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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떠났다. 걸어서 가는 길이 아니다. 양 팔꿈치, 양 무릎, 이마를 땅에 완전히 대는 (오체투지) '고행의 길'이다.

 

잠깐 가다 마는 길이 아니다. 28일 오후 2시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을 출발한 이들의 올해 기착지는 북한의 묘향산이다. 1차 목표는 서울시청을 거쳐 임진각 망배단까지 이르는 총 230km. 북으로 가는 길이 막힌다면 기약 없는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 이날 일행들이 3시간 동안 온 몸을 던져 거닌 길은 2km 남짓에 불과하다.

 

이날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 안마당에서 가진 오체투지 순례 출발행사는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고제를 알리는 열음 의식을 시작으로 정화 및 영신, 천지신께 차를 바치는 참신,고천문 낭독, 수덕사 설정 스님의 법문, 신경림 시인의 시낭독, 이현주 목사의 축원기도로 시작됐다.

 

의식이 끝나자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전종훈 신부를 선두로 200여 명의 순례단이 긴 기도순례의 대장정에 올랐다.

 

수경 스님-문규현 신부-전종훈 신부 선두로 200여 명 참여

 

사람들은 묻는다. 문명의 시대에 왜 기어서 가느냐고. 길을 떠난 사람들은 답한다. 잘못 살아온 길을 뉘우치고 더 이상 잘못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서라고. 이어서 말한다.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기 위해서라고.

 

사람들은 또 묻는다.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다시 답한다. 납작 엎드려 지렁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더 많이 벌어 편하게 살기를 바라지 말고 불편하지만 소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이쯤 되면 더 물을 수가 없다. 그들의 참회가 잘못 살아온 다른 사람들의 삶과 사회 부조리까지 송두리째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던져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르침을 청하는 대상은 '길'이다. 길 위에서 길을 향해 길을 묻는다. 그리고 땅바닥에 몸을 던지는 고통의 길에 '사람, 생명과 평화의 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묘향산까지 남과 북 소통의 길을 굳이 몸으로 뚫어 보겠다는 것도 길 위에 평화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길 위에 납작 엎드려 길을 묻는다

 

지난해에는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해 오체투지로 계룡산 신원사까지 몸 길을 닦았다. 그런데도 올해 이들이 고행길을 재차 떠나는 것은 아직까지 기도의 효력이 세상에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경 스님은 묵언 순례에 앞서 <오마이뉴스> 기고문에서 "도덕과 윤리의식의 부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전 부문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위기는 바로 진보와 보수, 여야, 대통령과 국민이 모두 서로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대의 고통과 온 생명(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노력이 없다"며 "하나 더 가지기 위해 상대를 짓밟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규현 신부는 "용산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야비하고 야만적인 사건으로 새해를 시작해야 했다"며 "비이성적인 개발주의 광풍과 돈에 눈먼 탐욕과 무자비에 쓰러진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사죄의 길을 떠난다"고 말했다.

 

문 신부는 이어 "20년 전 북한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 학생과 함께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과해 남으로 돌아왔다"며 "이제는 남에서 북으로 가 소통과 화해, 상생의 길을 두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깨달음?... 단 한 번만이라도 오체투지 경험해 보라"

 

하지만 사람들은 거듭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느냐고. 이들은 답한다. 스스로 성찰해서 깨달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또 묻는다, 어떻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느냐고.

 

길 떠나는 이들이 다시 답한다. 근원을 생각하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오체투지를 경험해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함께 기도하고 순례하며 '길'위에서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아보자고.

 

신경림 시인은 이날 직접 낭송한 시를 통해 "우리가 염원하는 것은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모두 하나가 되고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모두 하나가 되고 남쪽 북쪽 모두 하나가 되는 세상"이라고 염원했다. 이현주 목사는 "왜 고행의 길을 떠나는지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새로운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이날 오후 5시. 신원사에서 공주시로 향하는 국도변에서 오체투지 순례 첫 날 일정이 마무리됐다. 아니 오체투지 순례가 시작됐다.

 

이들의 고행 길 여정을 이렇다.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 → 평택→ 오산→ 과천→ 용산→ 서울 시청→ 은평구 구파발→ 임진각 망배단→  묘향단>

 


태그:#계룡산, #오체투지, #수경스님, #문규현 신부, #전종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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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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