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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트 선생님이 보내준 선물인 퀼트 식탁보와 컵받침, 뽀로로 식기 세트. 작은 집 모양 카드에 새로운 한 해를 축복하는 인사가 담겨있다. 이 선물을 받는 순간, 퀼트를 배우고 싶어졌다.
 퀼트 선생님이 보내준 선물인 퀼트 식탁보와 컵받침, 뽀로로 식기 세트. 작은 집 모양 카드에 새로운 한 해를 축복하는 인사가 담겨있다. 이 선물을 받는 순간, 퀼트를 배우고 싶어졌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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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서른 중반이 되도록 내 손으로 문풍지를 발라 본 적이 없다. 다세대 주택에 살면서 외풍이 센 날에는 보일러 온도를 올렸지 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본 적이 없다.

지난겨울, 남편이 문풍지를 발랐다. 결혼 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무늘보와 친구 하면 딱 맞을 내 남편을 움직이게 한 것은 찬 바람이 아니라 경제한파였다.

성과급이 줄어들고 비정규직 직원을 재고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정규직으로 고용된 남편은 저녁마다 괴로워했다. 사무실에서 2년 넘게 얼굴 맞대고 일해 온 동료들에게 해고 통지를 해야 하는 입장이 싫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아이만 키우는 아내에게 줄어든 월급 통장을 내밀기 미안해했다.

이 불황이 잠깐 불어온 삼한사온 한파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불어닥칠 눈보라라는 판단이 두 아이를 둔 아버지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한다. 마음이 복잡한 시절에 직장에서 괴로운 표정으로 돌아오는 사람에게 아내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장기 불황에는 생활습관부터 고쳐요

한겨울에도 반소매 티셔츠를 가볍게 입고 살던 정신 못 차리는 생활습관을 먼저 고쳤다. 경제 뉴스를 읽지 않아도, 경제 불황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 아니라는 남편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아예 습관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많이 오른 도시가스비를 최대한 줄이려고 애썼다. 내복을 새로 사기도 부담스러워 가벼운 긴 팔 면티셔츠를 두 개 입거나, 오랫동안 입지 않고 상자에 넣어두었던 가디건을 꺼냈다. 요즘 같은 이른 봄에는 보일러를 자주 껐다 켰다 하게 되는데, 이때 난방수가 식어서 다시 켰을 때 원하는 온도로 맞추기 위해 순간적으로 많은 가스를 소비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 집처럼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환절기에 감기를 예방하고 기저귀를 빨아야 하며 엉덩이를 씻겨주어야 하므로 최소한의 온도로 유지하며 켜두는 것이 낫다고 한다. 집을 비울 때는 18도, 낮에 아이들이 놀 때는 20도 정도로 맞춰두고, 기온이 내려가는 한밤에는 1∼2도를 올린다.

초등학생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 온 가족이 조금씩만 아껴도 가계부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회사들은 다양한 요금제로 고객을 배려하는 듯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새로 가입하거나 기계를 바꾸면서 핸드폰 요금제를 선택해 본 사람은 안다. 판매원이 보여주는 다양한 요금제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타입을 고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점이 마음에 들면, 다른 점이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알쏭달쏭하다. 핸드폰 요금제를 바꾸기 전에 방송통신위원회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자. 방송통신위원회에 접속하면 내게 맞는 핸드폰 최적 요금제를 확인할 수 있다. (http://010.ktoa.or.kr/)

생활 곳곳에 DIY 제품을 늘리자

할머니는 반짝이실이 들어간 핫핑크 니트를 커플로 만들어주셨다. 겨우내 뉴타운으로 집들이 훼손된 왕십리 골목골목을 손녀와 커플룩으로 누비셨다.
 할머니는 반짝이실이 들어간 핫핑크 니트를 커플로 만들어주셨다. 겨우내 뉴타운으로 집들이 훼손된 왕십리 골목골목을 손녀와 커플룩으로 누비셨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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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저녁마다 뜨개질을 하셨다. 어머니가 짜준 옷을 입고 다니면 괜히 더 따뜻한 것 같았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어머니 솜씨가 좋다고 칭찬하셨는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손재주에 관한 한 엉성하고 야무지지 못한 우리 아버지를 닮았다.

