도 다니면서 투잡으로 카페를 한다고 하더라고. 거기에 좀 혹했던 거 같애. 물론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아, 뭔가 경제력은 있겠구나, 그런 느낌."

정은 "요즘은 남자들도 여자를 볼 때 경제력 보더라. 내가 작년인가 회사 그만뒀을 때 대학 남자 동기랑 얘기를 하는데, 나보고 결혼 언제 하냐고 그러면서, 근데 요즘은 여자도 직장이 있어야 남자를 만난다면서 얼른 나한테 직장 구하라고 하더라."
세연 "주변 얘기 들어봐도 소개팅이든 선이든 꼭 직장 물어보잖아.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이제 중요해졌다니까."
지희 "그러니까 선생님 좋아하고 공무원 좋아하는 거지."

"결혼하면 정말 안 외로울까?"

ⓒ 나온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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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오월에 시간 되니?
- 극 중 '세연' 대사

지희 "연극에서 세연이 '오월에 시간 되냐'고 남자들한테 묻잖아, 난 처음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 돈이 얽혔다고 해도 기한 안에 결혼하려고 급급한 모습 보니까 좀 슬프려고 하더라."
정은 "근데, 작년이랑 재작년인가 '올해엔 꼭 결혼할 거야 그런 말을 네가 했었잖아. 그래서 난 솔직히 궁금했거든. 나이 때문인가, 왜 꼭 결혼할 기한이 필요한 걸까 하고."
지희 "우리 언니가 지금 34살인데, 서른살 11월에 결혼을 했어. 아마 나한테는 그 나이가 데드라인처럼 느껴졌나봐. 그 즈음해서 위기감이 느껴진 거지. 지금은 이미 지나버렸지만, 여전히 압박감은 있어. 내가 아직도 결혼을 안 하고 있다니! 그런 느낌."

정은 "근데 난 솔직히 결혼하면 뭐가 좋은 건지 주변을 봐도 잘 모르겠어. 왜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거지? 혼자가 외로워서 외로움을 달래주는 게 이유? 솔직히 결혼해도 외롭다고 하던데."
세연 "난 주변에서 결혼한 사람들 보면 결혼하고 싶던데. 잘 지내는 케이스가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예를 들면 우리 언니도 34살인데, 10년 연애하다가 결혼했거든.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인데도 결혼하니까 확실히 연애할 때와는 다르더라고.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생활이 변하고. 그런 게 좋아 보였어. 무엇보다 사람은 혼자보다 둘이 있는 게 예쁜 거 같애. 여자든 남자든."
지희 "그건 그래. 아무리 급하게 결정을 해도 결국 결혼해서 둘이 잘 사는 모습을 보면 부럽더라. 원래 결혼을 꼭 하고 싶은 마음 없어도 그런 걸 보면서 점점 결혼이 하고 싶어지는 거 같애."

정은 "내가 좀 이상한가, 주변에 딱히 부러운 커플이 없어. 음, 저 정도면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네, 그런 생각은 하지만 별로 와 닿지가 않아. 우리 언니도 사실 알콩달콩 잘 사는 편인데, 나는 그걸 봐도 별로 안 부럽더라구. 예를 들면 결혼해서 잘 사는 커플은 대부분 연애를 할 때도 잘 지내는 커플이잖아. 그럼 그냥 계속 연애를 해도 괜찮은 거 아닌가? 굳이 결혼이란 걸 해서 더 좋은 게 뭘까 계속 궁금한 거지."
지희 "돈이 잘 모인대."
세연 "어쨌건 둘이면 좀 덜 외롭잖아."
지희 "근데 결혼해도 외롭다더라. 그건 인간의 존재론적 외로움이라 어쩔 수가 없어."

정은 "하긴, 나도 좀 안정적인 걸 생각하면 결혼을 하고 싶기도 하더라."
세연 "맞아, 아직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대부분의 여자들이 결혼이란 걸 나를 책임져줄 사람이 생기는 걸로 여기는 게 있는 거 같아. 무의식으로라도."
지희 "그만큼 얽매이는 것도 많긴 하지만, 뭔가 기댈 곳이 필요한 거지."

