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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남일당 건물 1층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용산 남일당 건물 1층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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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들은 용역들에게 맞아보고 이러면서 '잘못됐다'는 걸 알기 때문에 뭉칠 수밖에 없어요. 우리들밖에는 서로를 도울 사람이 없거든요. 정부가 어느 날 갑자기 터전을 잃어버린 철거민들을 지원하거나 도와주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들겨 패고 잡아다 가두잖아요.

언젠가는 밝혀져야죠. 밝혀질 거라 믿습니다. 저희는 그 일(용산참사) 있었던 전날까지도 장사했고, 나라에 세금 내려고 부가세 신고도 준비하고 있었어요. 정부가 국민을 이렇게 버리면 안 되는거죠. 시간이 길어질 수는 있어도 틀림없이 진실은 밝혀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은 짧은 접견시간 동안 "진실은 분명히 밝혀질 것"이란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망루 위에서 경험해 알고 있는 진실에 대한 '확신'이기도 했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답답한 현 상황에 대한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1월 20일 새벽의 서울 도심 한복판. 죽지 않을 수 있었던 6명의 목숨이 졌다.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 사람이 있다!"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진압하던 경찰에게 그들은 사람 이전에 '도심 테러리스트'였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100일이 훌쩍 넘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말이 없다. 그렇게 비극은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계속 반복되고 있다.

시아버지 잃고, 남편은 구치소에

5명의 희생자 유가족 모두가 그렇겠지만, 특히 정영신씨(35)는 그 비극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번 사고를 통해 시아버지를 잃었다. 또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남편 이충연씨(37)는 다리인대며 연골, 폐 손상으로 인해 병원 치료 중인 상태에서 '경찰진압을 방해하고 상해를 입힌 혐의'로 지난 2월 17일자로 구속 수감됐다. '기구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듯 영신씨를 덮쳐왔다. 

100일이 지난 지금 영신씨와 그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29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충연씨의 면회 길에 부인 정영신씨, 형님 이성연씨와 동행했다. 서울구치소 측에 미리 정식으로 취재요청을 부탁했으나, "미결수용자로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허락되지 않아 접견실까지 동행할 수는 없었다.

"오전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거의 매일 같이 온다"는 영신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접견신청서'를 작성했다. 신청서를 접수하고 30여 분 정도가 지나자 접견이 허락됐다. 이충연 씨의 형님 이성연씨는 30분 만에 접견이 허락된 것도 다행이라는 듯, "운동시간이나 식사시간이 걸려서 2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고 말하며 쓸쓸하게 웃었다.

"단 10분이지만 얼굴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서울구치소 접견대기실에서 접견신청서를 들고 남편 이충연 씨의 면회를 기다리고 있는 부인 정영신 씨
 서울구치소 접견대기실에서 접견신청서를 들고 남편 이충연 씨의 면회를 기다리고 있는 부인 정영신 씨
ⓒ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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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견 시간은 단 10분. 부부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접견실의 유리벽은 두꺼웠고, 마이크가 없이는 어떤 말도 전달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의 얼굴을 만질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다. 그나마 서로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마이크도 접견 시간 1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진다.

한 쪽 벽에 목발을 세워두고 앉아 있는 이충연씨의 얼굴은 해쓱했으나 다행히도 "건강해 보였다"고 한다. 영신씨는 "일전에 면도하지 않으면 면회하러 오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요즘은 깔끔하게 하고 나온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건강상태를 묻자, "구치소 측 의무실과 얘기해 2~3주에 한 번 정도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충연씨는 "다른 것보다 가족들에게 죄송스럽다"며, 특히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힘든데도 함께 해주는 동지들도 의지가 많이 되지만, 그런 의미와 다르게 아내가 많은 의지가 된다"는 것. 실제 영신씨는 매일 밤마다 전자서신을 통해 충연씨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10분이 지나고 꺼져버린 마이크를 대신해 영신씨는 몸짓으로 "밥 많이 먹고 나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형님 성연씨는 짧은 접견이지만 "얼굴 보는 게 어디냐"며 "건강 확인하고 얼굴 보는 걸로도 좋다"고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이충연씨 외에도 용산참사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구속은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남경남 전철연 위원장과 박래군 범대위 공동대책위원장에게도 소환장이 발부 된 상태고, 29일에도 전철연 관계자 한 명이 구속됐다고 한다. 정영신씨는 "다 잡아가려나 보다"고 한숨을 쉬었다.

