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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따로 없다. 함평 쪽으로 가본다. 그러고 보니 함평 나비대축제가 며칠 남지 않았다. 지금쯤 함평천지가 꽃천지로 변하지 않았을까? 기대만큼 마음이 가볍다.

 

함평 경계를 넘어선다. 여기저기 나비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산등성이와 비탈에 설치해 놓은 나비 선전탑도 눈에 들어온다. 초록 들판에서는 금세라도 나비가 훨훨 날고, 곤충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유채와 자운영도 꽃을 많이 피웠다. 분홍색 꽃잔디는 활짝 피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절정은 아니다. 축제 때 절정을 이루도록 꽃씨를 늦게 뿌린 것 같다. '꽃천지'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다.

 

뒤따르던 차들이 앞지르기를 해댄다. 들판을 해찰하느라 서행한 탓인가 보다. 하지만 관심 밖이다. 다른 때 같으면 반사적으로 속도를 높였을 텐데…. 급할 이유가 없었다.

 

속도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창 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녘까지도 한가롭게 다가선다. 산천의 색채도 싱그러움을 맘껏 뽐내고 있다. 남도의 봄이 화려한 봄꽃에서 초록으로 옮겨가고 있다.

 

 

함평과 인접한 무안 땅으로 접어든다. 군(郡)의 경계를 넘어서자마자 백로와 왜가리 집단서식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표지판을 따라 농로를 타고 달린다. 황톳빛 들판엔 마늘과 양파가 자라고 있다. 모내기 때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땅도 보인다.

 

백로와 왜가리가 떼를 지어 사는 곳은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용월리. 서해안고속국도 무안 나들목에서 무안읍 방면으로 5분 거리다. 지금은 이 새들 덕분에 '학마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논길을 따라 들어가 저수지를 돌아서니 철새들의 서식지가 눈에 들어온다. 청용산이다. 산이 희끗희끗하다. 하얀 새들이 산을 온통 하얗게 덮고 있다. 예슬이가 "예전에 와본 곳"이라며 반긴다.

 

차를 세우고 저수지를 따라 거닐며 새들을 살펴본다.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하다. 마치 수백 마리의 개구리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같다. 날갯짓도 부산하다. 어떤 것은 나뭇가지에 앉아 따사로운 봄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이것들도 남도의 봄이 아름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자기들끼리 몸을 부대끼며 사랑을 속삭이는 무리도 보인다. 산란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떤 건 이리저리 날갯짓을 하며 비행시범이라도 보이는 것 같다. 예슬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즐거워한다. 그 날갯짓에 마음이라도 실어 보낸 모양이다.

 

용월리가 이른바 '학마을'이 된 것은 1960년대 중반의 일이다. 8·15해방을 전후해 모여들기 시작한 새들이 20년 사이 그렇게 변했다. 청용산을 중심으로 백로 2000여 수와 왜가리 500여 수 그리고 해오라기 수십 수가 찾아들면서 천연 번식지를 이뤘다는 것이다.

 

왜가리는 음력 정월 대보름, 백로는 춘분을 전후해서 이 곳으로 찾아든다. 이것들은 여기서 알을 낳고 번식을 하다가 10월에 동남아로 다시 이동한다고. 마을사람들은 이 새들이 마을의 액운을 없애주고 또 마을을 부흥시켜 준다고 믿고 있다. 새들을 보호하는 데 온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새들의 서식지는 천연기념물 제211호로 지정돼 있다. 지난 1968년의 일이다. 조류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철새를 탐조한다며 사진동호인들과 관광객들의 발길도 심심치 않게 찾아든다.

 

 

주차장 옆 전망대에 오른다. 예전과 달리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여기서는 대형 망원경을 통해 새들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의 깃털 하나까지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예슬이는 새의 움직임도 움직임이지만, 공짜라는 게 더 좋은 모양이다. 망원경에 돈을 넣지 않고도 새를 볼 수 있다는 데 대해 큰 행운이라도 잡은 것처럼 좋아한다. 하긴 망원경을 통해 경치를 보려면 500원짜리 동전 하나는 넣어야 하는 게 경험을 통해 얻은 현실. 작은 배려지만 학마을의 넉넉함이 묻어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새들의 개체수가 더 많아 보인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백로와 왜가리가 내려앉아 있는 소나무 숲이 마치 하얀 눈송이를 얹고 있는 것 같다. 장관이다. 목적하지 않고 왔다가 새떼들의 군무를 보니 큰 행운이라도 얻은 것 같다.

 

마을회관 옆 장독대에선 된장 익어가는 냄새가 묻어난다. '학동네된장'이다. 그 옆 논엔 연보랏빛 자운영이 피어 있다. 참 아름다운 환경친화마을이다.

 


태그:#학마을, #무안, #용월리, #청용산, #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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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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