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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우지(宇治) 뵤도인(平等院)
일본 간사이 지역을 찾아서 11

시가켄(滋賀縣)에 있는 비와코(琵琶湖)의 물은 세타가와(瀨田川)을 통하여 흘러나갑니다. 이 물은 소용돌이를 치며 산 사이를 지나다가 우지(宇治)에 이르러 한 숨을 돌리게 됩니다. 비와코의 물이 평온을 되찾을 무렵 우지가와(宇治川)의 남쪽에 뵤도인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국 불국사 다보탑이 10 원 동전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일본 10 엔 동전에는 이 뵤도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한국은 질기고 단단한 돌이 많이 생산되어 예로부터 돌탑이나 돌로 된 구조물이 많고 그 중에 으뜸이 다보탑이라고 생각하여 다보탑이 동전에 새겨졌으리라고 봅니다. 일본은 화산이 많고 지진이 자주 발생하여 돌이 그다지 좋지 않고 구조물로 만들어 두는 것도 위험합니다. 대신 습하고 따뜻한 기후 속에서 질 좋은 나무가 많이 생산되어 나무를 활용하는 기술이나 나무로 만든 구조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뵤도인 역시 나무로 만든 구조물입니다. 일본 10 엔 동전에 뵤도인이 처음 새겨진 것은 1951 년부터라고 합니다.

뵤도인은 서기 1052 년 후지와라 요리미치(藤原頼道)가 자신의 아버지 후지와라 미치나가(藤原道長)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사찰로 개축하여 뵤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후지와라 가문은 일본 왕실 집안으로 명예와 부를 거머쥐고 있던 가문이었습니다. 절의 이름이 뵤도인으로 붙여진 이유는 부처님의 구제가 뭇 중생들에게 공평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빛이 고루 세상에 비취듯이 부처님이 빛으로 나타나 세상을 고르게 비춘다는 뜻의 빛의 사찰이 곧 뵤도인이라고 합니다.

  뵤도인 본전에는 아미타여래를 중심 부처로 모시고 있습니다. 아미타여래는 세상에서 살던 중생이 죽음을 맞이할 때 중생의 불심이나 공양의 정도에 따라서 아홉 가지 방법으로 맞이하러 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관무량수경의 가르침인데 이 아홉 가지 방법이 그림으로 본존 네 벽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을 구품내영도(九品來迎圖)라고 합니다.

뵤도인은 불교에서 인간이 죽은 뒤 간다고 하는 극락정토를 현실 세계에 옮겨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극락정토와 인간의 생명을 지배하는 아미타여래가 본존에 모셔져 있고 본존 안에는  구품내영도와 운중공양보살(雲中供養菩薩)이 52 기가 벽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내벽이나 천정, 모서리 등에는 각종 화려한 꽃이나 금장식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모두 색이 바래서 희미하게 예 화려함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본존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상은 높이가 3 미터로 노송나무로 각 부분을 만들어 붙인 뒤 옻칠을 하고 다시 그 위에 금박을 입혔습니다. 금박이 정교하여 금동으로 보이지만 금동이 아닙니다. 아미타여래상의 뒤에는 금동의 화려한 광배가 투조로 장식되어 있고, 아미타여래상 아래에는 연꽃 좌대가 있고, 아마타여래의 머리 위에는 화려한 금색 닫집이 투조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천년이 지난 지금도 금색의 화려함이 아직은 반절 이상 남이 있습니다.

뵤도인이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사후 극락세계를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에 아미타여래는 동쪽을 향해서 앉아있고, 참배하는 사람은 서방정토의 방향인 서쪽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뵤도인은 봉황당이라고도 합니다. 그 이유는 이 건물의 용마루 양쪽에 봉황이 두 마리 서로 마주보고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 뵤도인의 본존 지붕은 한국의 팔작 기와 지붕과 비슷한 형태의 지붕입니다. 봉황은 상서로운 새로 상상의 동물입니다. 보통 새는 인간이 가지지 못한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날개를 이용하여 새는 마음대로 공중을 날아다닙니다. 어쩌면 새는 인간의 날지 못하는 한계와 숙명을 해결해 주는 존재로 부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히에로크리프에서도 새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주고 인간이 죽은 다음 인간의 영혼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운반해 주는 매개자 역할을 합니다. 뵤도인의 봉황 역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주고 인간의 영혼을 이승에서 서방정토로 안내해 주는 매개자였을 것으로 봅니다.

한반도에 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삼족오부터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공주 무령왕릉 베개 장식의 봉황, 부여 능산리 고분군 공방터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향로의 맨 위에 서있는 봉황 등이 있습니다. 이들 백제의 봉황과 비슷한 봉황은 다시 일본 여러 곳에서도 발견됩니다. 나라 호류지의 금당 삼존불의 닫집 가장자리에 장식된 봉황, 우지 뵤도인의 봉황 등입니다. 그리고 봉황과 더불어 금동 투조 장식도 있습니다. 이 투조 장식 역시 백제 무령왕릉 출토품에서 비롯하여 나라 호류지 백제 관음, 뵤도인 비로자나불의 광배, 닫집 등에서도 확실한 투조 장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 봉황이나 투조 장식은 백제인의 기술이 투영된 암호가 아닌가 합니다. 이곳 뵤도인의 봉황상이나 투조 장식은 백제의 장인 정신이 숨어 숨쉬는 전통의 숨결입니다.
 
뵤도인의 건물은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려는 모습을 형상화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아미타여래가 모셔져 있는 본존은 봉황의 몸에 해당되고, 본존의 양 옆에는 날개를 형상화시킨 회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회랑은 봉황이 다리로 서있는 모습으로 고상식입니다. 그리고 건물 앞이나 주변에는 물이 담긴 정원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서방정토 정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간 천년이 지나도록 뵤도인 주변 건물은 역사적인 사건에 부침이 있었지만 뵤도인 본존만은 한 번도 피해를 입지 않고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어왔다고 합니다. 후지와라 요리미치는 천 년 전 서방정토를 꿈꾸며 우지에 뵤도인을 통하여 서방정토를 실현시켰습니다. 그가 죽은 뒤 그가 꿈 꾸던 대로 서방정토에 갔는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오늘 서방 정토의 아름다움만은 뵤도인에서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으며 컴퓨터 그래픽 영상으로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가는 방법 - (1)제이알(JR) 교토역에서 출발하는 나라선(奈良線) 전차를 타고 우지역(宇治)에서 내려 동쪽으로 10 분쯤 걸아가면 됩니다. (2)오사카에서 올 경우, 요도야바시(淀屋橋)에서 게이한우지역(京阪宇治駅)까지 약 45 분, 게이한우지역에서 걸어서 10 분.(게이한요도야바시(京阪電鉄淀屋橋)에서 게이한혼센독큐(京阪本線特急)로 쥬쇼지마(中書島)까지, 쥬쇼지마(中書島)에서 게이한우지센(京阪宇治線)으로 바꿔 타고 게이한우지역(京阪宇治駅)까지.)



※ 뵤도인에 관한 좋은 자료를 주신 뵤도인 직원에게 감사드립니다.



참고문헌,

뵤도인, CG 사진집 헤이안 색채미에의 여행 - 다시 살아나는 봉황당의 아름다움,2008.8,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글을 읽다. 2008.5



태그:#교토 우지, #뵤도인, #봉황당, #아미타여래, #후지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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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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