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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운무 속에서 밝은 햇살이 비추면 미래의 여신이 힘찬 날개 짓을 하고 횃불은 고유한 아침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의 면모와 함께 맑고 순수한 우리의 민족 정서를 상징하며 이어 무궁화 꽃이 하나하나 피어 아름다운 물결을 이룬다. 무궁화 꽃과 나비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춤을 추며 세계인들의 이목이 한국으로 집중되고, 전 세계인이 하나 된다.

운정 김근희선생의 작품 "무궁화"의 개략적 구성이다. 운정 선생은 6ㆍ25의 전흔으로 사회적 혼란과 빈곤이 내리 깔렸던 유년기에 동국대학 부근 퀀셋 건물에서 공연한 김백봉선생의 춤을 우연찮게 접한 것이 예인으로의 평생이 시작 되었다고 회상한다.

이후 선생은 틈만 나면 그곳으로 가 강습과정을 지켜보곤, 집에 와서 흉내 내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당시 크게 번성 하던 여성국극을 보고와 보고들은 노래와 춤을 재연하여 주변을 감탄케 하였다 한다. 예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편견이 심한 시절이어서 그때마다 부모님으로부터는 심한 꾸지람을 들어야했다.

그러나 선생의 예인을 향한 노력과 집념은 완강한 부모님과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마침내 1956년도에 국창 김여란선생이 운영하시던 수도국악예술학원에 정식으로 입학하여 본격적인 수습을 하게 된다.

이제 고인이 되신 김여란 선생님에 대해 잠깐 살펴보면 선생은 1907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벌써 거문고, 양금 등을 배웠고 고 정정렬 명창으로부터 1년 동안 경북 영천에 있는 은혜사에서 100일 동안, 계룡산 갑사에서 200일 동안 스승을 모시고 소리를 배웠다. 그 후로도 금강산에서 2, 3년 동안 본격적으로 소리를 익히고 다듬었다. 선생은 여성국악동호회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고, 수도국악예술학원을 설립, 후진 양성에 극진한 정성과 노력을 했다. 그리고 1964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보유자가 되었다.

지금 운정의 전통춤은 그 당시 한영숙 선생의 1기제자인 이소애선생에게 기초를 배우고 교방 첫 출신인 김여란과 김소희, 박귀희 선생 등 가무악을 다 이수한 분들이 함께 모여서 장구를 치고 소리를 부르며 각자 흥에 겨워 춤추는 모습이 지금의 "운정 교방입춤"의 원조가 된다.

입학 당시 10살짜리였던 운정 김근희 선생은 이러한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본격적으로 가, 무, 악의 기본을 배우고 7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신무용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백봉선생께 신무용을 배웠다.

그 이후 80년대에는 현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이신 강선영선생께 사사를 받아 한성준 강선영 김근희로 이어지는 "경기검무"를, 그리고 현재까지 중요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존회장을 역임을 하고 현재 한국무용협회 이사로 활약을 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 태평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 김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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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중요한 안무 작품은 경기도립무용단 재직 시절 "제암리의 아침", "수트라", "바람멎는날 풍경소리", "일어서는 빛" 등 창작극과 "효녀 심청", "흥부와 놀부" "콩쥐팟쥐"등 전통무용극 등과 "무궁화", "촛불", "빨래터", "엿가락춤", "피리" 부는 여인 등 그 수가 참으로 적지 않다.

작품 중의 하나인 "일어서는 빛"은 경제난국을 극복하여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작품으로 광복에서부터 6ㆍ25를 거쳐 한강의 기적을 일군 저력과 최근 경제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지혜와 삶의 의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또한 운정선생은 인간의 생성에 관한 무용으로도 유명하다. 영맥(靈脈), 胎脈(태맥),緣脈(연맥)이라는 주제로 80년대에 백두산 천지에서, 설악산 권금성 및 비선대에서 인간의 생성과정을 몸짓으로 표현하여 많은 갈채를 받은바 있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무용저작권을 등록하여 무용발전의 한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산고에 비유되는 창작의 결실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보호함으로써 창작인들의 의욕과 보람을 고양함에 저작권이 크게 기여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한국전통무용뿐만 아니라 타악에도 뛰어난 재주가 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명인 이정범류 설장고와 춤이다. 이춤은 舞(무)와 樂(악)의 초석으로 1950년~1970년을 통해 많은 무용인들과 국악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수제자인 운정선생은 이정범 선생의 전통적 예술혼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노력 또한 크게 함으로써 그 대를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운정 김근희선생은 유구한 세월을 우리민족의 희로애락을 이루고 순화해 그 정서를 승화해온 보편적인 우리고유의 춤사위를 추출하여 그 명칭을 정리하고 명칭이 없는 사위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고유명칭을 부여하는 노력 또한 꾸준히 해왔다.

우리의 전통적인 몸짓의 원본인 곡선적이고 곰삭은 춤사위와 버선코의 오묘한 멋을 잘 살린 발사위 등을 재해석한 것 그리고 완자걸음, 잉어걸음, 황새체, 겯딛음, 까치걸음, 맴체걸음, 발밭이딛음, 발꿈치치기, 등과 몸짓사위에는 겨드랑추임세, 가새지르기사위, 고샅사위, 두루업굽힘체사위, 겹도르래사위, 돌담체, 여닫이체, 썰매치기체 등 우리의 아름다운 말로 지은 명칭의 보기들이다.

2009년의 첫 무대인 이번무대는 운정선생의 예인 54년을 통해 꾸준히 그리고 애타게 찾아 실감하고 구축한 우리 춤사위의 고향을 진정 춤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이들과 잔잔히 대화하듯 나누고 공감하기 위한 의도라 한다.

이러한 의도는 눈빛으로 대화가 가능한 그리고 잔 솜털까지도, 그리고 열 두 폭의 치미속의 허벅지 감정까지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연희자와 감상자가 교감함으로써 비로소 이루어 지는 것이기에 합당한 장소을 물색 중 창덕궁 소극장에 이르러 주저 없이 끝냈다고 한다.

이번주 2.27(금)늦은7시 창덕궁소극장에서  "김근희의 천년의 몸짓" 은 운정 김근희의 긴 세월 동안 이어진 한국의 멋진 정서를 수묵화처럼 그윽하고 단아하게 선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태그:#김근희교수, #김태민기자, #국악신문사, #김근희, #운정김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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