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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이른 아침 섬진강 벚꽃길을 홀로 달리는 기분은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에 올릴만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이른 아침 섬진강 벚꽃길을 홀로 달리는 기분은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에 올릴만 합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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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미국 배우인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나와 두 할아버지가 벌이는 모험을 담은 재미있는 영화 <버킷 리스트>에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이 여러가지 나옵니다. 뭐 꼭 죽기 전이라는 다소 과한 표현은 제쳐두고서라도 제게도 사월의 봄이 오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벚꽃이 십리길에 걸쳐 만발한다는 섬진강길을 자전거 타고 달려보는 것이지요. 하늘을 덮을 듯 풍성한 나무와 꽃들 사이를 아무 생각없이 홀로 지나가보고 싶었습니다. 영원할 것처럼 화려하게 피어났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속절없이 지고 마는 벚꽃의 숙명을 생각해볼때 사월초 이맘때가 아니면 내년까지 다시 기다려야 하는 실행하기 까다로운 소원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섬진강 십리 벚꽃길을 놓치지 않으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아예 일주일 전부터 기차예약을 해놓았습니다. 서울 용산역에서 야밤에 출발하여 섬진강이 가까운 곡성역에 새벽녘에야 도착하는 무궁화호 기차를 선택했습니다.

여행하기엔 좀 힘든 시간을 선택한 것은 꼭두새벽같이 섬진강가를 부지런히 달려 차들과 사람들에 부대끼지 않고 십리 벚꽃길을 감상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섬진강길은 벚꽃 축제로 사람반 차량반의 주차장이기 십상이니까요.

지도를 보니 곡성역에서 구례역을 지나 화개장터가 있는 남도대교를 건너 쌍계사 부근의 십리 벚꽃길 까지는 50여Km가 되더군요. 아직 자전거 고수가 아닌 제게는 만만치 않은 거리로 느껴집니다만 '버킷 리스트'들이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는 거라면 재미도 성취감도 안들겠지요. 

구례역에 내려서 섬진강길을 따라 십리 벚꽃길을 찾아가면 거리는 더 가깝지만 섬진강가를 더 오래 느끼고 싶어 곡성역에 내리니 새벽잠에서 깨어난 직원분이 눈을 비비며 맞아 주십니다. 어스름한 신새벽에 동이 트기를 기다리며 곡성역옆에 있는 기차마을도 구경하고 사람도 차도 개들도 모두 잠이 들어 조용하기 이를데 없는 곡성읍 동네를 혼자서 한바퀴 돌아보기도 합니다.

낮에는 여름같이 더운 날씨라 옷을 얇게 입고 와서 섬진강가를 달리자니 새벽녘 강가의 습한 차가움에 손이 시렵고 꽉 다문 입술도 덜덜 떨립니다. 몸에 열을 내면 덜 추울까하여 페달을 밟은 다리를 위아래로 열심히 젖습니다.

섬진강가에는 산들이 인접해 있어서 그런지 목소리도 다양한 새들이 많습니다. 이 새벽에 일찍도 일어나 수다를 떨며 지저귀고  있는 새들이 마치 추위에 손이 곱아 어쩔줄 모르는 미련한 자전거 여행자를 위해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고 있는 것 같네요.

가끔씩 지나가는 차외에는 사람은 커녕 개도 짖지 않는 적막하고 고요한 섬진강길을 달려갑니다. 이 적막함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강물 흐르는 소리가 어찌나 크고 청명한지 듣고 있던 이어폰을 떼어내고 자연이 들려주는 생방송을 감상해봅니다. 십리 벚꽃길이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면 이른 아침 섬진강가의 새소리와 흐르는 강물 소리는 귀와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주는 것 같습니다.

곡성역 부근 섬진강길에는 짧지만 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자전거 도로도 만들어져 있고 강 저편으로 건너 갈 수 있는 소박한 사람 전용 다리도 있네요. 강의 상류여서 그런지 수량이 풍부해 보이고 부지런한 인근 식당 주인들이 손에 작은 바가지를 들고 강가에 들어가 무언가를 열심히 잡고 있습니다. 자전거 대여소들도 있는데 그 중 '대여비 5천원 대여시간 무제한' 이라는 간판의 글자를 보니 괜히 흐뭇해지네요.

곡성역에서 출발한 섬진강길은 강가에서 가깝다가도 멀어지기도 해서 때론 뒤에서 다가오며 질주하는 차량들에 신경을 쓰며 국도 갓길을 한참 달리기도 해야 합니다. 섬진강 길도 물어보고 따듯한 물도 얻어 마시고자 길가에 일찍 문을 연 어떤 건축사무소에 들렸다가 전라도 사투리로 푸근하게도 말을 하시는 사장님에게 하동 녹차를 두 번이나 우려서 얻어 마셨네요.