정은 "연극 보면서 난 자꾸 남자 주인공한테만 눈이 가더라. 훤칠하니 잘생기고. 외모 따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훈남들 보면 마음이 달라진다니까."
지희 "그건 당연하지. 외모를 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
정은 "나도 그런 이성 친구 있었으면 좋겠어. 연애는 안 하고 그냥 친구로 지내는. 여자친구랑은 분명 다른 느낌이잖아. 재밌을 텐데."
세연 "근데 정말 남녀 사이에 친구는 안 되는 거 같아. 그거 보면서 나도 되게 공감했는데, 내 동아리 친구들도 어릴 땐 별 생각 없이 어울려들 놀았는데, 약간 나이가 들면서는 뭔가 분위기가 묘해지는 거야. 싱글들이 많다 보니, 결혼이니 그런 걸 생각할 나이가 되니까 뭔가 서로 재보는 듯한 그런 분위기랄까."

정은 "나도 그거 뭔지 알 거 같애. 좋아해서라기보다, 그냥 그런 시기에 주위에 있는 사람이니까 한 번 따져보는 거랄까."
세연 "그런 셈이지. 나도 좀 친한 남자친구가 있었거든. 연극에서 성호랑 세연이처럼. 서로의 연애사도 다 알고. 연애는 아니었지만, 유사연애 같은 경험을 한 거지. 3~4년 정도 그렇게 지냈는데, 걔가 23살짜리 애인이 생기면서 유난히 나한테 '너 결혼은 언제 하냐' 놀려대고 그러더라고. 점점 만날 때마다 짜증나서, 지금은 따로 연락 안 해."
정은 "나이 들수록 남자든 여자든, 서로 짝이 될 만한 사람이냐 아니냐로 판단하는 게 제일 큰 거 같애. 거기서 아니다 싶으면 버리는 거지. 순수한 친구는 될 수 없는 거고."
지희 "그렇게 친한 남자애들이 먼저 결혼하는 것도 기분 묘해."

결혼한 친구들 애까지 생기면..."너무 외로워"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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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흰 왜 친구로서 지희 결혼을 그냥 축하해주지 못하는 거야?"
- 극 중 '성호' 대사

정은 "난 솔직히 주변에 친구들이 거의 결혼했거든. 그래서 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어느 순간 너무 외로운 거야. 외톨이가 된 거 같고. 좀 기분이 묘할 때가 있어. 특히 결혼한 친구들이 대부분 애가 있어서 이제 정말 나와는 완전 다른 세계 사람들이 된 느낌."
지희 "나도 친한 친구들이 결혼하면 뭔가 울컥하면서 슬펐어. 부러운 마음이라기보다, 설명하기가 좀 묘하지만. 떠나가는 게 슬펐던 것도 같고."
세연 "나도. 친구들이 결혼하기 시작할 때 충격을 받았던 거 같애. 특히 친했던 한 친구가 만난 지 3~4개월만에 결혼하기로 결정을 했을 때도 좀 놀랐지."

정은 "정말 결혼을 그렇게 빨리 결심할 수도 있나. 내 친구 한명도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하기로 해서 1년도 안 됐는데 결혼했거든."
지희 "많아 그런 사람.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은, 만난 지 2개월 만에 3번 정도 만나고 바로 결혼하기로 했대. 그걸 나한테 직접 알려주는데 속으로 욕나오더라."
정은 "주변 상황도 압박이 된다니까. 친구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결혼하는 게 너무 당연한 분위기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느낌. 난 솔직히 말하면, 결혼을 그다지 하고 싶지 않거든. 내가 돈만 어느 정도 벌 수 있으면 혼자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엔 가족한테서 느끼는 압박이 좀 커졌어. 주말마다 부모님이 결혼식을 엄청 다니시거든. 거기에 대해서 부모님이 스트레스를 받으셔. 다른 애들 결혼식은 이렇게 다니는데 막상 내 자식들은 결혼도 못 시킨다고."

