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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의 현실을 잘 드러냈다고 평가받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군대 내의 현실을 잘 드러냈다고 평가받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 에이앤디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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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국군 장병들은 나라에서 '매달 1380원'을 받아 '세숫비누, 빨래비누, 치약, 칫솔, 구두약, 면도날' 등 생활필수품을 직접 사서 써야 한다. 어제(16일) 국방부와 육군은 이 같은 제도를 오는 7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육군은 "병사들의 기호가 모두 다르고, 그간 일괄 지급하다 보니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 있는데도 이를 지급받아 낭비되는 측면이 있어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고 제도 시행 배경을 설명했다.

병사들마다 서로 다른 개인적 '기호'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결국 이 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는 생필품 일괄지급에 따른 낭비 요소를 줄이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낭비를 줄이겠다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이 턱없이 적다는 데 있다.

벼룩의 간을 빼 먹지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이들 물품의 군대 매점(충성마트) 가격이 '세숫비누 570~2500원, 빨래비누 180~310원, 치약 900~2800원, 칫솔 880~1970원, 구두약 400~890원, 면도날 3800~6000원'이라고 한다. 가장 싼 물건만 골라도 6730원에 달하니 병사들이 이들 물품을 구입하려면 매달 5350원 적자가 난다.

육군은 "일단 실시한 뒤 미비점이 있으면 보완할 계획"이라면서도 "처음에는 한 번에 6가지 품목을 구매하겠지만 여러 달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적자폭이 수령금액의 3.8배에 달하는데 아무리 여러 달을 쓴다 한들 문제가 안 될 수 없다. 병사들은 가장 싼 것들로만 '풀 세트'를 구비하려 해도 지급받은 돈을 꼬박 다섯 달 동안 모아야 한다. 게다가 이 정부는 군대 매점도 민영화할 계획이라고 했으니 앞으로 가격이 오르면 올랐지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누군가 부족한 차액을 메워야 한다. 누가 내겠는가?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고 병사들 월급에서?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최근 몇 년간 소폭 인상됐지만 여전히 병사들 월급은 한창 먹을 나이에 간식비와 외출비 충당도 안 되는 금액이다.

그래서 군대 다녀 온 남자들이나 자식․형제 군에 보내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안다. 군인들이 아르바이트를 할 수는 없으니 병사들의 복지 수준은 부모형제의 지불능력에 비례한다는 것을….

이미 '군대 용돈'을 가족들이 대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생필품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결국 병사들 가족이 부담하게 돼 있다. 이 뻔한 사실을 왜 이 정부는 꼭 "일단 실시"를 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다.

보급품 예산 줄이는 법

왜 하필 비누 값, 치약 값인가? 과연 이 제도의 시행으로 이 나라 국방예산은 얼마나 '절약'될 것인가? 이런 일까지 벌여야 할 만큼 국방부 사정이 절박하다면, 비누나 치약보다 훨씬 확실하고 국민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물품들이 너무나도 많다.

일례로 우리 병사들이 입는 전투복이 있다. 국방부가 '미군 것보다 질이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전투복 말이다. 2만5천원이 넘는다. 의류업계에서는 "넉넉하게 잡아도 1만5천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같은 값이면 "훨씬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전투복은 병사들 체육복에 비하면 양반이다. 모두들 알 것이다. '그거 입고는 창피해서 탈영도 못한다'는 그 주황색 체육복. 겨울용이 3만원, 봄가을용이 2만원 전후다. 대량 구매를 감안하면 현재 납품가로 국내 유명 메이커 제품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다. 아니 업계 얘기가 아니더라도 당장 시장에 가보면 알 수 있는 문제다.

무좀과 티눈의 온상인 '코팅' 전투화는 또 어떤가? 4만원이 넘는다. 가볍고 습기 차지 않는 고급 등산화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잘 늘어지기로 소문난 군용 속옷과 사시사철 두껍기만한 혼방 양말 얘기는 낯 뜨거우니 길게 하지 않겠다.

