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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인력감축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국가인권위) 직제 개정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 5일째인 3일 오전. 초비상 사태에 처한 위원회를 꾸려가야 하는 김칠준 사무총장은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는 이날 새벽 2시까지 MBC <100분토론>에 패널로 나갔고, 오전 일찍 상임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곧바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 중에도 몇 차례씩이나 '긴급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쪽지가 전달됐다. 김 사무총장은 "급한 회의 참석하라고 하면 가슴부터 철렁하다"고 말했다.

 

<100분토론>은 국가인권위 조직축소를 둘러싸고 찬반 양측이 만난 첫 공개토론 자리였다. 국가인권위 입장에서는 행정안전부의 조직축소 근거자료가 무엇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인권위는 지난 몇 달간의 협의과정에서 정확한 조직진단 자료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토론회에서 박찬우 행안부 조직실장은 "국민권익위원회 고충처리와 비교했을 때 인권위 진정 업무량이 40%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김 사무총장은 "권익위 파견인력은 30명 이상이고 국가인권위 파견인력은 5명이다, 게다가 권익위와 달리 기획조사도 하고 정책권고도 한다"고 맞섰다.

 

이날 인터뷰에서 김 사무총장은 "행안부가 계속 '나름대로의 근거자료를 갖고 있다'고 해서, 혹시 우리가 모르는 자료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며 "그런데 어제 토론해보니 우리 위원회 업무를 실질적으로 분석한 것도 아니었다, 토론이 끝나고 더 답답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행안부가 (인권위 조직 축소의 근거라며) 준 것은 A4 2쪽·3쪽짜리 자료들인데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다"며 "제일 상세한 것이 국무회의 설명자료인데, 인권교육본부 수강인원 통계나 국민권익위원회와 단순 비교 정도"라고 비판했다.

 

"인권위 권고가 일반 도덕관념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는 질문에 대해 김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회 다수자가 보기엔 '국가인권위가 왜 더 시끄럽게 만드냐'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운명적으로 사회적 약자·소수자 편에 서야 한다. 소수자가 왕따당할 때 달려가야 한다. 그렇게 가서 물어봐주는 것이 조사기능이고,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이 권고기능이고, 그런 일이 없도록 관행과 제도 바꾸자는 것이 정책기능이고, 다수에게 소수자 존중하자고 설득하는 것이 교육기능이다."

 

김 사무총장은 "국가인권위가 무소속 독립기구라는 점에 대해 출범 당시 여야는 합의했다"며 "국가인권위법 만들 때 비록 한나라당 안은 부결됐지만, 예산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동행명령권을 갖는 등 오히려 당시 민주당보다 진일보한 내용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촛불집회 관련 권고로 인권단체로부터도 '뒷북'이라고 비난받고, 보수세력들에게 '좌편향'이라는 비난을 받은 것에 대해 그는 "중요한 일은 서둘러 처리하면 안된다"며 "더구나 인권위원들의 추천 경로가 다양하기 때문에 만장일치나 그에 준하는 합의가 있어야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경찰만 문제삼고 시위대 폭력은 판단하지 않냐는 비난이 있지만, 당시 전원위 합의는 '전체적으로 경찰이 자제했지만 특정 상황에서 다소 문제 있는 법집행을 했다'는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인권위 축소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사무총장은 "그건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인사조치... "초과인원도 인권 동료"

 

직제 개정령안은 6일부터 발효된다. 국가인권위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와 대통령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했지만, 일단 21% 감축을 기본으로 하는 인사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초과인원은 태스크포스나 지원근무 발령 등으로 기존 업무를 계속할 것"이라며 "강제적으로 '정원내'와 '정원외'로 가르지만, 모두 '인권 동료'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다음은 김칠준 사무총장과의 인터뷰 전문. 인터뷰는 3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사무실에서 약 1시간 동안 이뤄졌다.

 

- <100분토론> 잘 봤다. 토론에 나선 소감이 어떤가.