지희  "아무도 결혼 안 했나?"
정은 "우리집에 딸만 셋인데, 한 명만 결혼했거든. 큰언니가 서른다섯인데 아직 안 했어. 부모님이 스트레스 받을 만하지. 근데 나도 그걸 보면 엄청 스트레스인 거야. 내가 굉장히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고. 한시라도 빨리 결혼해서 부모님의 근심 걱정을 덜어드려야 겠다, 그런 생각이 들지."
세연 "효녀구나."
정은 "그런 것보다, 부모님 집에 얹혀사니까 그런 게 더 있는 거 같애. 어쨌건, 정말로, 요즘엔 결혼 생각을 막 한다니까.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결혼을 별로 크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냥 어떤 통과의례로 치르긴 치르되, 뭐라고 해야 할까, 회사에 들어가듯, 새로운 가정에서 적응하면서 내 인생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 내 인생이 먹혀버리는 게 아니라."

지희  "애 낳으면 끝이야."
세연  "시댁 일이랑 그런 거 생각해봐."
정은  "요즘 애 있는 내 친구들 보면, 많이들 힘들어 하더라. 너무 제한이 많으니까. 외출 한 번 하는 것도 그렇고. 자기 생활이란 게 없잖아."
세연  "완전 없어지지. 정말 인생이 180도 바뀌는 거라니까."

정은  "아, 정말 싫다."
지희  "난 솔직히 가족이 주는 압박은 그리 큰 거 같지 않아. 물론 결혼하라고야 하지만, 그런 것보다, 나 스스로 느끼는 압박감이 있는 거 같애. 서른이 넘어서까지 결혼을 안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해봤거든.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 지금 서른한 살에, 이렇게 혼자 늙어가는 게 너무 슬프다. 결혼이 아니더라도 제대로 연애도 해보고 싶은데. 솔직히 남자랑 한 번 자보지도 못하고 내 몸이 이대로 늙어가는 게 너무 슬퍼."

골드미스, 화려한 싱글...그런 말 좀 그만!

"남자들, 이놈이 그놈이고 그놈이 저놈이야. 결국엔 다 똑같다구."
- 극 중 '정은' 대사

지희 "연극에서 성호가 미니홈피에 '외롭다'고 광고를 하잖아. 나 그거 정말 공감간다. 정말 너무 외로워. 그냥 혼자 지내면서 나이 들어가는 언니들이 몇 있어. 30대 중반이랑 40대 된 언니들. 그 언니들 보면 사실 좀 무서워. 나도 그렇게 될까봐."
세연 "아, 나도 있어 그런 그룹."
정은 "내 주변에도 있어. 근데 가끔 나는 - 이런 식으로 말하면 좀 그렇지만 - 위안이 되던데. 내가 만약 혼자여서 쓸쓸할 때 같이 놀아줄 친구들이 저기에 있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
지희 "나도 그런 생각 가끔 하지. 그런데 무서운 게 더 커. 특히 그 언니들은 되게 당당하거든. 난 그렇게 당당하게 계속 혼자 지낼 자신이 없으니까, 그래서 더 결혼을 생각하는 걸 수도 있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사실 알 수 없는 거고."

정은 "가끔 밖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내 나이 들으면 '골드미스'란 말을 하거든. '골드미스'니 '화려한 싱글'이니 그런 말 좀 안 했으면 좋겠어."
지희  "맞아. 화려하긴 뭐가 화려해."
세연 "화려한 싱글은 절대 없어! 얼마나 외로움에 떨면서 사는데. 솔직히 소위 조건 좋은, '골드미스'라고 하는 그런 언니들도 아는데, 다들 너무너무 외로워 해."

지희 "내가 아는 분이 마흔 살이 돼서 결혼을 했어. 나한테 지금 빨리 상대를 찾아보라고 그러면서, 서른다섯이 넘으면 스스로 너무 위축이 돼서 안 좋대. 그리고 무엇보다 원하는 사람을 고를 수가 없다는 거지."
정은 "흔히 말하는 시장 가치가 떨어진다는 거지?"
세연 "결혼정보회사 같은 데도 35살 넘으면 '돌싱' 만난다고 해야만 가입이 된다잖아."

