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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ms of the year 1929》 겉그림. 일흔 해를 묵은 사진책 하나입니다.
 《Photograms of the year 1929》 겉그림. 일흔 해를 묵은 사진책 하나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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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ms of the year 1929>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 <Photographs of the year>라는 사진책도 있을까 궁금한데, 서울 홍제동에 있는 헌책방 '대양서점'에서 <Photograms of the year 1927>과 함께 만났습니다. '포토그램'은 '포토그래피'하고 달라,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은 여느 사진하고는 사뭇 새삼스러운 모습을 느끼게 합니다. 세계 사진 역사 첫머리부터 이렇게 여러 갈래 사진을 해 왔구나 하고 돌아보면서, 이처럼 여러 갈래를 차근차근 짚고 살피고 익히는 가운데 오늘날 같은 수많은 사진길이 가지를 뻗었으리라 생각합니다.

<Photograms of the year>는 해마다 한 권씩 나오는 사진책입니다. 1929년에는 34회, 1927년에는 32회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첫호는 1895년에 나온 셈일 텐데, 책 겉장과 안쪽에 적힌 판권을 헤아리다가 깜짝 놀라고 맙니다. 왜냐하면, 1929년치 34호를 보면, 책은 영국에서 찍고 세계 여러 나라에 지점을 열어 책을 팔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토쿄, 오사카, 교토, 후쿠오카, 삿포로, 고베, 나고야, 요코하마, 센다이'까지 자그마치 아홉 곳에서 '팔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한 나라에 한두 곳일 뿐이고, 네덜란드가 네 곳쯤 되지만, 아시아에서 일본만큼은 아홉 군데라는 대목은, 그저 스쳐 지나갈 만한 팔림새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진기를 처음 만든 나라가 일본이 아님에도 일본은 오늘날 세계 사진기를 주름잡습니다. 사진을 배우러 미국이며 프랑스며 영국이며 간다고 하지만, 세계 사진잡지와 사진책을 주름잡는 나라 또한 일본입니다. <アサヒグラフ> 같은 주간 사진잡지는 1923년부터 나왔고, <アサヒカメラ> 같은 월간 사진잡지는 1949년부터 나왔습니다. <アサヒグラフ> 호수는 수천에 이르며, <アサヒカメラ> 호수는 몇 해 뒤 1천 호에 이르게 됩니다.

일본 번역문화를 돌아보면, 왜나라가 조선을 쳐들어온 뒤 시애 유성룡 님이 가슴을 저미며 쓴 <징비록>이 나라안 지식인한테는 거의 안 읽혔어도 일본으로 옮겨져 일본 지식인한테는 두루 읽혔습니다. 일본은 일찍부터 '한국말 통ㆍ번역 가르치는 책'을 만들어 한국말을 배웠습니다. 남녘땅 역사를 누구보다 잘 갈무리하면서 치우침없이 바라본다고 손꼽히는 <조선사>라고 하는 책은 일본 역사학 교수 가지무라 히데키 님이 썼습니다. 그런데 가지무라 히데키 님은 한국땅을 밟은 적이 없으며, 오로지 '일본말로 옮겨진 한국 역사책'과 '일본사람이 쓴 한국 역사책'만을 자료로 삼았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속그림.
 속그림.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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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책꽂이를 휘 둘러봅니다. 제 나이 열일곱부터 제 깜냥껏 바지런히 들여다본 책이 차곡차곡 꽂혀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제가 보았고, 그러께부터는 옆지기를 비롯한 동네 이웃과 함께 보고 있으며, 앞으로는 우리 아이가 같이 볼 책입니다. 다른 갈래보다 사진책을 알뜰히 갖추려 애쓰는 한편, 만화책과 그림책과 문학책과 어린이책과 교육책과 인문책과 사전붙이와 생태환경책을 제법 갖추었습니다. 마냥 사들인 책이 아니라 하나하나 살피면서 머리와 가슴으로 읽고 새긴 책입니다. 책을 잘 모르는 분들은 '사진책은 사진하는 사람만 보는 책'으로 잘못 알곤 합니다. 또한,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책'으로 그릇되게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만화책과 함께 그림책을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만화책과 그림책이란 '어린이부터 볼 수 있는 책'이지 '어린이만 좋아하는 책'이 아닙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만 문학책을 보지 않고, 문학으로 '사람 삶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이들이 문학책을 골고루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진책은 '사진하는 사람만 보는 책'을 넘어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보는 책'인 한편, '사진으로 우리 세상을 읽어내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보는 책'입니다. 그림책과 만화책으로 마음밭을 가꾸는 가운데 어린이책과 교육책으로 마음바탕을 일구고, 문학책과 인문책으로 마음자리를 단단히 추스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올바르게 꿰뚫거나 헤아릴 줄 아는 눈길을 선보이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포토그램'은 "카메라를 쓰지 않고 감광지 위에 직접 물체를 놓고 빛을 비추어 음영(陰影)을 만드는 사진 기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느 '사진(포토그래피)'하고 사뭇 다릅니다.
 '포토그램'은 "카메라를 쓰지 않고 감광지 위에 직접 물체를 놓고 빛을 비추어 음영(陰影)을 만드는 사진 기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느 '사진(포토그래피)'하고 사뭇 다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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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Photograms of the year 1929>를 들춰봅니다. 연변대 사진학과 이영욱 교수님은 이 사진책을 넘겨보시더니 '회화 수법으로 찍는 사진'은 요즈음만이 아닌 옛날부터 있었음을 요즈음 사진쟁이가 잘 모를 수 있겠다고 말씀합니다. 사진밭 첫머리부터 요즈음까지 두루 살피고 곱씹으면 '회화 수법'만이 아니라 수많은 솜씨가 두루 펼쳐지면서 발돋움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뭔가 새롭고 새삼스러운 사진을 하는 듯 여길 수 있으나, '진작부터 해 오던 사진'임을 깨닫지 못하는 셈입니다.

헌책방 '대양서점' 2매장 아저씨는 저한테 이 책 두 권을 팔며, "옥션 같은 데 올리면 훨씬 비싸게 팔 수 있지만, 아무래도 사진을 좋아하며 다리품 파는 분한테 드려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헌책도 새책도, 또 사진책도 그림책도 하나같이 '값어치로 따지는 물건'이 될 수 있지만, 삶자락 보듬는 이음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 사진책을 보며 더없이 부러우면서, 한국 사진책을 보며 그지없이 안타까운데요, 나날이 많이 애쓰기는 하나 아직 우리 사진쟁이는 우리 스스로와 이웃 삶자락을 부둥켜안고자 다리품 파는 일에 너무 게으릅니다. 새로 나오는 사진책에나, 헌책방에서 새 임자 기다리는 사진책에나, 돈 한푼 기꺼이 바치지 못합니다.

-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 02) 394-4853

속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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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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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 찍은 사진책을 일본에서는 여러 곳에서 '판매'를 했습니다. 그만큼 일본은 사진 문화와 역사가 깊고 넓다는 이야기입니다.
 1920년대에 찍은 사진책을 일본에서는 여러 곳에서 '판매'를 했습니다. 그만큼 일본은 사진 문화와 역사가 깊고 넓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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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사진잡지 <포토넷>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사진책, #헌책방, #대양서점, #포토그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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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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