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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귤을 수확하고 출하를 마친 농부는 잠시 쉴 틈도 없이 다시 이듬해 농사를 준비해야한다. 2월에 가장 중요한 작업은 밀식된 귤나무를 솎아내는 일인데, 이를 간벌이라 한다.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생육이 불량한 나무를 뽑아내고, 필요하면 그 자리에 다른 나무를 옮겨 심는다.
▲ 나무 솎아내기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생육이 불량한 나무를 뽑아내고, 필요하면 그 자리에 다른 나무를 옮겨 심는다.
ⓒ 장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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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나무는 2월에 꽃눈을 준비하는데, 이를 화아분화라고 한다. 귤나무를 뽑거나 옮겨 심는 일은 화아분화가 끝나기 전에  마쳐야한다. 간벌이 2월부터 3월에 집중되는 이유다.

밀식 과원에서 나무를 솎아내면 농부의 활동이 편해지고, 나무가 햇빛을 많이 받아 맛있는 열매를 생산할 수 있어 좋다. 게다가, 귤의 과잉생산이 예상되는 해에는 생산량 감축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공무원들과 농협 직원들이 총동원되어 간벌을 장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과원에 있는 나무의 수를 반으로 줄이는 것을 ‘1/2간벌’이라 하는데, 농가에서 읍사무소나 감귤협동조합에 1/2간벌을 하겠다고 신청하면, 관청이 나서서 노동력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농자재를 무상으로 지원해주고, 각종 정부지원사업에 우선순위를 배정해주기도 한다.

품종이 나쁘거나 생육이 불량한 나무는 먼저 잘라낸다.
▲ 나무를 잘라낸 자리 품종이 나쁘거나 생육이 불량한 나무는 먼저 잘라낸다.
ⓒ 장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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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과 전문가들은 공히 금년 귤 수확량이 작년에 비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풍년이란 곧 가격 폭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풍년이 예상되는 해에는 농민들이 나무의 숫자에 크게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금년에는 간벌을 신청한 농가가 당초 목표량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관청에 간벌 도움을 신청하려 마음을 먹었다가 포기했다. 간벌을 신청한 농가가 너무 많아 순번이 돌아오려면 오래 기다려야 할 입장이기도 했고, 간벌을 신청하면 반드시 전체 귤나무의 절반을 뽑아내야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서둘러 간벌을 끝내고 난 뒤 다른 작업을 이어가고, 꼭 뽑아내야할 나무만 제거하면서 과원을 정비할 요량으로 자비를 들여 간벌을 추진하기로 했다.

간벌을 하기 위해 품종이 나쁘거나 발육상태가 불량한 나무는 톱을 이용해서 밑동으로 잘라 내버린다. 그리고 품종과 발육상태는 좋으나 너무 여유 공간 없는 밀식된 상태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다른 장소에 옮겨 심을 요량으로 가지만 잘라낸다.

베어낸 나무나 잘려나간 가지는 모두 불을 태워 없앤다. 가지를 과수원 중간에 방치해두면 다른 작업에 여간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무를 베어내고 가지를 자른 후 불을 태우는 데만도 며칠이 소모된다. 

잘라낸 가지는 불태워 없앤다.
▲ 가지 불태우기 잘라낸 가지는 불태워 없앤다.
ⓒ 장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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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뽑는 일을 과거에는 주로 인력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한다. 포크레인 하루 사용료가 35만원이라는데, 가까운 이웃이라 30만원만 받겠다고 했다. 포크레인이 동원된 토요일에 온 가족이 출동했다.

포크레인이 나무 틈 사이를 다니면서 밑동이 잘려나간 나무의 뿌리를 먼저 뽑아내었다. 나무 뿌리가 뽑힌 자리가 주변과의 간격이 적당하면 그 자리를 흙으로 메우고, 여유 공간이 너무 크면 구덩이를 파서 다른 나무로 채운다.

나무를 옮겨 심은 후 비닐로 덮어주고 있다.
▲ 나무 심기 나무를 옮겨 심은 후 비닐로 덮어주고 있다.
ⓒ 장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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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에 나무를 채울 때에는 밀식인 상태에 있는 나무를 뽑아서 옮겨 심는다. 포크레인이 조심스레 나무를 뽑으면 톱과 가위로 뿌리를 다듬고 구덩이 바닥에 거름을 듬뿍 넣어준 다음 나무를 넣고 흙을 덮는다.

새로 심은 나무는 비닐로 덮어서 그 위를 돌로 덮어준다. 뿌리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빗물에 흙이 휩쓸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포크레인을 동원해도 여전히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부모님, 숙부, 아내, 아이들까지 총동원되어도 여전히 분주하다. 새벽에는 꽤 쌀쌀했었는데, 오후가 되자 몸은 땀에 범벅이 되었다. 아이들이 얼굴에 흙을 잔뜩 뭍인 채 웃으며 뛰놀고 있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는데, 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녁이 되어 버렸다. 남아 있는 일감으로 다시 포크레인을 부르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워 포크레인이 다음에 이 근처에 올 일이 있을 때, 남은 일을 부탁하기로 했다.

중장비 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일거리가 많이 부족하다고 하던데, 문득 중장비를 동원해서 과원을 정비하는 일에 정부가 예산을 보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장비 동원해서  강바닥을 긁어대는 것보다는 농민들과 중장비 업자들에게 동시에 도움을 줄수 있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물론, 환경에도 해가 없을 것이고.

일을 끝내고 집에 있는데 시장에 딸기가 본격적으로 출하되면서 도매시장에서 귤 가격이 폭락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태그:#간벌, #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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