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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위 얼굴 좀 봐, 울고 있는 거야? 찌푸리고 있는 거야?”

“인간 세상이 못 마땅해서 잔뜩 찌푸리고 있는 거겠지?”

“그건 그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바위인들 어디 못 마땅하지 않겠어?”

“등산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청계광장 집회에 들렀다 가야겠어?”

 

아주 특이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는 바위를 바라보며 일행들이 저마다의 느낌을 말하고 있었다. 삼성산 능선길에서 만난 바위는 얼굴 표정이 정말 심각했다. 어찌 보면 울고 있는 모습이었고, 또 달리 보면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아주 못 마땅한 표정이었다.

 

주말의 관악산 등산로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지난 주말인 2월7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관악산을 오르려고 서울대 입구에 일행들이 모여들었다. 골짜기로 들어가는 입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제법 큼직한 광장이 사람들로 바글바글하여 서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일행 노모의 꿈자리 때문에 삼성산으로 산행코스를 바꾸다

 

어렵사리 만난 일행들은 모두 다섯 사람이었다. 줄줄이 이어진 사람들을 따라 골짜기로 향했다, 날씨는 포근했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상쾌한 산행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행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들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일까? 아니 어쩌면 찌든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 때문이리라.

 

“오늘은 두 세 시간 코스로 적당히 하는 게 어때? 우리 어머니가 어젯밤 꿈자리가  사나웠다고 가지 말라고 말리시는 걸 나왔거든.”

 

일행 한 사람이 골짜기를 오르며 험한 관악산정상으로 오르는 걸 피하고 싶은 눈치다. 그의 어머니는 올해 90세를 넘긴 노인인데 아침에 산에 다녀오겠노라고 인사를 드리는 친구에게 꿈자리 이야기를 하며 말리더라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지, 관악산이 아니라 삼성산으로, 깃대봉이나 칼바위 능선은 피하고 호암산으로 해서 호압사를 거쳐 내려가는 안전한 코스로.”

“우린 관악산만 올라서 어느 쪽으로 가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러나 내가 제안한 코스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날 산행의 일행 중 나와 자주 함께했던 친구는 한 사람뿐이었다. 두 사람은 친구의 또 다른 친구들로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쪽으로 오면 으레 관악산만 올랐던 사람들이어서 삼성산 쪽은 잘 모른다고 했다.

 

“자, 그럼 오늘은 내가 앞장을 서지.”

처음 만난 일행 두 사람을 포함하여 다섯 사람이 함께 오른 이날의 산행은 이렇게 내가 앞장을 서게 되었다. 산행코스를 정한 우리들은 관악산과 삼성산의 경계가 되고 있는 골짜기를 타고 오르다가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 능선을 타고 오르면 삼막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를 넘는 코스였다. 목재 계단길을 오르다가 땅위로 내려서자 곧 급경사 길이다. 일행들이 금방 땀을 흘린다. 날씨가 포근한데 겨울철이라고 옷을 너무 두껍게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쉬며 방한 조끼들을 벗었다. 안개 때문에 상쾌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등산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기온이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 삼십분 만에 능선길에 올라섰다. 안개는 여전히 자욱했다. 골짜기 건너편의 산세가 어슴푸레하게 바라보인다.

 

“어라! 여기 이 바위 좀 봐봐? 표정이 장난이 아니네,”

능선길을 따라 고갯마루로 가고 있을 때였다. 일행 한 사람이 나를 불렀다. 다가가보니 문제의 바위였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표정 같기도 하고, 울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한 바로 그 바위.

 

찌푸린 바위 얼굴에서 못마땅한 세상을 보다

 

전에도 이 능선을 몇 번인가 지나쳤지만 발견하지 못한 바위였다. 능선길가의 바위는 등산객들이 걷는 길 쪽을 향해 있지 않고 서울 시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가보았다.

 

 

삼성산은 산의 규모에 비해 바위가 유별나게 많은 산이다. 그래서 다양한 모습과 표정을 가진 바위들이 많은 편인데 이 바위는 표정이 정말 유별났다. 일행들은 독특한 바위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요즘의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비유하여 꼴사나운 세상모습 때문에 찡그리고 있는 표정으로 결론짓고 “찡그린 얼굴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찡그린 얼굴바위에서 잠깐 내려가자 삼막사 고갯길이다. 고갯길 근처 평평한 바위들은 등산객들이 점심을 먹느라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호압사 쪽으로 20여분을 더 걷자 아늑하고 평평한 바위가 나타났다. 마침 빈 자리여서 우리들도 도시락을 꺼내 점심을 먹었다.

 

“자, 이 술은 집에서 우리 마누라가 담근 매실주야, 한 잔씩 들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매실주를 꺼내 권한다.

 

“참, 복분자 술은 어떻게 됐어?

매주 산행 때마다 동행했던 친구가 내게 묻는다. 그는 아무래도 내가 정상주로 가져가는 복분자 술이 입맛에 맞는가 보았다.

 

 

“물론, 복분자 술도 가져왔지, 자 한 잔씩 들어봐?”

내가 가져간 복분자 술과 친구가 가져온 매실주로 점심자리는 금방 분위기가 들떠  올랐다. 위험한 바윗길은 피하기로 했으니 한두 잔씩의 술이야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의 포근한 날씨로 등산로는 빙판이 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여기도 깃대봉이 있었네, 저 국기 아래 모여 기념사진 한 컷 어때?”

