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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고객 응대를 위한 노력이 보이는 이동건 상담원의 자리. 오른쪽 위에는 언제든지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울이 있다.
 친절한 고객 응대를 위한 노력이 보이는 이동건 상담원의 자리. 오른쪽 위에는 언제든지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울이 있다.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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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더 도와드릴 것은 없는지요."

지난 1일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KTF 고객센터. 노동절임에도 고객 전화를 받는 상담원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언제나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 상담센터의 특성 때문이다.

수많은 칸막이에서 쉴 새 없이 들리는 여성 상담원들의 목소리 사이로 남성 목소리도 들린다. 내가 이곳에 취재를 온 이유는 남성 상담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총 220명이 근무하는 이곳엔 60명의 남성 상담원이 있다. 하지만 여성 목소리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남성 상담원들의 목소리도 부드러운데다, 남성들은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친절하게 응대하기 위해 목소리 톤을 조금 높이는데, 목소리만 듣고 여자라고 오해하기도 하세요. 야한 농담까지 하시는 분도 있고요. 한계에 다다랐을 땐 원래의 굵은 목소리를 내는데 그러면 당황하시곤 하죠. 어떤 상담원은 트랜스젠더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하하~"

고객센터 상담부서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동건(31)씨의 말이다. 이씨는 "처음 입사했을 땐 지금보다 남자가 훨씬 적었다"며 "그동안 남자 상담원으로서 재밌는 일도, 고충도 많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고객 센터 곳곳을 구경하며 여느 직장과 다른 이곳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남성 상담원의 상담내용, 한 번 들어보니

기자가 상담원과 함께 상담 내용을 듣고 있다.
 기자가 상담원과 함께 상담 내용을 듣고 있다.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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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원=여자'라는 무언의 등식 때문일까, 아니면 상담센터에서 남성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 많은 고객들이 남성 상담원의 목소리에 놀라 'KTF 상담센터 맞죠?'라고 물어오곤 한다. 하지만 직업에 성역이 어디 있으랴.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하지 못할 일이란 없다. 고객들 중에는 남성 상담원들이 더 믿음이 가고 신뢰감을 준다는 이유로 남성 상담원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일반부서에 불만사항이 접수되면 민원부서에 연결이 되는데, 그곳은 남성 상담원들이 90%예요. 똑같은 내용을 말하는데도, 고객들은 남성 상담원이 더 믿음이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를 더 많이 배치하죠."

그렇다. 이동건씨의 말대로 남성 상담원들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신뢰감이다. 여성보다 더 상급자일 것이라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팀장과 센터장, 가장 높은 직책인 부장까지 모두 여성이다. 게다가 한 번도 남성이 팀장 이상의 직급을 맡은 적이 없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각 층 입구마다 붙어있는 조직도. 아기자기함이 느껴진다.
 각 층 입구마다 붙어있는 조직도. 아기자기함이 느껴진다.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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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남성 고객들과 연결된 고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했다. 기자가 직접 동건씨와 고객의 대화 내용을 살짝 들어보았다(개인정보 누출은 없었으며, 사생활을 침해할 상담 내용 또한 없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조금 떨리네요, 사실 고객들의 전화는 지금도 받을 때마다 떨려요. 그럼 테스트 한 번하고 받겠습니다."

곧, 신호음이 가고 첫 번째 고객과 전화가 연결되었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핸드폰을 다시 개통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떨린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동건씨는 아주 능숙하게 고객의 요구사항을 해결해주었다. 고객의 만족도도 높았다.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전화에서도 그의 고객 응대는 여성 상담원에 비해 흠잡을 데 없었다. 특히 아주머니의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도 친절하고 밝은 목소리로 상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가끔 남성 상담원들에게 남편 얘기, 자녀 얘기를 풀어놓으며 신세 한탄을 하는 아줌마도 있다고 한다.

친절, 남성 상담원에겐 가장 힘든 일

하지만 업무 내용에 있어서는 남자들에게 더 어려운 곳임에는 분명하다. 좁은 공간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고,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말솜씨도 능숙해야 한다. 또, 친절함까지 몸에 배어야 한다. 하지만 동건씨는 "일 자체는 정적이지만, 여러 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일은 동적인 업무이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항상 긴장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대신 항상 친절해야 하는 일에는 그도 어려움을 느낀다. 피곤할 때나 힘들 때가 특히 그렇다. 때문에 그의 책상엔 항상 거울이 놓여 있다. 웃는 얼굴로 고객을 대하면 어느새 목소리에도 웃음이 번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성 직원들에게는 오고 싶은 회사일 것 같다는 기자의 물음에 동건씨는 "남자 직원들 나름대로의 고충도 존재한다"며 고개를 젓는다.

"직원들과 친해지기 위해선 여자들의 수다에 적응해야 하는데 낯을 가리는 남성 직원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에요. 또 사소하지만 한꺼번에 엘리베이터를 타야할 때도 난처해요. 여성분들이 꽉 차있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거든요."

고객센터 내의 모습. 천장에는 이번 달 생일인 사원의 자리에 풍선이 달려있다.
 고객센터 내의 모습. 천장에는 이번 달 생일인 사원의 자리에 풍선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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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사원 통화내역을 들을 수 있는 핑크존. 그 옆 자리는 당일 생일인 사원의 자리다.
 우수 사원 통화내역을 들을 수 있는 핑크존. 그 옆 자리는 당일 생일인 사원의 자리다.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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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화장실 또한 대부분을 여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7, 8, 9, 10층 중에 남자화장실은 9층 하나뿐이고 나머지 층은 여 사원들이 모두 이용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소수자(?)가 된 남성들의 불편함은 예상외로 작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회사 곳곳의 예쁜 인테리어들은 여성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화목한 분위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생일을 맞은 사원들의 책상 천장엔 한 달 내내 풍선이 달려 있다. 생일 당일엔 사원들의 자리를 풍선으로 꾸며주기도 한다. 또, 핑크 데스크, 그린 데스크 등을 만들어 고객에게 칭찬 받았던 상담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각 층마다 붙어 있는 각종 행사와 엠티 때 찍은 사진들도 눈에 띄었다.

이동건씨는 이곳에서 더 큰 선물을 받기도 했다. 상담센터에서 만나 1년 넘게 만난 여자친구와 5월에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평생의 짝을 만났으니 그에겐 이곳이 가장 좋은 직장이 아닐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2년 동안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현재 목표는 이곳에서 남성 최초로 팀장이 되는 것입니다.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남성 상담원에 대한 편견도 사라지겠죠?"

성(性)의 고정관념이 없는 상담센터, 그곳에서 남성 상담원에 대한 또 다른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각종 행사와 MT 때 찍은 사진들을 예쁘게 꾸며놓았다.
 각종 행사와 MT 때 찍은 사진들을 예쁘게 꾸며놓았다.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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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남성 상담원 , #고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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