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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교과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람이라면 한번 쯤 접해보는 행사는 전교회장선거다. 선거 때만 되면 등굣길에는 "기호 1번 XXX입니다"라는 구호 소리가 나돌고, 여기저기 명함 돌리는 친구를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시끄러운 행사의 재미난 특징 중 하나는 저학년 땐 들뜬 마음으로 투표를 하는데 고학년에 오를수록 기권표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사실상 고학년들에겐 전교회장 선거 따위는 그저 수업 빠져서 좋은 시간일 뿐이다.

여기서 잠시 지루한 얘기로 빠질 필요가 있겠다. 다시 말해 인민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선거란 무엇인가"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현대민주주의는 인민의 의사를 의회가 대리하는 간접민주주의 형태를 띤다. 왜냐하면 직접민주주의는 현실적, 이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리적 범위가 광범위한 현대 국가에서 몇천만의 인민이 모두 법안 심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무리인데다, 직접민주주의로는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과 균열을 해소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선거를 통해 채택된 소수의 대표자가 인민의 의사를 대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있어서 선거는 인민의 의사를 반영할 대표자를 뽑는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왜 고학년들이 대체로 전교회장 선거에 회의적인지 알 수 있다. 전교회장이 다수 학생들의 의사를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학교의 행정 구조와 사제 간의 엄격한 위계구조 아래에선 학생회가 학교운영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오죽하면 '전교회장이 지키지 못할 공약 리스트'라는 유머가 인터넷에 떠돌까? 물론 이제 전교회장 후보들도 현실적으로(?) 변해서 두발자유나 급식 개선 같은 지키지도 못할 공약은 내놓지 않는다. 그저 음악 방송과 같은 언젠간 흐지브지 되는 공약이나 내놓을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우리나라의 급격한 투표율 하락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한다. 거칠게 말해 정치인들이 대다수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예로 민주화 이후로 사교육비 증가나 비정규직 문제, 주거문제, 양극화 문제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개선되기는커녕 심화되기만 했다.

전교회장은 제도적인 조치가 미비해서 공약을 못 지킨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87년 민주 항쟁을 거치면서, 물론 여러 학자들이 결함이 있다고는 지적하지만, 어느 정도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 충분히 조건은 갖춰져 있었다는 얘기다.

최근 한 국회의원이 의무투표제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투표에 불참한 국민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 내용이다. 법의 취지는 현재의 투표율 저하 현상을 막기 위한 방편일테다. 하지만 이런 강제적 투표는 씁쓸한 전교회장 선거의 추억만 떠올리게 할 뿐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적 무관심층은 후보자에 대한 정보 없이 투표하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가 왜곡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나을 우려도 있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원 분들께 한마디 하고 싶다. 선거에 국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기 이전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실천적 노력'을 보이시면 투표율은 자연스레 증가할 거라고.


태그:#선거, #의무투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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