"공개적 토론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늦어서 아쉽지만 아직 권한쟁의심판청구를 했으니 공개 논의의 장은 필요하다. 그런데 토론이 끝나고나니 답답함이 더 심해졌다. 행안부가 계속 '나름대로의 근거자료를 갖고 있다'고 해서, 혹시 우리가 모르는 자료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어제 토론해보니 우리 위원회 업무를 실질적으로 분석한 것도 아니었다."

 

- 조직축소 직제개정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뒤 무엇이 달라졌나.

"가장 크게 고민하는 부분은 이런 거다. 헌재에서 가처분 결정이 날 때까지 독립성에 관한 문제제기는 유효한데, 그렇다면 직제령에 대해서 어떤 입장 가져야 하는 것인가. (인권위 독립성 차원에서) 곧장 수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수용하지 않는 것은 법을 따라야 할 국가기구로 도리가 아니다. 많은 고민 속에 다른 방법이 없어서, 헌재 결정을 기다리면서도 일단 직제령에 따른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마음의 준비뿐 아니라 실무적 준비도 물리적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 직제령 개정령안 국무회의 통과 이후 국제사회 반응은?

"아직 국무회의 통과 이후의 반응은 없다. (통과되기 전) 유엔인권최고대표도 이미 이 상황을 우려하는 서한을 보냈고,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7개국을 대표해 알렉시 아사타슈빌리 멕시코 국가인권위 대표가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권한쟁의심판청구도 국제사회에서 관심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갑자기 우리가 인권후진국이 된 것은 아니고,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내년으로 예정된)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의장국으로 한국이 선출 될지 여부는 향후 국가인권위 대응에 달려 있다고 본다."

 

"입법 당시 한나라당 안, 인권위 재정 독립성도 보장했다"

 

- 행안부는 "지금 국가인권위 인력으로도 당분간 여유가 있다"는 것인데, 이후 사업이나 업무 공백은 없나.

"인력이 남아서 줄인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계속 업무가 확대되어 지금도 늘 인력 부족으로 허덕인다. 인력을 재배치하고 나면 사업 조정이 불가피하다.

 

직제령은 다음주 월요일(6일)부터 발효된다. 준비할 시간도 없었고, 상황상 초기에는 비상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정원이 감축되면 (법정인원을 넘어서는) 초과인원이 발생한다. 초과인원도 당장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고 태스크포스팀이나 지원근무 발령으로 기존 업무를 계속할 것이다. 강제적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정원내'와 '정원외'로 가르게 되지만, 모두 '인권 동료'라고 생각한다."

 

- 그동안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에서는 시민단체 출신이 너무 많고 이 때문에 편향적 권고가 나온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출신이 그렇게 많지 않다. 너무 많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대한변협·유엔고등판무관실도 시민단체로 보고 민간 경력자를 싸그리 시민단체 출신이라고 분류한다. 국가인권위는 전례가 없는 국가기구다.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가 없었다면 지난 7년 동안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채용과정이 얼마나 공개적이고 투명하냐 하는 것인데, 충분한 검증절차를 거치고 있다.

 

편향성 문제에 있어서는, 나를 예로 들어도 된다. 10여년 전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장이었는데 당시 그 운동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모든 언론에서 대단히 칭찬하는 것이었다. 운동본부에서 다룬 첫 사례가 공중전화 부스 유리창에 찔린 어린이 문제였는데, 이게 부모나 아이의 부주의 탓이 아니라 공공시설 안전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 활동들이 지금 시대에 비난받을 일인가."

 

- 국가인권위는 "그동안 안경환 위원장 요구에도 행안부가 정확한 축소 근거자료를 주지 않았다"고 비판해왔는데, <100분토론>에서 행안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는데.

"안경환 위원장이 행안부 담당 국장에게 (조직개편) 최종안을 통보받는 자리에서 '근거자료를 보내달라'고 말했고, 행안부 쪽에서도 보내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정작 실무자가 받으러 갔더니 이미 줬던 자료 외엔 없다고 했다. 제대로 된 자료를 주지 않았다.

