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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한국의 대부분 초등학교에서는 전교어린이회 임원을 뽑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늘 이맘때만 되면 화려한 선거 벽보가 붙고, 요란한 선거 운동으로 시끌시끌합니다.

등교하던 아이들이 선거벽보를 보고 있습니다.
▲ 교문 앞에 내걸린 선거 벽보 등교하던 아이들이 선거벽보를 보고 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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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어린이 선거인지 국회의원 선거인지

선거 기간 동안 아이들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른들 선거 뺨칩니다. 날이 갈수록 선거 포스터가 화려해지더니 최근에는 돈을 많이 들여 전문점에 부탁해서 만든 컬러 인쇄 포스터가 등장하고, 입후보자 명함까지 등장합니다. 일부 지역의 일이긴 하지만 연설문도 대신 써 주고 연설하는 법까지 미리 배우는 학원까지 있다더군요. 요즘 선거 모습을 보면 이게 어린이전교임원 선거인지 국회의원 선거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선거 유세를 하러 교실을 돌아다닙니다.
▲ 선거유세 장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선거 유세를 하러 교실을 돌아다닙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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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이름이 적힌 손자보를 들고 등교하는 어린이들에게 한 표를 호소합니다.
▲ 선거 유세 모습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이름이 적힌 손자보를 들고 등교하는 어린이들에게 한 표를 호소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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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큰 레스토랑에서는 3월초 아이들 생일 파티가 유난히 많다고 합니다. 이것은 선거를 앞두고 부모들이 아이 생일을 3월초로 미리 당겨 하기 때문이랍니다. 큰 생일 파티가 아니어도 선거를 앞두고 아이들 사이에 크고 작은 초대가 이뤄지는 모습을 봅니다. 당선이 되면 '당선사례'는 필수입니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입후보자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도 합니다.

"너 뽑아주면 뭐 사줄래?"

언제부터인가 아이들 사이에서 당선됐을 때 무엇을 사 줄 것인가가 표를 찍어주는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급임원을 뽑을 때도 처음부터 '당선사례'는 하지 않는 것을 미리 못 박아놓고 선거를 하기도 합니다. 물론 교사 몰래 주고받는 것까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만.

요즈음 어린이회 임원 선거를 할 때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기표소 같은 선거 장비를 빌려서 선거하는 곳이 많습니다. 최근 어느 학교에서는 전자 투표를 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3월 초중순쯤 매스컴에 등장하는 학교 소식들을 보면,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진행하는 선거 과정과 예전과 달라진 선거 모습이 많습니다.

 각 교실에 모니터로 중계되는 후보자 정견 발표를 보면서 누구를 뽑을 지 가늠합니다.
▲ 정견 발표 모습 각 교실에 모니터로 중계되는 후보자 정견 발표를 보면서 누구를 뽑을 지 가늠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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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다 뻥이에요"

전교어린이회 임원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을 자세하게 살펴본 적이 있나요? 선거 포스터에 후보자들이 써 놓은 공약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손과 발이 되겠습니다.'
'공약사항을 잊지 않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웃음이 넘치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즐거운 학교,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당신의 가로등이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대변인이 되겠습니다.'
'우리 학교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뛰겠습니다.'
'축구대회를 개최하겠습니다.'
'왕따와 폭력이 없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꿈과 희망이 넘치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깨끗한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선생님과 제자의 벽을 허물겠습니다.'
……

그러나 과연 위에 있는 공약 중에서 전교어린이회 임원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후보에 나선 아이들이나 투표할 아이들나 이미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인 것을 다 압니다. 아이들은 말합니다.

"저거 다 뻥이에요!"
"선거 때는 다 그렇게 말하는 거에요."

선거가 끝나고 나면 후보자도 뽑아준 아이도 위 공약들을 모두 잊습니다.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임원도 없고, 왜 한다고 했으면서 안 지키느냐고 따지는 아이들도 없습니다. 심지어 선거가 끝나고 나면 새로 뽑힌 전교어린이회 임원이 누구인지도 다 잊습니다. 

전교어린이회가 하는 일은 오직 선거뿐

그동안 학교에서 보면 뽑을 때만 '공정'과 '민주'를 들먹거리고 선거 모습만 화려하고 요란할 뿐, 뽑고 나서 이들이 해야 할 일과 이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전교어린이회는 1년에 두 번 선거만 할 뿐 하는 일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전교어린이회가 사라진 가장 첫 번째 까닭은, 아이들이 학원 가느라 바빠서 전교 어린이회를 열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어찌어찌 연다 해도 전교어린이회 참여대상인 각 반 임원들이 모두 참여하지 못합니다. 회의를 시작하다 보면 또 한두 아이씩 빠져나갑니다. 아이들이 없으니 결국 회의다운 회의가 열리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전교어린이회가 사라진 두 번째 까닭은, 전교어린이회에서 아이들이 마음놓고 의논해서 결정할 내용이 제한되어 있고, 또 아이들이 결정했다 해도 그 다음에 실행할 어떤 권한과 책임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벽보와 요란한 선거 유세모습만 달라졌을 뿐,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초등학교 전교어린이회의 모습은 변함이 없습니다. 모두들 기억나시겠지만, 담당교사가 시키는 대로 다음 주에 아이들이 지켜야 할 생활 목표와 실천사항만 정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전교어린이회에서 정한 생활목표와 실천사항은 교사들만 강조할 뿐 아이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는 내용뿐입니다.

