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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언론 관련 4개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졸속으로 합의된 사항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찌됐든 여야가 한국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법들을 입법부 단독으로 제정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음을 인정한 것이다. 자세한 방법까지 언급하진 않았지만 반드시 여론 수렴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제대로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다.

 

여야가 구성하기로 한 사회적 논의기구는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성숙한 민주사회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향후 발생할 갈등을 예방하고 다양한 관계당사자들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많이 이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큰 틀에서 보면 공공정책을 둘러싼 갈등해결 방법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는 사회적논의기구를 출범시키고 진행시키기 위해 지금부터 처리해야할 일들은 산더미고 사안마다 험난한 세부 협상이 예상된다. 

 

100일이라는 시한은 가장 큰 도전이다. 여야가 100일을 시한으로 정한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이다. 논의해야 할 사안과 관계당사자들의 입장과 이해 등을 세밀히 분석한 후에 시한을 정해야 함에도 다음 회기에서 처리하겠다는 전제 하에 국회 일정에 맞춰 시한을 정했으니 여론 수렴의 진정성이 심히 의심되는 부분이다. 여야가 시한을 재협상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 이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용을 충실히 해야 한다. 내용을 충실히 하고 융통성 있는 운영을 한다면 100일이라는 도전을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

 

내용을 충실히 하기 위해 제일 먼저 논의해야 할 것은 논의기구가 도출한 결과물에 대한 인정 여부다. 여론 수렴 형태의 논의기구가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거기에서 나온 결과물이 사회적으로 존중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논의기구는 당연히 법제정의 권한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최종 결과물로 나온 합의된 제안서를 국회가 존중한다는 전제가 없이 법안 표결을 위한 요식 절차로만 진행된다면 또 다른 사회 갈등을 유발시킬 것이므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현재로선 많은 국민들이 이 점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논의기구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먼저 여야가 논의기구를 진정한 여론 수렴을 위해 운영하고 결과물을 존중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해 해야 한다. 

 

내용과 관련해 중요한 다른 점은 논의기구에 대한 자율권의 부여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을 다뤄야 하므로 정치적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참여자들이 여야가 제안하는 논점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논의 안건과 방향을 정하고 열린 논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결과물도 관련 법안 통과 여부를 위한 것이 아닌 제3의 제안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자율권이 없다면 여론 수렴의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참여자 선정도 중요한 일이다. 여론 수렴 기구라면 반드시 모든 관계당사자와 전문가 집단이 참여해야 한다. 논의기구의 진정성을 의심해 참여하지 않는 관계당사자 집단이 있다면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만일 편의대로 일부 관계당사자만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든다면 불참한 관계당사자가 결과물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므로 시작을 미루거나 새로운 방식을 짜야 한다.

 

참여자 수는 모든 관계당사자를 포함시킬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론상 이런 형식의 논의기구는 25명 내외로 구성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론 100명 이상으로 구성되는 정책 논의도 많다. 사안이 복잡하면 안건별로 소그룹을 만들어 논의한 후 취합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참여자 수 제한은 의미가 없고 모든 관계당사자 참여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모든 절차는 참여하지 못한 국민들의 알 권리와 의견 수렴을 위해 공개돼야 된다. 세부 논의 과정은 비공개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회의 이후 결과물은 항상 공개되어야 한다. 특별히 관계당사자 집단들이 논의 과정을 따라 잡고 내부 합의를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이 복잡한 과정과 사안들을 정리하고 진행하기 위해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진행팀 또는 운영팀을 두는 것도 대립적인 아닌 협력적 논의를 위해 반드시 고려해볼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정책 논의기구를 구성하고 운영하기 전 고려해야 할 기본사항들이다. 그러한 기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면 논의기구 자체가 무의미하다. 또한 논의기구를 진행시킨다 할지라도 그것이 여론 수렴 과정으로서 정당성을 지닐 수 없으므로 끊임없이 여론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태그:#사회적 논의기구, #언론관계법, #갈등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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