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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위기를 '경제위기'라며 또 다시 '고통분담'을 강요하고 있다

 

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임대료에 턱없이 못 미치는 벌이에 쫓기다 폐업으로 내몰리고, 청년실업자들은 고용창출은 고사하고 20만 명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란 정부 발표에 절망하고 있다.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임금 동결을 넘어 삭감을 강요받고 있고, 그 알량한 사내복지마저 완전히 없어질 징조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약기간 만료 이전부터 "비정규직 우선 정리해고"라는 회사 방침에 벌벌 떨고 있다.

 

학원업계가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하여 학원비를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허탈하다. 언제부터 가진 자들이 '고통분담'에 동참했는가.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수십 수백조 원의 공적자금으로 기업과 금융권을 구제해 준 대가는 재벌이 공공부문을 사유화하는 과정이었다. 한국통신, 한국전력, 수많은 금융권, 부도·부실기업들이 공적자금을 거쳐 거대자본과 투기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다.

 

10여 년 전, IMF 구제금융 이후 전사회적 구조조정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었고 그 결말은 비참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자살공화국, 이태백 등등. 사회 전반적 분위기는 더욱 더 악화되었고 모든 국민들이 하루하루를 불안해 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그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독주 체제의 등장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삽질경제가 국민의 삶을 구원해줄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똑같은 래퍼토리가 반복된다. 경제위기, 고통분담, 경제위기, 고통분담, 경제위기, 고통분담… 고장난 레코드가 반복하여 돌아간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물어봐도 뻔한 경기불황 대책이 아닌가. "국민들에게 돈이 돌아야 내수가 살고 기업도 살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권은 뻔한 경기불황 대책이 아닌 얼마 안 남은 국민 재산을 통째로 뺏는 것으로 이 국면을 넘어가고자 한다. 위기 극복 대책이 수탈인 셈이다. 그나마 버티는 공기업은 사영화하고 복지는 축소·시장화하고 노동자 임금은 삭감한다.

 

허나 이명박 정권의 결말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미 한국경제가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만에 하나 경기가 살아나도 고용이 급격히 창출되기는 어렵다. 4대강 정비 사업이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대운하 사업에서 몇 년간 한시적으로 일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제외한다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난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한국)사회당이 내걸었던 핵심공약 중 하나인 '기본소득(Basic Income)'은 현 정국에서 유의미한 사회대안이다. 기본소득은 말그대로 "심사와 노동요구 없이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의 사회철학적 배경은 자본주의 임금노동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포함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모든 사회성원은 어떤 형태로든 자본의 형성·축적에 기여하는데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 너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가정에서 주부들이 수행하는 가사노동(혹은 노동력 재생산노동)과 보육노동이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은 여성주의적 대안이기도 하다.

 

현재의 경기불황이 공황으로 치닫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어찌됐든 현 상황이 초래된 근본원인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금융적인 수탈을 통해 과잉축적된 자본이 수탈경제의 동맥경화와 함께 자기운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외부 수탈을 통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즉, 더 이상 경기가 활성화돼도 고용을 창출하고 활발하게 내수를 활성화시킬지는 의문이다.

 

사회당 '기본소득'의 방향

 

사회당이 지난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제시했던 '국민기본소득제도'는 절대빈곤층의 절반 이상과 차상위계층에 대해 아무런 보장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폐지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실질 가구 단위를 수급 대상으로 하고 의식(衣食) 및 생계, 양육, 문화체육비용을 포함한 액수를 기본소득액으로 했다. 복지공약은 기본소득과 아울러 의료, 주거, 교육, 노동, 보육/노후 등 5대 기본보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재산 은닉 등을 통한 부정한 수급자에 대한 처벌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회복지라는 표현을 쓰기 부끄러울 정도로 미약한 한국의 복지 및 사회부조 현실과 현재 자본의 위기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더욱 더 고통받게 될 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좀 더 전환적이고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이에 사회당은 기본소득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존의 정책을 좀 더 다듬어 한국에서의 '기본소득' 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기본형태는 모든 국민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그 재원은 세율 인상, 연금 및 현금지급형 사회보장비, 증권양도소득세 및 토지세 도입, 이자소득세 및 배당소득세 원천징수, 고소득 자영업자 세원포착 확대로 인한 종합소득세 및 부가세 추가세입, 국방비 절감 등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추진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 경제위기에 대한 진보의 대안을 말하다」프로젝트(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이수봉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가 많은 도움이 됐다.

 

사회당의 '기본소득' 방향은 △ 모든 투기소득에 대한 과세 및 대폭 증세 △ 무상 교육·의료·보육 △ 시혜적·선별적 복지를 넘어선 보편적 복지 △ 최저임금 인상 및 비정규직 규제 등을 전제로 한다.