1년 동안 전교어린이회에서는 아이들이 지켜야 할 생활목표와 실천사항만 의논해서 정하다가 단 한 번 연말을 앞두고 불우이웃 돕기에 대한 회의를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교사가 회장단을 불러 '불우이웃 돕기 회의를 하라'고 주문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교어린이회에서는 불우이웃돕기에 대한 회의를 하는데, 이때도 불우이웃 돕기 하는 방법, 금액만 의논할 뿐, 하지 말자는 의견은 절대로 아무도 꺼내서는 안 됩니다. 전교어린이회의에서 금액과 방법이 정해지면 돈도 전교어린이회 임원들이 돌아다니며 걷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보면 전교어린이회는 돈 걷는 것까지만 할 뿐, 그 다음에 걷은 성금을 어디에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쓸지에 대해서는 권한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회의에서 의논할 사항도 아니었습니다. 걷은 돈은 학교에서 임의로 처리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운동부 식사값을 하고, 행정실 직원에게 나누어 주던 관행도 있었습니다.

전교 어린이회의에서 아이들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건의 사항'인데, 아이들은 건의사항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러나 건의사항을 말하는 부분은 꼭 앞에서 의논할 때 시간을 많이 써서 못하는 일이 많고, 또 건의사항에 아이들이 건의하는 내용을 올려도 건의사항은 건의사항일 뿐 아이들의 건의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모습은 학급 어린이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특활 시간에 학급어린이회가 있지만 학교 행사로 바쁠 때 가장 먼저 빼먹는 것이 학급 어린이회의입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자치와 자치교육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들은 어린이회에서 교사 눈치를 보며 교사가 시키는 내용을 의논해서 결정하기만 하지, 아이들 자신이 스스로 의견을 내서 의논해서 정한 것을 실천해 볼 기회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중고등학교에 가면 자치를 배울 수 있을까요? 현재 한국의 입시위주교육에서 중고등학교에 가면 자치는 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자치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교사들

교사들 역시 자랄 때 한 번도 진정한 자치경험을 갖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회의 시간을 보면 관리자의 지시전달사항으로 끝나고 맙니다. 다른 의견이 있어서 손을 들라치면 정작 관리자보다 일반 교사들이 퇴근 시간 늦어지게 손든다고 눈치를 많이 줍니다. 관리자 의견과 달라 적극 항의하면 '왜 우리 교장선생님 힘들게 하느냐'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른 의견을 얘기하는 것을 '매사에 부정적'이라고 합니다. 

학교운영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마련된 학교운영위 선거에는 늘 당연직 교장에 교감, 교무부장만 후보로 나서서 선거를 거의 하지 않는 분위기이고, 선거를 하게 되거나 일반 교사들이 후보로 나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학교운영위 선거를 할 때 보면, 평교사는 평교사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같은 평교사 대신에 관리자들 눈치를 보면서 관리자에게 투표하는 일이 많습니다. 또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평소 수업을 많이 빼먹고 불성실한 수업으로 원성을 사고, 친목회 운영과 친목회비 사용도 독단적으로 해서 교사 자신들도 늘 흉을 보고 욕을 하던 부장교사가 표를 가장 많이 얻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학교 현장에서 숱하게 많이 봐 왔습니다. 결격사유가 없다면 몰라도 누가 봐도 상대와 견줄 수 없이 교사로서 부적격 행동을 많이 한 교사가 표를 많이 얻어 교사 대표로 뽑힌 결과를 보고, 나름 '지성인'이고 '전문직'이라고 자부하는 교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교사들은 정작 아이들보다 못한 선거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선거를 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육현장에서 자신들 앞에 놓인 자치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들의 진정한 자치와 자치교육에 대한 절망은 점점 더 커져 갑니다.

덧붙이는 글 |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민주적인 생활태도를 강조하지만, 교사들은 정작 민주적인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 하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라 하고, 왜 자신의 얘기를 당당하게 발표하지 못하느냐고 아이들을 다그치지만, 정작 교사들 사이에서는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못하고,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써 보겠습니다.



태그:#전교어린이회임원선거, #전교어린이회, #초등교육, #자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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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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