점심을 먹은 후 다시 호압사 쪽으로 향했다. 30여분 쯤 걸었을까, 저만큼 앞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자 가까운 곳에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흐린 날씨 때문에 전망대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전망대 아래를 내려다보니 왼편 아래쪽이 낯익은 풍경이다. 바로 호압사 뒤쪽이었다. 우리들이 올라서 있는 곳이 바로 호암산이었던 것이다. 호암산은 삼성산의 북단, 금천구 시흥동 뒤쪽에 절벽으로 솟아 있는 바위산이다. 한강 건너 북쪽 경복궁에서 바라보면 호랑이처럼 생긴 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우리 양면은 온통 바위절벽이다. 호압사 쪽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왔던 길을 뒤돌아 조금 후퇴해야 했다. 뒤돌아가는 길에서는 두 개의 바위를 만났다. 그 중의 한 개는 하마처럼 생긴 바위였고, 또 하나의 바위는 도마뱀처럼 생긴 바위였다.

 

 

내려가는 산길 옆에는 샘물이 졸졸 흐르는 약수터가 두 군데나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곳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 일행들의 미소를 자아낸다.

 

“겨울 가뭄이 지속 되므로 물이 너무 적깨 나옵니다. 하머로 상호간의 편의와 ...중략... 부탁 올립니다,”

 

어느 지방 사투리를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쓴 글이었다. 일행들이 재미있어 한다. 맞춤법이 틀렸다고 비난하지 않고 재미있게 봐주는 일행들의 마음이 정다웠다.

 

호랑이 모양의 바위산 아래 자리 잡은 호압사는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독경소리만 울려 퍼질 뿐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20여 년 전에 들렀을 때 보다 훨씬 웅장하게 중창한 모습이 낯설었지만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대웅전인 약사전 앞 마당가에는 두 그루의 고목이 서 있었는데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보호수들이었다. 500년이 넘었으면 이 절집의 역사와 함께 해온 고목들이다. 호압사가 세워진 연대는 태종 때라고 하지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오히려 태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암산과 호압사의 유래와 전설

 

역성혁명으로 고려조를 뒤엎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경복궁을 짓는다, 그런데 공사 중에 자꾸만 건축물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궁궐이 빨리 세워져야 한양으로 옮겨올 수 있는데 궁궐 건축이 늦어지니 애타는 사람은 태조였다.

 

공사현장을 찾은 태조는 궁궐공사를 하는 인부들로부터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된다. 낮에 공사를 해 놓으면 밤사이에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태조는 밤에 궁궐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밤이 깊어지자 머리가 호랑이 모양을 한 괴물이 나타나 낮에 세워놓은 건축물을 모조리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가. 태조 이성계가 누군가. 그는 본래 무예가 뛰어난 장군이 아니었던가.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태조가 칼을 빼어들고 그 괴물을 처치하려고 할 때였다.

 

“왕이시여, 고정 하시고 날이 밝으면 남쪽을 바라보옵소서. 그 쪽에 호랑이 모양을 한 바위산이 바라보일 것입니다. 호랑이는 본래 꼬리를 잡아 누르면 꼼짝 못하는 법이니 그 바위산 꼬리 부분에 절을 세워 호랑이 기운을 누르십시오,”

 

바람처럼 나타나 말을 마친 백발노인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다음 날 아침 태조가 바라본 산이 바로 이 호암산이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높이 솟아오른 빌딩 숲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경복궁에서 이 호암산이 정면으로 마주 보였을 것이다.

 

호압사가 그렇게 세워졌다는 것이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다. 물론 다른 전설도 있지만 역시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워졌다는 것은 공통된 전설이다. 관악산이 불기운이 높은 산이어서 불기운을 막기 위해 숭례문의 현판을 세로로 붙이고, 경북궁과 광화문에 만들어 앉힌 해태상도 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도참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호압사가 세워진 것도 역시 바로 풍수지리, 도참사상에 따른 비방이었던 셈이다. 호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다. 경내를 둘러보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산뜻한 모습이 근래에 새로 지은 듯한 요사채 옆의 장독대 뒤에는 주렁주렁 걸어놓은 말린 시래기가 예스럽고 정다운 모습이었다.

 

불사가 계속 진행 중이어서인지 마당 한쪽에는 신도들로부터 기증 받은 기왓장들이 쌓여 있었다. 그 기왓장들 중에는 건강과 행복, 그리고 재물복을 많이 달라는 기원문이 쓰여 있는 기왓장이 눈길을 끌었다.

 

커다란 종과 북, 그리고 목어가 매달려 있는 범종각 아래 옆에는 관음보살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앞과 위쪽에는 작은 꼬마불상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는 모습이 귀엽다.

 

 

“그만 가지? 요즘은 절에 와도 고색창연한 옛 모습은 볼 수 없고 새로 지은 건물들이 많아서 그런지 옛날처럼 정겨운 맛이 없단 말이야.”

 

오늘 처음으로 함께한 일행 한 사람이 그만 가자고 앞장을 선다. 조금 전 약사전 앞에서 합장하고 잠깐 기도까지 한 이 일행은 불교도인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새로 신축한 건물들과 어수선한 공사 현장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았다.

 

호압사 경내에서 나와 신림동으로 내려가기 위해 언덕으로 오르는 길가의 붉은 적송 소나무 숲에서 은은한 솔향이 풍겨 나오는 듯 했다. 봄이 저만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친구는 청계광장에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친구 노모의 어수선한 꿈자리는 그냥 봄꿈이었던가 보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산, #호암산, #호압사, #이승철, #찌푸린 바위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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