그런 탓에 나는 내 딸에게 원피스나 바지를 떠 주지 못한다. 대신에 할머니가 떠 주는 옷을 입을 수 있다. 올겨울 쿠하는 노란 원피스, 하얀 스웨터, 분홍 후드 스웨터, 초록 바지 등 할머니가 짜 주신 옷들을 입고 지냈다.

중학교 가사 수업 시간에 작은 가방과 버선을 만들어 본 이후 제대로 바늘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가사 실습은 내신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어머니께 2분의 1사이즈의 저고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올해 나는 특별한 바느질 수업을 받고 있다. 8개월짜리 아기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다닐 수 없어서 퀼트 같은 취미는 아이가 정규 교육을 받는 7∼8년 후에나 가능하려니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친정 동네에서 이웃하며 지내는 선생님의 배려로 선생님 댁에 아기를 데리고 가서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재료도 사오지 말고 선생님이 쓰던 천을 다 쓸 때까지 그냥 오라 하고, 도구도 바늘 하나까지 모두 선생님이 빌려주시는 이 특별한 수업은 순전히 우리가 왕십리 뉴타운 때문에 관리처분 총회에서 만난 특이한 인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내 손으로 꿰매 만든 가방과 필통, 찻잔 받침 등 작은 소품들을 사용하니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볼 때보다 즐겁다. 손으로 만드는 즐거움과 바늘 한 땀 한 땀에 집중할 때 다른 걱정을 잊게 되니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퀼트는 일주일에 하나쯤 내가 만든 삐뚤삐뚤한 바느질의 소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어 참 좋다.

선물하는 기쁨이 돈으로 사주는 물건과 비교할 수 없다. 비록 주는 사람 마음이 더 즐거운 선물일지 모르겠지만, 받는 사람들도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을 받는다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무척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바느질이 집 짓기로 확장되기를...

유리창이 깨지고 집들이 훼손된 골목은 아이와 걷기 위험하지만, 아직 이주하지 않은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늘 즐겁다. 저 골목을 돌아가면 할머니가 뜨개질하며 손녀를 기다리고 계신다.
 유리창이 깨지고 집들이 훼손된 골목은 아이와 걷기 위험하지만, 아직 이주하지 않은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늘 즐겁다. 저 골목을 돌아가면 할머니가 뜨개질하며 손녀를 기다리고 계신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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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다. 생활에 쓰이는 물건을 내 손으로 만드는 작업이야말로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기를 바란다. 바늘이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다음에는 목공을 배울 예정이다.

쿠하에게는 조립만 하면 되는 나무 책걸상을 선물했는데 둘째 아이 까이유의 책상은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고 싶다. 제 아빠와 엄마가 저녁 내내 낑낑거리며 조립한 책상을 두고, 손님이 올 때마다 "우리 아빠가 만들어준 책상이에요, 예쁘죠?"하고 자랑하는 아이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정말 우리 부부가 나무를 사다가 만든 줄 알고 어쩜 이렇게 매끈하게 잘 만들었냐고 감탄하는 손님들께 민망한 표정으로 "인터넷에서 사다가 조립만 한 거예요"하고 궁색한 대답을 해 왔다. 아이가 18개월쯤 되어 의자에 앉고 싶어할 때 엄마가 손수 만든 나무 의자를 선물하고 싶다.

