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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봉평에서 산책길에 노란 꽃이 너무 이뻐요. 어느날 그걸 잔뜩 뽑아다 우리 집 앞에 가득 심었지요. 노란 꽃을 하나 가득 심고 있는데 길가던 동네 할머니들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겁니다. 뭐하냐고. 이뻐서 가져다 심는다고 했더니 저를 정신나간 사람 취급해요. 그게 바로 돼지감자꽃인데 밭에 한번 퍼지면 어찌나 무성하게 자라는지 밭작물도 망친다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걸 가득 심어놓고 얼마 있다 가서 보니 너무 신기한 게 정말 돼지감자 주변에 잡초가 자라질 못하는 겁니다. 무성한 돼지감자꽃 밑에 잡초들이 해를 못보고 비실비실한 거죠. '이거다'하고 혼자 소리를 뻑 질렀습니다."

 

다니고 있는 작은 교회에 조화순 목사의 강연회가 있었다. 여성노동자들의 친구로, 암흑의 시절 무소불위의 정권 앞에서도 할 말을 다하며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일흔일곱살의 조 목사는 강원도 봉평에서 깨달은 일화를 전해주었다. 그중에 돼지감자를 심으며 동네에서 '등신'취급을 받았다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가 내내 마음에 남았다.

 

지난주에는 한국언론재단 산하의 지역신문발전위원회(지발위)가 주최한 기금 지원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에 다녀왔다. 5년 연속 지발위 기금지원 신문사로 선정된 고양신문사에서 기금과 관련한 기획안 제출은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이번 설명회에서 여러 사업 중 많은 지역신문사들이 관심을 갖고 있던 사업은 '지역포털'추진 건이었다.

 

일간과 주간을 포함해 전국에서 그래도 국가가 규모와 공신력을 인정한 신문사들에게 지역의 온라인공간을 포괄해내는 지역포털 사업을 추진해보라고 권유한 것은 오히려 지발위였다. 고양신문사 역시 인구 100만에 육박하는 도시에 걸맞는 지역포털은 굳이 지원이 아니더라도 일찍부터 준비해오던 터라 사업에 적극 관심을 갖고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기대를 품고 설명회에 참석한 60여개 지역신문사 관계자들은 설명회 말미에 지발위 관계자로부터 "문화관광부의 갑작스런 통보에 따라 지역포털 지원사업은 어렵게 됐다"는 말을 듣게 됐다. 설명회 전날 문광부로부터 통보를 받았고, 오전까지 관련 조율을 거쳤지만 결국 설득에 실패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를 갖고 노는 게 아니냐"는 항의성 질문이 이어졌고 지발위 관계자도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문광부가 "특정 신문사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허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고. 신문사에 국가 예산을 지원하는 부분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안마다 다른 입장은 당연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지원대상자가 일명 '조중동'이라 불려지는 중앙언론사였다면 문광부와 지발위가 이렇게 갑작스런 통보를 정말 '겁없이'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2월에 열렸던 선정사 설명회와 지발위 홈피를 통해 수차례 알려왔던 내용을 사전 공지 없이 설명회 당일 "어렵게 됐다"고 전달한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다.

 

일단을 보고 전체를 평가하는 일은 현명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가 작은 신문사에 관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다수 지역신문 관계자들의 평가다. 작은 언론은 힘이 없다. 아마도 앞으로 짧은 기간 안에 힘을 갖게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작은 언론의 당위는 누가 부여해주는 것은 아니라 스스로 갈 길을 여는 주체들의 몫일 게다. 

 

돼지감자는 일반감자와 달리 9월말에 노란 꽃을 피워 뚱딴지라고도 불린다. 척박한 땅에서도 엄청나게 뿌리를 뻗어 농민들에게 천덕꾸러기가 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당노병과 각종 성인병에 효능이 있는 '천연의 인슐린' 이라 하여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얘기는 돼지감자가 1.5m에서 3m에 이르는 장신으로 자란다는 사실이다. 지역언론사들이 돼지감자처럼 큰 키로 자라 지역에서 받은 사랑을 제대로 보답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고양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지역신문,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발위, #돼지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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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 대안언론이 희망이라고 생각함. 엄흑한 시기, 나로부터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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