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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봉들이 즐비하다는 히말라야 산맥 아래에 자리 잡은 네팔, 카트만두를 방문할 기회를 얻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산화를 신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기 항공편 직항이 월, 목요일 밖에 없어서 도착 다음날인 화요일 일정이 끝난 후부터 귀국 전까지 시간을 내어 잠시 여행할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국할 때 마음먹었던 대로 초행길의 외지인 혼자 간단하게 배낭을 둘러메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에는 카트만두의 교통편이나 치안상황이 그다지 여의치 않았다. 기름을 넣기 위해 길가에 길게 늘어선 차량들은 좁은 길에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번다라고 불리는 시위로 인한 교통체증은 길을 모르는 외지인이 길에서 시간을 다 허비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약속된 일정을 마친 후부터 귀국까지는 이틀이나 남아 있었다. 약정된 일정 없이 급할 것 하나 없는 시간을 보낼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여행을 하기에는 길지 않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책을 읽으며 간만에 자신을 돌아보기에는 적당한 시간이었다. 다행히 배낭 속에는 두터운 세 권의 책이 있었다.

 

저녁

 

한낮의 뙤약볕이 약해질 무렵 70년대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누만 도카 더르바르 광장을 살펴보기로 했다. 광장은 물반 고기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현지인보다 외지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가진 것 없는 행인에게조차 발아래 엎드려 "Sir, Money"를 반복할 만큼 광장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은 집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건네는 것은 불법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그 돈으로 담배나 마약 등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에 사람 수보다 많다는 신들이 있다는 네팔에서 사원이나 신전에 돈을 내는 것은 권장사항이라고 한단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사원들을 보수 유지하는 데 쓰기 위해서라고 한다.

 

결국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겠다는 말인데, 최근 세계 경제가 불황을 맞으면서 네팔은 관광객이 줄어 울상이라고 한다. 4월 28일자 카트만두 포스트에 의하면, 네팔 GDP의 60%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해외에서 송금해 오는 돈이고, 2%는 관광이 차지한다고 한다. 네팔은 2백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말레이시아에 진출해 있는데, 세계 경기 후퇴로 귀국할 처지에 놓이면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네팔은 개발경비의 60% 이상을 해외원조에 의존하고 있는데, 세계 경기 침체는 국제 원조마저도 감소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빈국인 네팔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아침

 

오전 7시에 들른 호텔 식당은 한산했다. 식탁 위에 검은 색 커피 한 잔을 올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아무도 거닐지 않을 것 같은 한적한 정원에 밤새 떨어진 낙엽을 쓰는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안 가 정원 구석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흰 포대에 꾹꾹 눌러 담는 여인의 등살이 보였다. 그녀는 곧 한 손으로 포대를 끌고 갔다.

 

아침 식사 시간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도 인적이 드물었다. 한 시간이 지날 때쯤 고작 한 쌍의 부부가 나타났다. 한 끼를 건너뛴들 무에 대수랴 싶은 그들과 아니 짐짓 끼니를 거르기도 하는 그들과 한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이들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단지 간단한 질문과 간단한 주문이 있을 뿐이었다. 

 

격자 창문 너머로 사각사각 빗질하는 소리에 검은 색 짙은 향의 커피가 쓰기만 했고, 달착지근하고 묽은 네팔 전통 음식인 달밥은 목에 걸렸다. 얼마 안 있어 12개의 식탁과 60여개의 의자, 여섯 명의 종업원, 다시 손님 한 명만이 남았다.

 

젖지 않은 커피 잔 밑에 설탕이 고여 있었다. 12장, 두 쪽 격자 창문에 끼워진 유리에 촛농이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그곳에서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손님보다 잘 차려입은, 넥타이를 하고 격식을 갖춘 종업원이 설탕이 남은 커피 잔을 다시 채워줬다.  

 

급할 것 하나 없는 하루를 보내는 이의 아침이 끝나갈 무렵, 양 손목과 발목에 흰 은팔찌를 하고, 눈 밑을 검게 화장한 아기를 안은 젊은 여인과 할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들어왔다. 아기를 안은 여인이 식당에 들어서며, 별다른 말없이 종업원에게 아기를 건넸다. 낯선 이의 품에 안긴 아기는 왠지 낯가림이 없었다. 평소 유모의 손에 키워졌을까?

 

아기를 안고 왔던 여인들에 이어 건너편 식탁에 네팔인인지, 외국인인지 가늠할 수 없는 이가 앉았다. 자리에 앉은 그가 눈으로 인사를 건네 왔다. 이어 겨자인지 후추인지 음식을 덜어 온 그릇 위에 탁탁 털더니 빵을 집어 먹고, 입술을 손으로 닦았다. 그도 말이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치즈를 엄지와 중지로 들고 잘게 깨물어 먹는 모습이 꽤나 맛있어 보였다. 그래도 혼자 있음이 무료했던지 다리를 꼬고 앉아 한 쪽 다리를 털고 있었다. 슬리퍼를 신은 그의 모습이 관광객은 아닌 듯싶었다.