 

모든 투기소득에 세금을

 

일단 조세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필요하다. 세금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것은 실질적 수혜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적자금으로 기업을 살려놨더니 고작 하는 것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대 뿐이라면 어느 국민이 증세에 동의하겠는가. 보수세력에 의해 종합부동산세가 무력화되더니 결국 헌법재판소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은 과정을 보더라도 그렇다.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필요한 세원은 대부분 그동안 과세되지 않았던 투기소득에 대한 추적·계량화·세금부과다. 물론 만만치 않는 조세저항이 예상된다. 증권 및 파생금융상품을 포함하는 증권양도소득세와 토지세만 도입되어도 다른 직접세(소득세, 갑근세 등) 인상은 용이할 것이다.

 

이런 과세는 그동안 부동산 거품 혹은 투기 거품이라고 불렸던 것들을 국민들이 다시 회수하는 것이다. 그 거품은 서민들의 막대한 금융부채를 담보로 한 금융기관들의 수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던가!

 

무상 의료·교육·보육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의 '의료시장 선진화'를 확대·계승하여 의료시장 민영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을 약화시키고 민간보험회사의 영향력 확대, 의료영리법인 합법화 등을 통해 의료시장 자체를 현재의 미국식으로 개악하려고 한다. 교육부문에 있어서도 그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지고 있다. 입시경쟁교육이 강화되는 각종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여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교육 공공성이 훼손되고 있다. 교육양극화가 불보듯 뻔하다. 저출산 시대임에도 보육은 이명박 정권에게 아예 관심 밖의 대상이다.

 

무상 의료·교육·보육은 즉각 실현되어야 한다. 중대 질병은 본인 부담없이 치료할 수 있고, 고등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고, 보육시설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현실적 필요성이 절실할 때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및 비정규직 차별 철폐

 

독일의 경우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하다. 100분 토론과 같은 유명한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정도다. 이 논의를 주도하는 사람은 대자본가인 베르너(Werner)다. 베르너는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면서 최저임금제 폐지를 포함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전제로 한다. 이에 반해 최초의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했던 진보세력들(독일 좌파당 내 '연방노동공동체 기본소득' 그룹, ATTAC 독일지부 등)은 최저임금 강화 및 비정규직 축소를 주장한다.

 

독일에서의 기본소득 재원은 기존의 연금, 실업급여 등의 현금지급형 사회복지와 그 관리비용이다. 현재 그 재원은 연간 1,000억 유로(약 180조 원)에 달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현금지급형 사회복지와 그 관리비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기본소득 안은 어쩔 수 없이 재원 자체가 그동안 부과되지 않았던 소득에 대해 세금을 신설(증권양도소득세, 토지세 등)하거나 세율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기본소득 안에 대하여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치세력들이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한국에서의 기본소득은 도입 이유와 재원조달 방식 자체가 신자유주의 수탈 세력에 대한 공격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현행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명박 정권은 현재의 쥐꼬리만한 최저임금을 연령별·국적별로 차등 적용하는 법 개악을 준비하고 있다. 헌법마저 거스르겠다는 발상이다.

 

일단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대표적인 악법이라고 할 만한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완전 폐지해야 한다. 1998년 당시, 김대중 정권이 노사정 대타협이란 이름으로 제정한 파견법은 비정규직 확산의 가장 큰 주범이었다. 기본소득 도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 및 비정규직 차별 철폐·(점진적) 폐지를 통해 노동사회를 안정화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저임금 대폭인상은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야기될 수 있는 인플레이션이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병행해야 할 과제이다.

 

모든 국민은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한국에서는 이제야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되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며, 완전고용사회를 전제로 한 노동중심적 사고방식에 대한 극복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는 태생 자체가 불완전고용을 용인하는 것이다.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의 일상화, 비정규직의 확산, 실업층 확대와 영세자영업의 몰락이라는 사회적 흐름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포디즘과 케인즈주의에 기반한 완전고용사회를 다시 지향할 순 없다. 수탈경제의 근본을 뒤집어야 한다. 국민들을 수탈해 온 금융자본의 이윤을 회수해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으로 분배해야 한다. 기본소득제도를 전면적으로 실시한다면 기본소득에 기반을 둔 내수가 창출될 것이고 L자로 치닫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는 중소기업, 사회적 기업의 경제활동 영역이 되어 한국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기본소득, 그것은 탈노동 시대의 새로운 복지대안이자 세계경제위기 시대에 한국경제를 재편할 경제대안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권문석 기자는 사회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기본소득, #사회당, #금융자본, #수탈경제,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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