구치소에서 맞는 첫 번째 결혼기념일

영신씨 부부는 다가오는 24일 결혼 1주년을 맞는다. 6년 열애 끝에 시작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달콤한 신혼은 꿈꿀 수도 없었다. 철거에 맞서야 했던 1년이었다. 충연씨가 처음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을 맡겠다고 했을 때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고 한다. 상황은 자상하고 따뜻하기만 하던 남편을 투사로 만들었다.

"말렸죠.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근데 남편 말이 '우리야 젊으니까 어딜 나가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들이나 지역에 나이 많으신 분들은 어디 나가서 어떻게 사느냐'는 거죠. 다 땅 값이 올라서 갖고 있는 돈으로 갈 곳도 없어요. 둘이 이 문제로 다투다 나중엔 제가 졌죠. 남편이 틀린 얘기 하는 건 아니니까요.

아시다시피 저희 남편이 체구가 좀 작아요.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역들에게) 끌려가서 맞고 온 날도 부지기수에요. 철거지역은 완전 무법천지에요. 정말 '그만하고 나가자'는 말이 절로 나오죠. 그런데도 위원장(이충연 씨)은 약 바르고 다음 날이면 또 나가요. 제가 남편이 밖에 나가 있으면 잠을 못 잤어요. 어디서 어떻게 될까봐…"

부부의 첫 결혼기념일을 남편은 구치소에서, 아내는 병원 영안실에서 맞이하게 된다. 영신 씨는 "남편은 결혼 1주년인 것도 잘 기억 못하고 있더라"며 아쉬움을 표했지만, "같이 생활하고 있는 유가족들과 범대위 분들이 구치소 앞에서 이벤트를 해준다고 했다"고 밝은 표정이었다.

"내일도 똑같을까봐 그게 걱정이죠"

이충연씨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부인 정영신씨와 형님 이상연씨
 이충연씨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부인 정영신씨와 형님 이상연씨
ⓒ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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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슬픔, 이런 비극'을 인내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전하는 따뜻한 마음과 연대에서 오는 기쁨인 듯 했다. 100일이 넘게 살 부대끼며 함께 생활해 온 유가족들은 이제 "정말 가족같다"고 했다.

부인 정영신씨와 형님 이상연씨는 "생활방법이 다 달랐던 다섯 가족이 모여 생활하다보니 자다 깨는 건 일도 아니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옆에서 떠들어도 잘 잔다"고 너스레를 떤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시간 속에서 누군가가 먼저 장례를 치르겠다고 말할 법도 한데, "명예회복하고 진실을 밝히기까진 장례가 없다는 의견도 공통적"이라고 했다.

정씨는 "3개월 전만 해도 손주들 재롱 보는 낙으로 살았던 어머니고, 아이들 뒷바라지며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평범한 분들이 우리 유가족들"이라며, "들어가지 않는 밥을, 또 하루를 버티기 위해 먹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100일을 맞는 것도 특별한 감흥이 없다. 그저 "내일도 똑같은 날이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남들이 100일이라고 하니까 100일이구나 했어요. 우리는 어제랑 똑같아요. 내일도 똑같을까봐 그게 걱정이죠. 자고 일어나면 '오늘은 뭔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자는데, 그냥 어제랑 똑같은 거예요.

진짜 100일이 됐는데도…차가운 냉동고에 있는 돌아가신 분들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조금…대통령이 사과 한 마디만 하면 장례는 치를 거 아니에요. 편하게 눈이라도 감게 해드리고 싶은데…1000일이 안 오길 기다려야죠…그런데 지금같은 상태면 1000일도 갈 것 같아요."

29일 오후, 용산참사 100일 추모제는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서 서울시청에서 서울역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엄혹한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고 이성수씨의 부인 전재숙씨는 "당신들을 양지 바른 곳에 묻고 잔디로 따뜻하게 덮고 주변에 민들레를 심고 싶습니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소박한 이들의 소망은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남겨진 유가족들의 이 길고 지루한 싸움의 끝은 어디일까.


태그:#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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