 

행안부가 준 것은 A4 2쪽·3쪽짜리 자료들인데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다. '기능의 최소화' '업무 효율화' 정도만 나와 있다. 제일 상세한 것이 국무회의 설명자료인데, 인권교육본부 수강인원 통계나 국민권익위원회와 단순비교 정도다. 그것도 정식으로 우리 위원회에 준 것이 아니다. 제대로 하려면 위원회가 어떻게 업무를 하는지 분석해야 한다. 국민권익위 고충처리 건수와 인권위의 진정건수 등의 통계 비교를 하는 것은 업무 분석이 아니다."

 

"'촛불집회 경찰진압 인권침해' 결정, 아쉬운 점 없다"

 

- 그동안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아닌가. 좀 더 공세적으로 싸우든지, 반대로 양보안을 내서 타협할 여지는 없었나.

"양면의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늘 고민했다. 그런데 국가기구로서 우리 주장을 펼치는 방법은 법적 절차에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타협이나 협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전제는 '독립성·자율성'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인권 후퇴의 전례를 만든다."

 

- 결국 촛불집회 인권침해 권고가 결정적 계기가 된 것 아닌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는 분석에 동의하나.

"그건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 촛불집회 권고는 인권단체로부터도 '뒷북'이라는 비난을 들었고, 정부나 보수단체 쪽에서는 '좌편향'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지금 시점에서 아쉬운 점은 없는지.

"그런 것 없다. 양측의 심정은 이해한다. 왜 신속하고 강하게 권고하지 못했냐는 지적이 있는데, 중요한 일은 서둘러 처리하면 안된다. 더구나 우리 인권위원들이 다양한 추천 경로를 통해 오신 분들인데 만장일치나 그에 준하는 합의가 있어야 했다. 최대한 모든 위원이 동의하도록 결정내렸다.

 

'왜 경찰 폭력만 지적하고 시위대 폭력은 판단하지 않냐'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당시 전원위 합의는 '전체적으로 경찰이 자제했지만 특정 상황에서 다소 문제 있는 법집행을 했다'는 것이었다. 문제 삼은 대목들은 경찰 내부 지침이나 인권교육자료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이었다."

 

- 이전 정권 시절에도 이라크파병·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의 사안에서 정부정책과 다른 권고를 낸 적이 많았지만 인권위 독립성이 흔들리진 않았다.

"정책 권고를 하니까 입법·사법부에게 국가인권위가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정책이 국제인권원칙에 부합된다면 국가인권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무소속 독립기구다. 적어도 출범 당시 여야는 이 부분에 대해 합의했다. 국가인권위법 만들 때 비록 한나라당 안은 부결됐지만, 예산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동행명령권을 갖는 등 오히려 당시 민주당보다 진일보한 내용도 많았다."

 

- 인권위 권고가 일반 도덕관념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사회 다수자가 보기엔 '국가인권위가 왜 더 시끄럽게 만드냐'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운명적으로 사회적 약자·소수자 편에 서야 한다. 소수자가 왕따당할 때 달려가야 한다. 그렇게 가서 물어봐주는 것이 조사기능이고,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이 권고기능이고, 그런 일이 없도록 관행과 제도 바꾸자는 것이 정책기능이고, 다수에게 소수자 존중하자고 설득하는 것이 교육기능이다."

 

- 이런 논란 때문에 앞으로 정부정책에 쓴소리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또 국가인권위가 소신대로 권고하더라도 권위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변함없이 꿋꿋하게 나아갈 것이다. 동료들의 의지도 분명하다. 권고를 얼마나 수용할지는 우리가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하느냐에도 좌우될 것이다. 생활 속 인권침해 문제는 특별히 인권위 권고의 권위가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인권위 권고가 더 많이 수용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과거엔 권고만 했다면 이제는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당 기관과 협의 설득하겠다."

 

- 올해초 독립성 가이드라인 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진행됐나. 중장기적으로 법제도를 개선하는 '독립성 복원' 구상은 없나.

"원래 계획 속에 '업무 독립성 실무 가이드라인 사업'이 있었는데 조직축소 문제 때문에 늦춰졌다. 이제부터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국가인권위가 헌법기구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 법안 체계라도 이번 기회에 독립성 보장을 명확하게 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길 바란다."


태그:#김칠준, #국가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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