'군기'와 '무기'보다 전투력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병사들의 '사기'다. 비누 값 아낄 궁리를 할 시간에, 이들 물품들의 품질은 높이고 가격은 낮추는 방법을 국방부가 연구했다면 아마도 큰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왜 할 일은 안하고 엉뚱한 발상만 하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병사들을 대하는 우리 군대의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면 천출들 잡아다가 군역을 시키던 왕조시대의 인식과 다를 바가 없다.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몇 년씩 데려다가 고생을 시키면서도 K1 소총만도 못한 취급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가 완전히 빠지지 않아서다.

또한 매년 국방예산은 늘리면서도 국방개혁은 뒷전이기 때문이다. 올해 국방예산은 국가예산의 10%에 달하는 28조 5천억이다. 이 중 인건비 비중은 무려 36.5%(10조4천억)에 달한다. 급식비와 피복비(먹고 입는 돈)까지 합하면 병력유지비만 42%다. 전형적인 후진국형이다. 구조개혁 요구를 피하려면 현상유지라도 해야 하니 병사들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예산총액'이 아니라 '배분구조'가 문제

ⓒ 연합뉴스 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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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에서 나는 병사들 처우를 현실화하고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시킬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했다. 봉급을 주한미군 수준으로 주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국민개병제이면서도 우리보다 경제규모는 작은 대만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비슷한 또래들이 사회에서 받는 봉급의 1/3~1/4 수준의 금액, 환산하면 대략 30만원선이다.

장교와 사병수를 대폭 줄이는 대신 실제 전력의 중추인 부사관 중심으로 병력을 운영하고, 현재의 인력중심 군대를 선진국형으로 개편하여 '예산 배분'을 합리화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예산 부족'이라는 답변과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비난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국방예산은 '총액'이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배분 구조'가 왜곡된 것이 문제다. 인건비 등 병력운영비가 과다하지만, 병사들 봉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예산대비 2% 수준으로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의 병력규모를 유지하면서 지금 병사들에게 주는 돈의 세 배를 줘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병사들 봉급은 크지 않은데 인건비가 많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성과 장교의 수가 많고 이들의 노후복지를 위해 들이는 비용이 큰 것이다. 일례로 군인연금 보전에 들어가는 예산이 1조6천5백억원이다. 이 금액이 인건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9%에 달한다. 장교들이 장병들 복지 대신 자기들 복지만 챙긴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가난한 병사들과 부모의 고통도 헤아리자

그러나 병사들 처우만 생각한다면 장교들 인건비는 그대로 두더라도 예산을 구할 곳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매년 예산타령을 하면서도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것이 바로 주한미군 관련 예산이다. 방위비 분담금 7600억원과 미군기지이전 특별회계 2130억원을 비롯한 주한미군 관련 비용이 2009년 한 해만 무려 1조 500억원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부시 미 행정부가 주도했던 MD(미사일방어체제)관련 예산이 '한국형 MD'라는 명목 하에 5천억원 가까이 편성됐다. 부시가 물러간 마당에,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한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으니 어지간한 사람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돈들 가운데 일부만 아껴도 최소한 부모들이 군에 간 자식들 용돈 걱정은 안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런데 병사들이 쓰면 얼마나 쓴다고 비누 값, 치약 값을 가지고 낭비 요소를 줄이네 마네 하다니…. 대체 이게 제 정신으로 할 소리인가?

하기는 생존권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경찰특공대로 때려잡고 비정규직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 개혁이라고 우기는 세상이다. 그러니 장병복지를 말하는 것이 어쩌면 한가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부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어디인 줄 아는가? 바로 '병영'이다. 집에서 용돈을 지원받을 형편이 못 되는 가난한 병사들과 그 부모들의 고통…  한 번쯤 생각해 보았는가? 어찌 이 정부는 하는 일마다 이 모양인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임종인 기자는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국방 개혁, #가고 싶은 군대, #임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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