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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수중보는 보기엔 좋지만 물고기들의 이동을 막는 수중생태계 위협 구조물이다
 잠실수중보는 보기엔 좋지만 물고기들의 이동을 막는 수중생태계 위협 구조물이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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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강종합개발을 하면서 둔치를 콘크리트로 쌓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물길도 토막토막 잘라놓아 생태계에 치명상을 준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게 잘라놓은 물길 중의 하나가 1986년에 완공된 잠실 수중보다.

총길이 920미터인 잠실 수중보에도 물론 물고기길은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경사도 10도에 높이가 50센티미터나 되어 물살을 거슬러 오르내릴 수 있는 물고기는 누치나 강준치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동안 잠실 수중보를 사이에 두고 한강 상하류의 어종이 달랐다. 물고기들의 이동이 막힌 때문이다. 하류 쪽에는 웅어와 철갑상어, 몰개, 숭어 꺽정이 등 10여 종류가, 상류에는 버들매치, 납자루, 참붕어, 두우쟁이, 미꾸라지 등 10여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두 줄로 늘어서 잠실대교를 떠받치고 서있는 교각들
 두 줄로 늘어서 잠실대교를 떠받치고 서있는 교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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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뒤늦게나마 지난 2006년에 잠실 쪽 수중보 옆에 작은 물고기들도 오르내리기가 좋은 물고기길을 만들어 주었다. 2006년에 만든 물고기길은 폭 4미터, 물속 계단 높이 10센티미터에 길이 228미터로 물살이 완만하게 흐르게 되어 있었다.

지난 18일 주말에 찾은 잠실 둔치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잠실대교 밑 수중보 옆에 만들어 놓은 물고기길로 다가가자 물길 건너 둑 위에 비둘기 몇 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물고기길을 살펴보았지만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물고기길 울타리에 "참게를 잡지 마세요, 참게 잡다 적발되면 벌금 30만원"이라는 경고장이 붙어 있었다.

근처에 노인들 둘이 앉아 있는 초소가 보인다. 다가가니 노인들이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물고기길을 지키는 자원봉사 노인들이었다. 물고기길에 오르내리는 물고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묻자 지금은 계절이 맞지 않아서라며 자세히 살펴보면 무언가 보일 것이라고 한다.

2006년에 만들어진 물고기길. 맨 오른편 물길이 경사가 완만하여 수많은 물고기들이 오르내린다. 이곳에서 비둘기가 둑 위로 기어오르는 참게를 사냥한다.
 2006년에 만들어진 물고기길. 맨 오른편 물길이 경사가 완만하여 수많은 물고기들이 오르내린다. 이곳에서 비둘기가 둑 위로 기어오르는 참게를 사냥한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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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이제 5~6월 산란기가 되면 수많은 물고기들이 오르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산란기에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는 물고기 종류와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는 물고기 종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산란기가 되면 붕어와 잉어 같은 종류는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지만 뱀장어는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수많은 물고기가 오르내리는 모습이 장관이라는 것이다. 전에는 이곳에서 참게를 잡는 광경을 많이 봤는데 경고장도 붙여놓고 이렇게 노인들이 지키니 참게 잡으려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다고 하자 그렇다고 한다.

저 위로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까? 콘크리트 물길 벽을 기어오르는 참게들
 저 위로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까? 콘크리트 물길 벽을 기어오르는 참게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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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녀석들이 대신 참게를 잡아요"하고 물고기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런데 노인들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비둘기 몇 마리가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럼 비둘기가 물고기를 잡는단 말인가? 이건 뭔가 이상하다. 가마우지나 백로라면 모를까 비둘기는 물고기를 잡는 새가 아니지 않는가.

"아니 어떻게 비둘기가 물속에 사는 참게를 잡지요, 갈매기나 백로도 아니고..."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노인들도 덩달아 웃는다.

"비둘기가 물속에서 참게를 잡는 것이 아니고 저 둑 위로 기어오르는 게를 잡아 쪼아 먹어요. 저 건너편 둑에 가보면 비둘기들에게 잡혀 먹은 참게 발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럼 저 비둘기들이 '참게 잡는 사냥꾼 비둘기'들이네요?"

그렇다고 한다. 노인들의 말을 듣고 다시 물고기길로 다가가 살펴보기로 했다. 내가 물고기길을 살펴보는 것을 보고 몇 사람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비둘기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고 한 마리만 그대로 앉아 머리를 갸웃거린다.

참게 너희들 올라 오기만 해봐라. 참게를 노리는 사냥꾼 비둘기
 참게 너희들 올라 오기만 해봐라. 참게를 노리는 사냥꾼 비둘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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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잠시 후 물고기길 물속에서 정말 참게 세 마리가 콘크리트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곁에 서있던 사람들이 긴장한다. 곧 비둘기가 날아와 참게를 낚아 챌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게들은 더 이상 위로 기어오르지 않았다. 물 가까운 곳에서 조금 기어올랐다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둑 위의 비둘기도 기다리기에 지쳤는지 머리만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너 참게들 위로 기어 올라오기만 해봐라!"하고 벼르고 있는 모습 같았다. 노인들 말에 의하면 비가 내리는 날이나 석양 무렵이면 게들이 위로 많이 기어오르는데 그때가 바로 비둘기들의 공격 기회라는 것이다.

이날 비둘기들이 참게들을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콘크리트 벽을 기어오르는 참게들과 그 참게들을 노리며 기다리고 있는 비둘기들의 모습에서 비둘기들이 참게들을 공격하여 쪼아 먹는다는 것을 충분히 헤아려 알 수 있었다. 참게들을 공격하여 쪼아 먹는 비둘기들. 한강 잠실수중보 옆 물고기길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진풍경이 생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참게, #사냥꾼 비둘기, #잠실수중보, #이승철, #물고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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