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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도관이 재소자들과 걸어가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한 교도관이 재소자들과 걸어가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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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의회 쿠데타', 'MB(이명박)악법'을 저지하기 위해 매일 밤 야당의원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촛불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밤을 지새우다 연행까지 당하는 그야말로 비상시국이다.

하지만 일상에 묻혀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민주적 권리에 대한 MB정권의 위협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아직까지는 실감이 안 날 수 있다. 그런 분들에겐 빠르게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는 교도소(구치소)의 인권상황을 주시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감옥은 한국사회에서 민주화의 햇볕을 가장 뒤늦게 받았지만 가장 빠르게 사그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폐쇄적인데다 '범죄자'를 수용하는 곳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쉽게 묻혀져 버린다. (당국에서는 감옥이란 말은 사라진 용어라고 하지만 여전히 내가 이 용어를 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오늘 아침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민주노총 울산본부 배문석 문화국장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구치소에서 지난 12월 23일자 경향신문 사회면 중간을 가위로 난도질해서 들여보냈다는 것이다. 신문을 난도질해서 들여보내는 것은 유신이나 5공 시절에 자행됐던 악랄한 인권침해다. 감옥에 갇힌 수많은 양심수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면서 이런 야만적인 관행들이 사라졌는데 MB정권이후 몇 달 사이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정된 행형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금지된 서신 검열도 버젓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비단 부산구치소 만의 문제가 아닐 터. 안동교도소에 4년째 수감중인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정창윤씨는 한 달 가까이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난방도 변변치 않은 감방에서 그나마 지급되던 부실한 식사마저 끊어 버렸으니 그의 체력은 지금 고갈 될 대로 고갈된 상태다. 출소를 불과 몇 개월 앞 둔 그가 왜 이렇게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걸까?

안동교도소는 지난 12월 8일, 정창윤씨의 전화통화 신청을 불허했다. 12월 19일에는 지인이 정창윤씨 앞으로 보낸 전자서신을 본인에게 통보조차 해주지 않은 채 폐기시켰다. 전화, 서신, 접견 이 세 가지는 자유를 박탈당한 구금시설 재소자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이다. 만일 이것들이 금지되거나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면 재소자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고 만다.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끈, 전화·서신·접견 자유 보장돼야

감옥 안에서 심각한 가혹행위를 당해도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UN의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 같은 국제인권규범에서는 최대한 완벽하게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기본적인 인권 사항이다. 지난 해 12월 22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행형법도 서신검열을 원칙적으로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화사용의 권리 또한 확대했다.

그런데도 안동교도소는 버젓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관례에 따라 함부로 제한해 버린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를 들어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전화통화를 불허한 이유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법령 어디에도 가족이 아닌 사람과 통화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교도소(구치소)들은 툭하면 "가족이 아니면 안 됩니다"라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다. 걸음마 단계의 어린 아이도 아니고 가족들하고만 소통하라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된 전자 서신은 "단식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본인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은 채 폐기시켰다. 본인의 동의 없이 발송된 서신을 폐기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다. 교도소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더니, 교화과장은 전자서신은 웹상에서 한 달 동안 자동 보관되기 때문에 폐기한 건 아니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본인에게 전자서신이 온 것을 알리지도 않았으니 정씨가 계속 모른 채 한 달을 넘겼다면 자동 폐기되었을 것이다.

개정 행형법에 서신내용을 검열하지 못하게 한 조항(43조 4항)이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수많은 단서조항들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예를 들면 "수형자의 교화 또는 건전한 사회복귀를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 "시설의 안전 또는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 불허하도록 돼있다. 상당히 애매모호한 규정이다.

그러다보니 법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데 이럴 경우 재소자들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정립된 판례의 입장이나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과잉금지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니까 단서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우려'들이 발생할 개연성이 명백한 경우에만 제한은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법을 적용하는 공무원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좌우된다.

정창윤씨가 단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안동교도소의 열악한 처우 때문이었다. 안동교도소가 '교정·교화'에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재소자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먼저다. 그러지 않고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재소자들을 “문제수”로 찍어놓고 징벌을 가하는 등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에 갈수록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창윤씨가 단식을 하고 있던 지난 12월 19일, 안동교도소에 있던 청년 재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사동 복도 난간에 목을 맨 것이다. 일부 언론에 나온 쪽 기사를 보니 교도소 관계자는 고인이 여러 차례 자살, 자해 소동을 벌였던 사람이라며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고인과 같은 병 사동에 수감되어 있던 이진강씨(국가보안법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의 주장은 다르다. "무책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교정행정체제"가 꽃다운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유명을 달리한 고 이정훈(24)씨는 교도소에 입감되자마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두 달 남짓 전에 대전에서 안동으로 이송되었다. 교도소 측의 주장처럼 그가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대전에서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쳤지만 후유증 때문에 한 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생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죽기만을 원했던 것 같지는 않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했던 이씨는 죽기 얼마 전까지도 작곡 공부를 하고 싶다며 음악잡지를 구독하게 해달라고 교도소 측에 간절히 요청했다. 하지만 일고에 거절당했다. 그 때의 좌절감이 너무나 컸던지 죽기 이틀 전까지 "대전에서는 되는데 왜 여기서는 안 된다는 거야. 나보고 죽으라는 얘기야"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교도관들과 상담을 할 때도 여러 차례 "자살 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며 구조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시대에 뒤떨어진 교정행정체계 개선 시급하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은 암보다 치사율이 더 높은 사회적 질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밖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사람들도 쉽게 걸리는 병인데 하루 종일 갇혀 지내는 재소자들은 오죽하겠는가? 행형법(제39조)에 따르면 “소장은 정신질환이 있다고 의심되는 수용자가 있으면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치료감호시설로 이송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씨가 대전에 있을 때부터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는데도 당국은 왜 그를 치료시설이 있는 진주가 아니라 환경이 더 열악한 안동으로 보냈던 것일까? 결국 재소자 인권보다는 행정 편의를 앞세우는 억압적인 교도소 환경이 안타까운 죽음을 불러온 것이다. 평소 우울증 환자들에게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고인은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MB 독재'가 심화될수록 인권사각지대가 확대되면서 안타까운 죽음은 늘어만 갈 것이다. 감옥의 높은 장벽 탓에 세상 밖으로는 잘 들려 나오진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최소한의 인간다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재소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광열씨는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재소자 인권, #교도소(구치소), #감옥, #인권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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