지희 "아까 말한 언니들 중 한 명이 농담처럼 '이제 우리 '재취'자리 알아봐야 한다' 그런 얘기를 자주 하거든. 그렇게 좌절 섞인 신세한탄이 너무 많은 거야, 그런 사람끼리 모이면 자꾸 그런 분위기로 가는 게 무섭고, 피하고 싶은 거지. 빨리 결혼해서 탈출하고 싶달까."
세연 "맞아. 어느 정도 나이가 지나면서 싱글로 있게 되면, 누구나 느끼는 외로움 말고 정말 '깊은 외로움'이 생기는 거 같애. 특히 35살 정도 지나면 보통 혼자 사니까 더 심하지."
정은  "그런데 결혼이 그런 걸 해소해 주는 건가? 난 솔직히 연애할 때도 늘 집에 돌아오면 외로웠는데."
지희 "그러니까 결혼해서 집에서도 함께 있으려는 거 아니야?"
세연 "해소까지는 아니어도, 다른 세상이 또 만들어지는 거니까. 적응하느라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을지도 몰라."

연애 따로, 결혼 따로 친구의 조언 "결혼은 안정적으로"

"너 복녀처럼 살고 싶어?"
- 극 중 정은 대사

지희  "연극에서 정은이 자꾸 복녀(소설 '감자' 주인공) 얘기하는 거 너무 웃겼어."
정은 "복녀가 가난하고 무능한 남편 만나서 고생만하다가 결국은 감자 훔치는 거 걸려서 왕서방한테 팔려갔다가 죽는 거지? 끔찍하다, 야. 그렇게까지는 아니어도 '남자는 10대엔 부모님한테 기대고 20대엔 애인한테 기대고 30대 이후엔 부인한테 기댄다'는 대사가 너무 웃겼어."
세연 "근데 좀 공감 되지 않아? 꼭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어도, 여자한테 결혼은 손해일 수 있거든. 누가 나한테 그러더라. 자기가 결혼을 안 한 건 희생하기 싫어서라고. 솔직히 공감돼. 아직은 여자들이 결혼하면 많은 걸 희생해야 하잖아. 자기 생활이나 여러 가지 것들을."
지희 "맞아. 물론 남자들도 책임감이 늘면서 부담이 들겠지만, 여자들의 문제랑은 좀 다르지."

정은 "내가 예전에 만난 남자 한 명이, 참 괜찮은 사람이었어. 유머도 있고, 상대도 배려할 줄 알고. 그 사람만 놓고 생각하면 결혼을 해도 별문제 없이 살겠다, 싶었지. 근데 그 사람이 종갓집 종손이었어. 제사 문제도 그렇고, 친척들도 그렇고, 머리 아프잖아 사실. 게다가 집안 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았거든. 예를 들면 결혼한다고 해도 살 집을 마련해줄 여건이 안 되는 거야. 물론 헤어진 건 결국 감정 문제였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 만약 계속 좋아해서 사귀었다면 결혼 얘기 나올 때 머리 되게 아팠을 거 같다고."
지희 "나 같아도 만약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한다고 해도, 그런 조건들이면, 결혼 안 할 거 같애. 고민은 정말 많이 하겠지만, 힘들 거야."

세연 "난 만약 남자가 집안과 여자를 분리해서 생각해준다면 결혼할 수 있을 거 같애. 사랑한다면."
정은 "근데 솔직히 그게 힘들잖아."
세연 "그치. 외국에 나가서 살지 않으면 힘들지. 내가 아는 사람은 누나만 7명인 남자랑 결혼했는데 일본에 가서 살거든. 그러니까 아무 문제 없더라고."
지희  "아니면 부모님이 외국에서 살고 계시거나."
세연 "맞아맞아. 아니면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살 수 있거나."