 

자리를 뜨기 전 티스푼으로 찻잔을 휘 저어봤다. 여전히 설탕이 가득했다. 일어서려는 순간에야 식탁에 잘록한 목을 가진 작은 화병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화병에는 향기 없는 수선화 몇 송이와 붉은 색이 감도며 잎이 마른 흑장미 한 송이, 고사리 한 줄기가 시들고 있었다.

 

점심

 

곰팡내 나는 방 안 공기를 환기해 보려고 방 안 모든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객실 청소를 하던 종업원들이 지나가고 난 후, 은근슬쩍 인기척이 있어 옆을 쳐다보는 순간,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붉은 색 털의 원숭이였다. 녀석은 미니바에 올려놓은 일회용 커피와 티백, 설탕과 크림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미니바로 향하던 녀석의 긴 팔이 주춤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시늉을 해 봤다.

 

사람이 동작을 하면 도망칠 줄 알았는데, 녀석은 오히려 빤히 쳐다보며 나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대드는 것이 섬뜩한 것이 아니라, 다음 동작을 가늠하게 할만치 느릿느릿 움직이며 주시하는 모습이 오히려 머리털을 서게 만들었다. 다행히 또 다른 원숭이가 지붕 위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녀석은 어슬렁거리며 자리를 떴다.

 

이어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눈앞에서 까불기 시작했다. 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의 손에 커피믹스로 보이는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어디서 한 건 했을까?

 

원숭이 무리의 대범함 행동들을 보는 중간에 전기가 나가더니 금방 다시 들어오기를 서너 번 반복하였다. 아침 신문에 까일라쉬(kailash) 연못에서 기우제를 드리던 힌두인들의 사진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수력발전을 하는 네팔에선 건기가 계속되면 전기가 끊기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호텔 같은 곳에선 자가발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저녁

 

방 안에서 책만 읽다가 무료함을 달랠 겸, 잠시 산책을 하기로 했다. 호텔 직원들은 아닌데, 호텔 부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밀가루를 둘둘 말아 둥그런 나무 방망이로 밀더니 한 웅큼씩 뜯어내는 것이 수제비를 만드는 모습과 흡사했다. 그 중 한 명이 한 손바닥을 가슴 앞에 세워 인사를 해 왔다. 양손으로 합장하여 인사를 하는 이들과 다른 것으로 보아 승려인 것 같았다.

 

그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후,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향했다. 숲에서 알 수 있는 나무라곤 밑둥을 양팔로 감아도 겨우 반을 감는 수령 수백 년이 됐음직한 소나무와 뿌리를 드러낸 보리수, 편백, 측백, 무궁화로 보이는 나무, 담쟁이 정도였고, 한국에선 문화재로 지정됐음직한 거목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경이로울 만치 잘 보존된 산림을 보며 찬탄을 해야 할 텐데, 오히려 '정체' 혹은 '화석화'라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누군가의 말처럼 "꽁무니에 있으면 귀신에게 잡힌다."는 세상, 급하게 달려 나가는 사회에 너무나 익숙해진 탓이려니 하는 생각을 하며, 계속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숲길을 거닐며 거듭 든 생각은 이 숲은 '인간에 대한 신의 배려'가 아니라, 네팔인들의 '신에 대한 인간의 배려'를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무 밑둥 썩은 공간에 모셔놓은 힌두인지 불교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신, 큰 줄기가 벌어지기 시작한 곳에 다산을 기원하며 만들어 놓은 신, 나무줄기에 촛대를 설치할 수 있게 매달아 흔들리는 신 외에도 나무를 돌다보면 한 그루의 나무에만 해도 큰 나무인 경우는 수 십의 신들을 모시고 있었는데, 숲은 신을 모실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긴 호텔 안 화장실에도 항아리 뚜껑을 뒤엎고 물을 담가 두고, 담쟁이 잎과 보리수 잎을 띄우고 있었는데, 객실 종업원 말에 의하면 뱀의 신을 경배하기 위한 물이라고 했다. 그런 물을 담은 그릇들은 호텔 곳곳에 설치돼 있었는데, 네팔 신들은 거할 곳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네팔인들은 신을 만든 백성들인 셈이다. 그런 백성들이 가난과 함께 배우는 체념, 아니 가난보다 먼저 배우는 체념을 담고 있는 것이 숲 속에서 보았던 제단들인 셈이다. 신들의 나라에도 해가 떨어지자 밤이 되었다.

 

 


태그:#네팔, #카투만두, #더르바르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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