두어시간동안 손을 호호 불으며 달렸던 찬 몸이 그 분의 따듯한 인심과 하동 녹차에 한방에 풀렸습니다. 이왕 숙박을 하려면 섬진강가의 화엄사에서 하루 자보면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하시면서 화엄사에 들어가 원주스님을 찾아 자기에게 전화를 하라고 명함까지 주시네요. 우려 마실 때마다 색다른 맛이 났던 하동 녹차와 함께 한동안 생각날 것 같은 정다운 분이셨습니다.  

작은 바구니를 손에 든 부지런한 주민들이 아침 일찍 섬진강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잡고 있습니다.
 작은 바구니를 손에 든 부지런한 주민들이 아침 일찍 섬진강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잡고 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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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깊은 심청이가 나오는 동네가 전라남도 곡성이라고 합니다. 심청이가 전라도 사투리로 얘기하면 이채롭고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효심깊은 심청이가 나오는 동네가 전라남도 곡성이라고 합니다. 심청이가 전라도 사투리로 얘기하면 이채롭고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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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가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소들을 보니 시골사는 외갓집 친척들을 만난 것 같이 반가웠습니다.
 섬진강가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소들을 보니 시골사는 외갓집 친척들을 만난 것 같이 반가웠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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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역을 지나면서 다시 섬진강옆 강변길을 따라 차가 거의 없는 도로를 기분좋게 달립니다. 여기도 십리 벚꽃길 만큼이나 많은 벚꽃 나무들이 도로 양옆에 서서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길 바로 옆에는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으니 길가의 벚꽃나무들과 함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봄 날의 조화로움을 이루고 있네요.

이제 아침을 맞이한 섬진강변 동네는 주민들도 보이고 개들도 기상의 나팔소리 울리듯 저와 애마를 보고 짖을때쯤 여행자는 섬진강가의 전망좋은 다리 남도대교를 넘어서 십리 벚꽃길이 있는 쌍계사로 향합니다.

남도대교위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섬진강의 널따란 풍경을 감상했는데 정말 올해 가뭄이 심한지 상류와 달리 강물이 많이 말라 있더군요. 강가의 메마른 물줄기는 산속의 메마른 나무줄기를 보는 것처럼 안타깝습니다.

십리 벚꽃길을 어서 달리고 싶어 분주히 문을 열고 있는 화개장터도 들리지 않고 부지런히 페달을 밟습니다. 저만큼이나 부지런을 떠는 사람들이 몇몇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순백의 벚꽃들과 연한 분홍색을 띤 벚꽃들이 어서 오라고 나뭇가지를 길게 늘어 뜨리며 봄 바람에 꽃잎을 실어서 날려 줍니다. 가져온 디카로 이 진풍경을 담아 보기도 하면서 그림을 잘 그렸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림같은 봄 풍경입니다.

국위를 선양하고 귀국한 올림픽 선수단에게 뿌리는 그런 많은 꽃잎들이 장장 이백리길을 추위에 떨며 찾아온 여행자의 머리위에 눈 내리듯 내립니다. 차도 인적도 드문 십리 벚꽃길을 자전거와 함께 달리며 벚꽃나무에게 꽃잎으로 환영까지 받으니 저만의 버킷 리스트에 올릴만 하네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 덕분인지 섬진강가의 벚꽃들은 아직도 건재해서 꽃잎을 휘날리며 봄 날의 강변길을 화사하게 꾸미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의 전후로 그 절정이 될 것이라고 하니 죽기전에 아니 (꽃이) 지기 전에 섬진강 벚꽃길을 한 번 거닐어 보세요. 

구례를 지나는 섬진강변에도 흐드러진 벚꽃나무가 많아 눈호강을 하며 덜 힘들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구례를 지나는 섬진강변에도 흐드러진 벚꽃나무가 많아 눈호강을 하며 덜 힘들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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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 벚꽃길가에 있는 화개(花開) 중학교. 학교 이름도 참 서정적입니다.
 십리 벚꽃길가에 있는 화개(花開) 중학교. 학교 이름도 참 서정적입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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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옆에 끼고 꽃잎을 날리는 벚꽃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거닐만하지요?
 섬진강을 옆에 끼고 꽃잎을 날리는 벚꽃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거닐만하지요?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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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리를 힘들게 달려온 노고가 전혀 아깝지 않은 십리 벚꽃길입니다.
 이백리를 힘들게 달려온 노고가 전혀 아깝지 않은 십리 벚꽃길입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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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화개장터 옆 작은 화개 버스터미널에서 서울, 부산 등을 오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좋습니다.



태그:#섬진강, #벚꽃, #곡성역, #구례역, #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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