정은 "친구 중에, 정말 화려하게 연애하다가 결혼한 친구가 있거든. 예를 들어 애인이 있을 때도 계속 미팅을 했어. 다른 사람들 만나면서 자기가 아직 매력 있는 사람이란 걸 확인하는 게 좋다면서. 어쨌건, 정말 놀기 좋아하는 애였는데, 그러다가 완전 안정적인 남자랑 3개월 만에 결혼하기로 하고, 1년이 안 돼서 결혼을 했지. 싸이며 과거의 흔적은 완전 싹 지우고."
지희 "진짜 똑똑하다."
정은 "그치. 그러면서 나한테 충고하더라. 내가 재밌는 남자, 잘생긴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니까. 어쨌건 결혼은 안정적인 남자랑 하는 게 좋다고. 연애랑 결혼은 추구하는 가치가 아예 다르다는 거지. '똑똑한 여자들의 결혼 지침' 뭐 그런 거 듣는 기분이었어."

세연 "경험에서 나온 충고구나."
지희 "근데 그렇게 잘 놀던 친구면 결혼하고 안 심심하대?"
정은 "남편이 술담배도 안 하고, 밖에서 노는 취미도 별로 없고, 칼퇴근해서 집에 오면 게임하고 그런 스타일인가봐. 아무래도 친구는 노는 걸 좋아하니까 좀 심심해하는 것도 같은데, 어쨌건 나에게 끝까지 강조한 건 - 결혼은 안정적으로."

세연 "연애와 결혼은 정말 별개라는 거네."
지희 "그게 똑똑한 것도 같고."
정은 "맞어. 나도 사실 연애를 재밌게 할 수 있는 사람 - 재미있거나 잘생기거나 그런 사람만 좋아했는데, 솔직히 최근에는 정말 생각이 많이 변했어.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소개팅을 했는데, 전형적인 아저씨 타입인 거야. 재미도 없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좀 무뚝뚝하니 말도 별로 없고, 세심하게 잘 챙겨주는 타입도 아닌 것 같고."
세연 "알지, 그런 타입."
정은 "근데 하나 - 착한 건 확실한 거야. 무조건 착하기만 하다기보다, '결혼하기엔 괜찮을 타입'있잖아. 내가 그 아저씨를 만나면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니까. 나도 모르게. 예전 같으면 한 번 만나고 끝이었을 텐데, 그 다음에 연락 와서 또 만났어. 지금은 확실히 저 깊은 곳에서 '결혼'이란 걸 계속 염두에 두고 있나봐."
지희 "맞아, 나도 그래. 나도 소개팅하면서 그런 식으로 상대를 보게 된다니까. 어쩔 수가 없어."

"외로워도 현재를 즐기자"

지희 "사실 너무 오래 싱글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난 옆에 누가 있으면 너무 불편해. 이래서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 솔직히. 물건을 사거나 영화를 볼 때도 옆에 있는 사람을 계속 신경 쓰고 눈치를 봐야 하잖아. 혼자 있으면 외롭지만, 또 둘이면 그게 너무 신경 쓰이는 거야."
정은 "나도 사실 연애할 때 상대에 대한 신경을 너무 안 써서 많이 싸우고 그랬어. 결국 상대를 배려하고 양보도 하고 그런 거잖아, 근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 아무리 신경 쓴다고 해도 결국은 내 주위로 돌아오는 거지."
세연 "어쨌건 싱글로 산다는 건 지겨워."

정은 "그리고 너무 외롭지. 근데 커플이 돼도 외로워."
세연 "유사연애가 필요해."
지희 "돈도 많이 들어. 외로움을 풀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쓰게 되니까."
세연 "그래도 결혼한 친구들이 부러워 하더라."
정은 "애 있는 내 친구들이 나한테 다 그래. 부럽다고, 지금 맘껏 즐기라고."
세연  "어차피 당장 사람이 없으면 결혼할 수 없잖아."

지희 "맞아, 결혼하겠다고 갑자기 알던 남자들을 찾아다닐 수도 없고, 두 번 만난 사람이랑 결혼할 수도 없지."
정은 "그럼 결국 일단 지금 즐기는 수밖에 없겠네. 괜히 결혼에 목매고 상대 찾아 온 힘을 다 쏟는 것도 에너지 낭비일지도 몰라."

덧붙이는 글 | 연극 <5월엔 결혼할꺼야>는 2009년 5월 7일(목) ~ 6월 28일(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공연합니다.



태그:#싱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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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 보잘 것 없는 목소리도 계속 내다 보면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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