목공 다음은? 차닦기, 장 만들기, 흙집 짓기 등 아이를 낳은 뒤로 배우고 싶은 것이 끝도 없이 늘고 있다. 바늘로 시작된 손으로 만드는 즐거움이 언젠가 내가 등 기댈 집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우리말 '짓기'를 더 많은 영역에 걸쳐 쓸 수 있는 사람은 즐겁고 건강한 생활을 하기 마련이다. 매일 나와 내 가족이 먹을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우리가 살 집을 짓고, 내 아이가 읽을 글을 짓고, 우리가 먹을 채소를 직접 짓고 싶다.

내 손으로 만든 물건은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 쓰임새가 다 할 때까지 아껴 아껴 쓰게 된다. 남동생이 입고 다니는 구멍이 난 청바지에 퀼트 천을 덧대거나 관광지에서 사온 손수건 지도를 잘라 덧대는 수선쯤은 간단히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동안 바느질을 못해서 안 한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못했다. 청바지에 구멍이 나면 원단이 삭은 것 같다며 내다 버리곤 했는데 이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구제 바지로 만들어 입게 됐다. 작은 바늘 하나에 관심을 두느냐 두지 않느냐에 따라 옷장 풍경이 달라진다.

두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만 사오자

DIY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두 달째 마트에서 장 보는 것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동네 슈퍼에 없는 제품이 마트에는 있는 경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갈 때가 있지만 채소나 고기, 생선은 마트에서 사지 않는다. 재래시장에 가서 들 수 있는 만큼만 산다. 그러니 자연히 적게 살 수밖에 없다.

8개월짜리 아기를 데리고 재래시장에 가서 한 바구니에 천원, 이천원 하는 채소들을 사면 1만원 들고 가서 열 가지를 사올 수 있다. 서울의 큰 시장에 가서 콩나물 천원어치를 사면 4인 가족이 먹을 경우 3∼4번 끓여 먹을 정도로 많이 준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있다면 두 집이 나눠 먹어야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분량의 숙주나물도 한 바구니에 천원이다.

시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냉장고가 가벼워졌다. 자주 사다 먹으니 물러져서 버리는 채소가 없고, 유통기한이 넘어가도록 냉장고 구석에 숨어 사는 포장된 두부가 없어져서 좋다. 상품이 아닌데도 아이를 물건들과 같이 카트에 넣고 다니면서 쇼핑하는 일을 되도록 하지 않을 작정이다.

일 년 내내 집 안 똑같은 자리에 과일 인지 학습자료를 붙여놓고 사과나 바나나를 가르치는 것보다, 쿠하 손을 잡고 시장에서 사과 한 봉지, 바나나 한 송이 사면서 알려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까이유가 걷기 시작하면 우리는 또 시장에서 온갖 제철 과일들을 사먹으며 과일 인지 수업을 할 것이다.

마트에서는 몽땅 고른 다음 한꺼번에 계산대에서 대화하지만, 시장에서는 하나하나 살 때마다 "얼마에요?", "많이 파세요"를 반복하게 되니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와 다니며 물건 살 때 쓰는 말들을 알려주기에 좋다.  

불황이 가정 경제에 미치는 슬프고 괴로운 측면도 있지만, 지구 전체를 위해서는 오히려 잠시 쉬어가는 휴식 시간일 수도 있겠다. 공장에서 조금 더 천천히 만들게 되고, 자동차를 조금 덜 사용하게 되고, 물건을 조금 덜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아, 불황이 준 선물이 또 있다. 술자리가 줄어들어 일찍 들어오는 남편에게 아이 그림책을 읽어주라고 할 수도 있고, 외식이 줄어들어 몸에 나쁜 음식을 덜 먹게 됐다. 엄마인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했지만, 그까이꺼, 설거지 한 번 더 하지 뭐!

내가 만든 깨끗하고 담백한 음식으로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내가 만든 물건을 쓰는 이웃이 더 즐거워지면 그것으로 나는 대만족이다. 이번 기회에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게으름과 작별하고 손과 발을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덧붙이는 글 | '불황이 □□□에 미치는 영향' 응모글입니다.



태그:#불황, #경제 , #쿠하, #D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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