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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사직구장, 부산갈매기. 이 세 단어를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면? '노래는 힘이 세다', 가 모범 답안이다. 아니라고 우기며 딴죽을 걸어도 어쩔 수 없다. 오직 하나 뿐인 '정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다른 답안도 얼마든지 가능한 '모범' 답안이니 말이다. 정답만 찾아 헤매는 삶은 우울을 동반한 비극이다.

힘센 노래의 기운으로 우울한 교육 현실의 모범 답안을 만들어가는 대중가수들이 늘고 있다. 메시지가 분명한 직설 화법의 노랫말이 선동적인 선율에 담긴 '민중가수'들이나 '민중노래패'들의 노래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매우 대중적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들 역시 힘은 셌다.

그런데 '민중가수'들이나 '민중노래패'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현실 비판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이 이제는 대중가요를 통해 공공연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논란과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교육 현실과 관련한 대중가요들이 잇달아 나와 주목을 받고 심지어 세대를 넘어 인기를 누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90년대 초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들고 나왔던 '교실이데아'나 '컴백홈'이 그런 조짐을 보인 적이 있긴 하지만 대중가요 전반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블랙홀] 사랑한다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를 수도 있는 전설의(?) 록그룹 '블랙홀'.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노래를 만들었다"라는 게 주상균(기타ㆍ보컬)씨의 설명이다.
▲ 블랙홀 '사랑한다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를 수도 있는 전설의(?) 록그룹 '블랙홀'.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노래를 만들었다"라는 게 주상균(기타ㆍ보컬)씨의 설명이다.
ⓒ <교육희망> 유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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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단 20돌을 맞이하는 록그룹 '블랙홀'이 지난 2월 내놓은 디지털 싱글 'Living in 2009'에 담긴 "꿈을 줘요, 아이에게. 함께하는 아름다움을"로 시작하는 '사랑한다면'이 그 첫 곡이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선생님들을 위해 지은 곡"이라는 것이 블랙홀의 리더 주상균(보컬, 기타)씨의 말이다. 이 노래가 나올 당시 일제고사와 관련해 교사들의 무더기 해직이 이어지던 무렵이라 더욱 듣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주상균 씨는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가방에 짓눌리는 아이. 시험에 늙어가는 아이('사랑한다면' 노랫말 중에서)"에게 꿈을 주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다.

[데프콘] 힙합유치원

"노란색 학원버스 앞에서 학원에 가지 않으려고 칭얼대는 아이와 이를 떠다미는 어느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어른들이 동심을 놓치고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 노래방에 가서 아빠와 아이들이 손을 잡고 이 노래를 흥겹게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는 것이 데프콘의 설명이다.
▲ 데프콘 '힙합유치원' "노란색 학원버스 앞에서 학원에 가지 않으려고 칭얼대는 아이와 이를 떠다미는 어느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어른들이 동심을 놓치고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 노래방에 가서 아빠와 아이들이 손을 잡고 이 노래를 흥겹게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는 것이 데프콘의 설명이다.
ⓒ 데프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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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에 이어 나타난 노래는 '힙합유치원'. 뭉게뭉게 말아 올린 파마머리가 인상적인 힙합가수 '데프콘(본명 유대준)'이 지난 3월초 싱글 앨범 'Love Sugar'에 담아 내놓은 노래다.

"이제는 달라 학원만 여덟 군데 / 아이들은 지치고 지쳐가"라며 학교와 학원을 맴도는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힙합리듬의 노래로 그려낸다. "꿈이라도…오늘은 놀자"라는 대목에 이르면 힙합 리듬의 경쾌함은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변한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시쳇말로 '떴다'. 덕분에 데프콘은 방송 등 출연 섭외가 평소보다 곱절 이상 늘었다고 한다.

힙합 리듬에 실린 아이들 4명의 목소리와 어우러진 노래는 귀에 쏙 들어온다. 세상에 둘도 없는 음치라도 한두 번만 들으면 저절로 흥얼거리게 될 정도다. 힙합이라는 장르를 그리 즐기지 않는 이들도 거부감이나 부담이 없다.

