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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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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19일 밤 한국에 왔다. 클린턴은 유명환 외교부 장관, 이명박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를 잇달아 만나 대북정책, 한미관계, 아프가니스탄 파병, 경제위기 해소 등 다양한 이슈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들 이슈 가운데 관심의 초점은 대북정책이다. 이명박 정부는 양국의 대북정책이 '닮은꼴'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본 철학, 접근법, 정책 목표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클린턴의 행보는 조심스럽다. 그는 아시아 순방길에 나서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동맹국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스티븐 보스워스를 대북 특사로 내정해놓고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동맹국의 의견 청취가 먼저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따라 클린턴은 방한 기간 동안 오바마의 구상을 설명하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듣는 데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북한의 위협적인 언행을 비판하면서 자제를 촉구할 것이다.

동시에 "북한이 진정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양자관계를 정상화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며, 다른 나라들과 함께 북한 사람들의 에너지와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점을 거듭 부각시킬 것이다.

'기다리기 전략'과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아전인수식 해석 가능성이다. 클린턴의 '경청'을 MB 정부의 대북정책 동의 및 한미공조 강화로 해석하면서 한미간의 대북정책 갈등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통미봉남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기존의 태도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청은 결코 동의를 뜻하지 않는다. 힐러리의 동아시아 순방의 핵심적인 목적은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특사 및 구체적인 대북정책를 발표하기에 앞서 일본, 한국, 중국의 견해를 차례로 듣고 "최선의 방법"을 찾는 데 있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가 모색하는 최선의 방법은 MB 정부의 대북정책과 상당한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가장 극명한 대립점은 MB 정부의 '기다리기 전략'과 오바마 행정부의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 사이에 있다. MB 정부는 북한이 변해 남북대화에 임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거나 북한을 자극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강력한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의 행동을 변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사실상의 선(先) 북핵 폐기 접근을 의미하는 '비핵 개방 3000'은 클린턴이 여러 차례 밝힌 북한 핵 폐기와 북미수교, 평화협정, 대북지원을 행동 대 행동 차원에서 이행하겠다는 포괄적 병행 전략과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방한 '중'이 아니라 방한 '후'를 주목하라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공조의 중심축은 한미공조나 한미일 3각체제가 아니라 미-중대화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한국과 일본에는 달래기와 설득에 치중하면서 북한을 제외한 실질적인 정책협의 상대는 중국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면서 한국이 더 이상 미국의 대북정책 조언자가 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속내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당사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오바마 취임 직후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협력부장의 김 위원장 면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중국은 남북관계 악화를 틈타 북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들을 말이 많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오바마 행정부가 가장 중시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는 점이다. 클린턴이 중국에 가면 가장 핵심적인 의제는 양국간의 전략대화를 차관급이나 장관급에서 부통령-총리급으로 격상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으로서도 초강대국으로 대접받는다는 점에서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중 전략대화의 핵심 의제는 경제위기 및 지구온난화와 함께 북핵 문제가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클린턴이 한국에 있을 때가 아니라 한국을 떠난 이후에 미국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순방을 마친 이후, 클린턴은 보스워스를 대북 특사로 임명하는 자리에서 더 구체적인 대북정책을 밝히고 보스워스의 방북을 추진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대북 특사의 방북 이외에 6자회담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제를, 남한은 현실 인식을

물론 변수는 있다. 북한이 인공위성이든, 장거리 미사일이든, 로켓을 발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북한이 이러한 강수를 두면, 대북 특사의 평양행은 상당히 지연되고, 오바마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려고 들 것이다. 북한이 마땅히 자제해야 할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에게는 클린턴의 방한이 조용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이다. 엉뚱하게 클린턴의 경청을 MB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동의로 이해하거나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특사 파견을 반대한다면, 한미간의 엇박자는 불가피해진다. 반면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진정한 실용주의 자세로 돌아선다면, 크나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다시 6.15와 10.4 선언이 중요해진다. 두 선언은 북미관계로 볼 때,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는 이 둘을 거부하면서 6년을 허송세월, 아니 북한이 핵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이명박 정부가 부시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6.15와 10.4 선언을 "잃어버린 10년"의 유산으로 볼 것이 아니라, 21세기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번영으로 가는 디딤돌로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두 선언의 이행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햇볕정책으로 단순히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적 극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두 선언을 디딤돌로 삼아 한반도 비핵평화를 달성하면 후세의 역사가는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이명박 대통령을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연 주역으로 기술할 것이다.

클린턴 방한 5일 후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이다. 이 대통령이 잠시 눈을 감고 오바마와 함께 걸어갈 4년을 그려보면서, 어떤 대북 발언을 내놓는 것이 본인과 민족 전체를 위해 바람직한지 생각해보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일하고 있으면서,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 http://blog.ohmynews.com/wooksik/ 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태그:#힐러리 클린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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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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