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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검이 7일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아무개씨를 긴급체포해 조사중이다. 인터넷상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다.

 

결국 미네르바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정부가 무리하게 나선 결과다. 그의 체포를 둘러싼 법리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체포 소식은 거의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미네르바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방증한다 하겠다.

 

검찰이 미네르바로 지목한 박씨의 이력은 놀라웠다. 서른 살, 전문대 출신의 무직자. 금융권에 몸담은 경험은커녕 경제학을 전공한 적도 없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모두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비껴갔다는 점에서 그의 이력이 충분한 기사거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의 이력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미네르바에 관한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문득 2007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학력 검증 소동이 떠올랐다. 사건의 중심에 있던 신정아씨를 비롯해 학계와 문화계, 연예계 등에서 조금 알려졌다 싶은 이들 모두가 학력 검증의 도마 위에 올랐고 결국 몇몇 '사실'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학력을 속인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했던 연예인들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대부분은 별 탈 없이 활동을 하고 있다.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에는 적지 않은 충격으로 많은 이들이 여론 재판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사안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게 되자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설사 그들이 학력을 속였을지언정 실력을 속일 수는 없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다시 말해 학력이 가짜라고 실력마저 가짜는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미네르바 신드롬'을 두려워 하는 그들

 

미네르바 사건 역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미네르바가 처음부터 자신의 거짓 이력을 내세우면서 글을 발표했다면 모를까 그는 최근에 와서야 자신의 이력을 조금씩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가 대한민국 경제대통령으로 인정을 받은 훨씬 뒤의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그를 주목했던 것은 그가 명문대를 나오거나 금융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그는 나름의 날카로운 분석과 전망을 통해 사람들의 답답함을 풀어 주었다.

 

수많은 경제 관료들과 경제학자들이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누리꾼 한 사람이, 그것도 경제를 전공한 적도 없는 이가 대신했고 결국 '미네르바 신드롬'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제와 미네르바를 체포했다. 자신들이 하지 못한 일을 대신해준 미네르바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부의 무능과 실책을 감추기 위해 그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그 뿐인가. 난세가 낳은 영웅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학력과 나이 등을 문제 삼고 나섰다. 미네르바를 '가짜'로 만들려는 의도다.

 

'보라. 당신들이 그토록 열광하던 미네르바는 사실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실업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더 이상 제2, 제3의 미네르바에 대중이 열광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미네르바' 꿈꾸는 수많은 경제 논객들

 

과연 정부의 이런 소원이 이루어질까. 미네르바는 이미 한 사람이 아니다. 검찰이 이야기하는 '공범'의 존재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네르바는 미디어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은 물론, 향후 토론방의 글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정형을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아고라 경제토론방은 미네르바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미네르바의 등장 이후에는 수많은 경제 논객들이 미네르바를 꿈꾸거나 자임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수백수천의 미네르바들이 탄생한 지금 한 명을 잡아넣는다고 정부의 무능과 실책이 감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2007년의 학력 검증 소동을 통해서도 확인했듯이 '가짜 학력'이 곧 '가짜 실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이의 분석과 예측이 그 누구의 것보다 정확했다면 그것은 그의 실력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설사 그가 경제 이론에 문외한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해도 그의 능력을 깎아내릴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경제 이론에 정통한 교수들조차 하지 못한 일을 그가 해냈기 때문이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이른바 '미네르바 신드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런 상황(경제 위기로 인한 혼란- 인용자 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국민이 필요로 했던 것은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떠난, 이전 단계의 사실이다. 바로 미네르바는 이 '사실 전달'을 했다.(한겨레 21, 738호)

 

"정부와 보수 세력은 근거도 없는 낙관론으로 상황을 오도시켜왔"고 진보세력은 "구체적인 사실관계 분석을 소홀히" 한 채 "너무 쉽게 '신자유주의 종말'이나 '자본주의 위기'를 주장하는 데 치중"했다는 것이 김병권 센터장의 설명이다.

 

기껏 전문대 졸업한 이에게 농락당했다고?

 

심각한 경제 위기 국면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또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해답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정부 당국과 경제학자들은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네르바가 등장해 국민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것이다.

 

물론 그의 대답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앞날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작 중요한 것은 미래의 파국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대책 혹은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미네르바의 몫일 수 없다. 지금은 미네르바의 말처럼 대출 갚고 현금 챙기고 몇 달치 식량을 확보하는 것으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신자유주의의 틀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 사회의 책임있는 사람들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기껏 전문대를 졸업한 이에게 온 국민이 농락당했다는 투의 기사도 눈에 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미네르바를 깎아내리면 내릴수록 정작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무능력함이라는 사실을. 그에 대한 실망이나 원망은 접어두자. 그가 있어 잠시나마 가려진 진실을 볼 수 있었고, 희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기로 하자.

 

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미네르바들이 남아있고 누구라도 미네르바가 될 수 있다. 이제 더 많은 미네르바들과 함께 당신과 내가 직접 한국 경제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윤찬영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온라인팀장입니다.  


태그:#미네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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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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