"노란색 학원버스 앞에서 학원에 가지 않으려고 칭얼대는 아이와 이를 떠다미는 어느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어른들이 동심을 놓치고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 노래방에 가서 아빠와 아이들이 손을 잡고 이 노래를 흥겹게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는 것이 데프콘의 설명이다.

[YB밴드] 물고기와 자전거

"한 방송사의 다큐프로그램에서 학업 부담으로 자살한 초등학생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입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교육 현실을 꼬집었다"는 설명이 없었다면 교육 현실을 말하는 노래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은유가 담뿍 담긴 아름다운 노랫말이 장점이다.
▲ YB '물고기와 자전거' "한 방송사의 다큐프로그램에서 학업 부담으로 자살한 초등학생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입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교육 현실을 꼬집었다"는 설명이 없었다면 교육 현실을 말하는 노래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은유가 담뿍 담긴 아름다운 노랫말이 장점이다.
ⓒ 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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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이라는 이름의 8집 새 앨범을 발표한 그룹 YB(윤도현밴드)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사실 이번 앨범 전체가 적극적이고 노골적인 현실 참여 발언들이다. (이 앨범으로 YB에게 '좌빨' 논란이 일었다) 팀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박태희 씨가 노랫말을 쓴 '물고기와 자전거'라는 곡이 교육 현실에 대한 발언을 담고 있다.

"한 방송사의 다큐프로그램에서 학업 부담으로 자살한 초등학생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입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교육 현실을 꼬집었다"는 설명이 없었다면 교육 현실을 말하는 노래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은유가 담뿍 담긴 아름다운 노랫말이 장점이다.

"은유적으로 가사를 쓰면 듣는 이들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교육에 대한 것뿐 아니라 다른 고민들도 할 것 같았다"라는 것이 박태희 씨가 직설 표현 대신 비유를 선택한 이유다. 

"YB 멤버들이 모두 초등학교 전후의 아이를 기른다. 그러다보니 교육 현실에 관심이 생겼다. 현재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평소 지니고 있긴 했지만 최근 학부모가 되면서 훨씬 구체적으로 와 닿는 것들이 있었다. 멤버들끼리 관련된 이야기도 자주 한다."

박태희 씨는 물론 YB멤버들 모두가 자신의 아이들을 통해 교육문제에 더욱 관심이 깊어졌고 그것이 노래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제목의 '물고기'와 '자전거'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교육현실 비판 노래, 우울하면서도 반가워

이처럼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고민의 흔적을 담은 노래로 뒤틀린 교육 현실을 때론 강한 록음악으로 혹은 경쾌한 힙합으로, 아니면 빛나는 은유의 노랫말로 표현하는 대중가수들의 출현은 우울하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그만큼 지금의 교육을 둘러싼 상황이 불안하고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들이 하는 록음악이나 힙합 모두 현실 비판을 주요 모티프로 다루는 음악 장르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들은 모두 앞으로도 이러한 음악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항을 모티프로 하는 대중음악 장르를 통해 현실을 풍자하거나 비트는 건 오래 전부터 간간히 있어왔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 두 달 사이에 잇달아 같은 문제의식을 나타내는 가수와 노래의 등장은 분명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대중음악이 시대의 유행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대중가요의 등장은 시대의 우울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통속적 가벼움과 경쾌함을 넘어 시대의 우울을 핍진하게 노래하는 대중가요의 현실 참여 현상을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 씨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이런 활동들이 최근에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것은 지난 시절과는 다른 정부기 때문이다. 이에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듣는 이들도 위기의식을 느껴 절실히 반응하는 것이다"라고. 아울러 "블랙홀이나 YB처럼 현실 참여를 계속 해오던 가수들이 하는 것도 의미가 크지만 새로운 가수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형식과 세대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시대의 괴로움을 담아내는, 힘을 가진 노래들이 자꾸 만들어지는 건 분명 불행한 일이다. 더욱이 그것이 교육 문제를 다룬 것들이고, 그 노래들이 시대의 모범 답안처럼 대중들의 공감을 얻는 건 더욱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더욱 힘이 센 새로운 노래들의 출현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건 단지 그 노래들의 힘만을 믿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모범 답안들을 통해 '희망'을 찾아보려는 대중들의 건강한 욕망이 끊임없이 샘솟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태그:#블랙홀, #힙합유치원, #윤도현밴드, #교육, #대중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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