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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시위 문화에 경종을 울린 동의대 사건이 터진 지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건 당시 학생들을 기소했던 검사와 이들을 변호했던 변호사들 중 일부는 나중에 정계에 입문해 이름을 알렸다. 부산의 대학생들이 무더기로 기소된 상황에서 지역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곳은 김영삼 총재(YS, 14대 대통령)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이었다.

YS는 1심이 끝난 1989년 10월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부산 동의대 사태와 관련하여 어린 학생들에게 사형 등 중형을 구형한 것은 그 이유가 어디 있든 간에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서라도 여러 가지 의혹을 밝히고 진실을 이 세상에 밝혀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관용 "학생들을 공안정국의 희생양으로 만들어서야..."

이튿날에는 3선의 박관용 의원(16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 대정부 질문에 나섰다.

"동의대사태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무리한 진압작전을 강행하여 7명의 무고한 전경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 그 정확한 진상의 규명 없이 무려 71명의 학생들에게 실형을 구형하고 3명의 학생에게 사형구형까지 내렸습니다. 현 정부가 이 사건을 공안정국의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습니다.

우리 당 조사에 의하면, 그 화재가 학생들의 화염병에 의해서 발생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여 철저히 재조사하여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생들을 공안정국의 희생양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고 총리는 국정기조와는 별도로 이 문제에 대해서 경찰의 무모한 진압작전에 관해 조사할 용의가 없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박 의원은 10월 26~28일 당 진상조사단장으로서 문정수·강신옥·김광일 의원을 이끌고 현장조사를 하기도 했다. 조사단 간사를 맡았던 김광일 의원도 같은 해 9월 26일 국정감사에서 ▲ 경찰의 매트리스 늑장 설치 ▲ 화인 감정서 미제출 등을 열거하며 "이 사건은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똑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일종의 대사기극"이라고 정부를 공격했다.

1992년 7월 여당 대통령후보였던 YS는 5·3 동지회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5·3에 대해서는 학생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관련자들에 대한 감형 또는 석방을 고려해보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대통령이 된 후 수감자들을 전원 석방했다.

그러나 YS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정치적 부담을 우려한 그는 권위주의 시대의 의혹사건 재조사에 전혀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동의대 사건 조사단에서 맹활약한 박관용·김광일 의원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 차례차례 청와대 비서실장에 기용됐고, 문정수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누르고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훗날 '삼성 비자금' 특검이 된 동의대사건 합수본부장

동의대사건으로 기소된 학생들의 편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지부를 주축으로 한 지역의 인권변호사 20여 명이 총동원됐다.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에 참여하지 않았다.)

변호사들의 정·관계 진출은 특히 노무현 정부 시대에 활발했는데, 문재인 변호사와 송철호 변호사가 각각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조성래(열린우리당)·박승환(한나라당) 변호사는 각각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0년 항소심 검사였던 송훈석 의원은 6년 뒤 여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오갔고, 지금은 3선의 무소속 국회의원이 됐다. 송 의원은 기자와 한 통화에서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저지른 일부 잘못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일련의 과정으로 볼 때 학생들의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선뜻 동의할 수 없다"며 "경찰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학생들의 행위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5·3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검경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던 조준웅 부산지검 공안부장은 훗날 삼성 비자금 사건의 특별검사를 지냈다.

동의대 사건 관련자 중 유일하게 살인죄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윤모씨는 화물연대 간부를 맡고 있고, 도서관 7층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난 김모씨는 1996년 부산에서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태그:#동의대, #김영삼, #박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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