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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천추태후>가 한창이다. 천추태후 황보수는 고려 제5대 왕인 경종과 결혼하여 제7대 왕이 되는 목종을 낳았다. 황보씨 가문은 태조 왕건때부터 따져야 하는데, 태조 왕건과 넷째 부인인 신정왕후 황보씨 사이에서 태어난 대종 욱이 바로 천추태후 황보씨의 아버지이다.
 
대종 욱이 낳은 아들 왕치는 나중에 성종(고려 제6대 왕)이 되고 천추태후 황보수와 갈등 관계에 서게 된다. 참고로, 천추태후 황보수의 아버지인 대종 욱과 경종의 아버지인 광종(고려 제4대 왕)은 이복 형제 관계이다.

 

대략 이와 같은 가계도 아래 태어난 천추태후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드라마 <천추태후>는 시작부터 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금도 그 관심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함께 살펴볼 이야기는 천추태후 황보수가 아니라 그 전 세대에 관해서이다. 고려 초기로 우리를 안내하는 책은 <광종의 제국-5백년의 리더십>(푸른 역사 펴냄, 2003)이다.

 

이 책에는 재밌는 부분이 있다. 책은 제목대로 광종을 다루는데 초반에 다루는 제2대 왕 혜종에 대한 부분이 무척 흥미롭다. 잘 알려진 바대로, 태조 왕건의 맏이이자 첫째 아들이었던 혜종은 재위 기간 2년이라는 짧은 흔적만 남기고 병으로 죽었다.

 

혜종은 보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 자리를 탐하는 이복형제들(3대 정종, 4대 광종) 등쌀에 밀려 무척 힘들어했다. 그 때문인지 혜종은 역사 기록 이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과는 달리 무척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물로 알려졌는데, 정말 그럴까. 책은 이 점을 무척 강조하여 살핀다.

 

고려를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웠다는 광종, 혜종이라고 못했을까

 

태조 왕건은 생애 내내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다. 첫째 아들 혜종은 왕건이 정식으로 고려의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 태어났고 이복형제들이자 태조 6년(923년) 이후에 이르러서야 태어나 나중에 자신의 자리를 빼앗게 되는 정종, 광종에 비해 10여 년이나 더 나이가 많았다.

 

급박한 세월을 아버지 왕건과 함께 보낸 혜종은 전쟁 경험에 있어서도 이복 형제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이런 혜종에 대해 이 책 지은이 김창현은 "부왕 왕건과 함께 후삼국 통일의 순간을 만끽하고 개경으로 개선하였다. 왕무는 후삼국 통일전쟁의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혜종은 그런 사람이었다.

 

김창현은 고려 초기 실록이 제8대 현종 때 거란 침략으로 불타 없어진 일을 거론하면서 이 때문에 고려 초기 왕들에 관한 '이전 기록'들을 알 수 없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변경되었을 게 분명한 부분들에 대한 언급이다. 이 점을 혜종과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김창현은 혜종의 병사(病死), 정종의 병사(病死) 모두에 적잖은 의문점을 제기했다. 특히 고려 태조였던 부왕과 함께 전쟁터를 누빈 장수였던 혜종의 갑작스런 병사와 미심쩍은 정종의 즉위 과정에 대해서 무척 날선 시각을 보였다.

 

광종을 다루는 책에서 혜종을 그리 많이 다룬 이유는, 광종이 그의 친형제이자 4년여 재위 기록을 남기고 혜종처럼 병사한 정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데다 어떤 면에서는 혜종의 갑작스런 병사를 재촉한 실질적인 원인 제공자로 보이는 점 때문이다. 그런 시각은 이 책을 보는 데 있어 참고할 점이다.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왕무·왕요·왕소 3형제의 시대'라 이름 붙여놓고 실제로는 혜종 이야기에 3분의 2를 할애했다. 2부는 전부 광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만큼 혜종에게 할애한 분량은 책 전체를 놓고 볼 때 꽤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이처럼 지은이 김창현은, 태조 왕건의 맏아들이자 제2대 왕이었고 전쟁터를 누빈 용맹한 장군 기질이 다분했던 혜종에 대한 역사 기록과 평가가 지나치게 부족하고 편협하다는 의견을 강하게 내비쳤다. 한편, 정종과 광종을 내륙 세력으로 보고 혜종은 해양세력으로 보아 또 다른 면에서 두 세력의 차이를 말하는 부분도 눈여겨 볼만하다. 광종을 그린 이 책은 여러 각도에서 이렇게 혜종에 관한 많은 얘기를 해주고 있다.

 

"혜종 왕무가 항상 물을 가까이했다는 것은 그가 바다와 강에 익숙한 뱃사람으로 자라났음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혜종은 수전에 능한 아버지 왕건과 통하였다. 영산강이 나주를 관류해 목포를 거쳐 바다로 빠지므로 목포는 물론이고 나주 일대 사람들은 수전에 능하였다. (중략)

 

왕무는 이처럼 수전에 능한 나주의 목포 출신이 아니었던가. 왕무는 바다 전투에 능하기로 소문난 목포 뱃사람이었던 것이다. 바다를 꿈꾸며 자라고 바다를 통해 세계를 얻고자 했던 왕무는 그 옛날 완도에 청해진을 건설하고 나주·영암 일대를 근거지로 바다 제국을 건설했던 장보고의 영광을 되살리겠다고 꿈꾸지 않았을까?"(<광종의 제국-5백년의 리더십>, 132)

 

처음부터 끝까지 혜종 이야기로 <광종의 제국>을 바라보아서 조금은 무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리만치 나약하고 허수아비 같은 인물로 후세에 알려진 혜종을 새삼 다시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도리어 더 주목받을 만하다. 물론 지은이는,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를 오래 유지될 왕조로 든든히 세웠다는 점에서 광종을 역사에 남을 의미 있는 왕으로 인정하면서도 광종에게 날선 시선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광종의 제국-5백년의 리더십>은 당연히 광종을 다룬 책이다. 그러나 사실상 세 사람을 동시에 다각도로 다룬 책이다. 광종은 황권 강화를 위해 길고도 극심한 숙청의 세월을 보냈다. 혜종은 무력하지 않았지만 무력한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 그리고 어중간한 자취를 남기고 간 정종이 그 사이에 끼어있다. 이들 세 사람의 복잡하고도 긴 알력과 다툼, 그리고 뒷이야기. 이 책을 보는데 필요한 시각이며 출발점이다.

덧붙이는 글 | <광종의 제국-5백년의 리더십> 김창현 지음. 푸른역사, 2003.

* 이 서평은 제 다음블로그(blog.daum.net/k-baptist) 및 블로거뉴스에도 게재(또는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자신이 작성한 글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광종의 제국 - 살육과 모반을 딛고 선 역사의 승리자

김창현 지음, 푸른역사(2008)


태그:#광종의 제국, #광종, #혜종, #정종,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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