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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의 문화사>
▲ 표지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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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란 책이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 윤리서로 왕실이 주도해서 대량으로 인쇄 배포했다. 주로 충신, 효자, 열녀들의 행실을 글과 그림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세종 때 처음 제작 반포된 뒤 조선왕조 내내 꾸준히 인쇄 배포했다.

왕실이 주도해서 제작 반포한 책이기 때문에 왕실의 통치 이데올로기 전파에 목적이 있었다.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책으로 묶어 배포하는 목적이야 당연한 것. 만백성 모두가 충신, 효자, 열녀가 되기를 바라는 뜻이었다.

강요된 윤리가 빚은 비극

<삼강행실도>는 백성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고금의 충신, 효자, 열녀들의 행적을 그림과 글로 소개하고 있다.

글 모르는 백성을 위해 그림으로 그렸으나, 그림만 가지고는 그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글(한자)를 읽는 사람들이 가르쳐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목적으로 <삼강행실도>를 쉬운 글로 제작해서 백성들에게 보급시켜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기도 했다.

<삼강행실도>가 조선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충과 효라는 윤리는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윤리처럼 각인되었고, 일부 사람들은 <삼강행실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을 따라 하기도 했다.

<좌> 병든 아비를 위해 다리 살을 잘라내는 위초, <우> 병든 아비를 위해 손가락을 자르는 석진
▲ <삼강행실도 그림> <좌> 병든 아비를 위해 다리 살을 잘라내는 위초, <우> 병든 아비를 위해 손가락을 자르는 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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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병든 시어머니를 위해 허벅지 살을 베어내는 끔찍한 일도 일어났다. 심지어는 병든 남편을 위해 허벅지 살을 잘라냈다가 그 상처가 덧나 아내가 먼저 죽을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기도 했다.

손가락을 잘라 환자의 입에 피를 흘려 넣거나 허벅지 살을 베어내어 삶아 먹여도 환자가 병에서 완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금방 죽을 거 같던 목숨이 몇 시간이나 하루 이틀 정도 더 연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을 한 자식이나 며느리, 그리고 아내는 효자, 효부, 열녀로 칭송되고 포상이 주어졌다. 따라서 부모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손가락을 자르지 못하거나 남편이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허벅지 살을 베어내지 못하면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남편이 죽었어도 목숨 끊지 못하고 사는 이들에게는 미망인(未亡人, 죽어야 함에도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란 명칭이 따라다녔다.

인간적 도리를 지키는 차원을 넘어서 신체의 일부를 자르거나 목숨을 끊도록 강요하는 <삼강행실도>의 윤리의식이 확산될수록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많아졌다.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이 편안히 천수를 누리고 안방 아랫목에서 조용히 운명하였는데도 아내가 따라 죽는다. 이는 스스로 제 목숨을 끊는 것일 뿐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런 죽음이 의에 합당한 것이냐 하면 천부당만부당하다. 나는 확고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천하에서 제일 흉한 일이라고 여긴다.

아, 신체와 모발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감히 상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위독한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자식의 몸을 해쳐가면서 그 고기를 먹고 싶어 할 리가 있겠는가? (책 속에서)

다산 정약용은 이 같은 견해를 밝히면서 그 흉한 일을 한 사람들을 효자다 열녀다 칭송하고 정표를 세우고 각종 역을 면제시켜주는 세태를 비판한다. <삼강행실도>에서 칭송받던 효자와 열녀들의 행위가 다산의 눈에는 잔혹하고 비합리적 행위로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조선 왕조는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삼강행실도>의 윤리의식 확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절대적 효의 윤리는 왕에 대한 절대적 충성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왕조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바람직한 윤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문자와 책을 통해 반영된 권력의 의도

일반 백성이 제 뜻을 펼칠만한 문자를 알지 못하던 시절, 문자와 책은 권력의 의도를 충실하게 전달했다. <삼강행실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만백성을 충신, 효자, 열녀로 만들기 위한 의도가 그 속에 충실히 반영되었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는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다. <삼강행실도>를 단편적인 통치자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만 분석하는 게 아니라 민속학의 관점에서, 서지학의 관점에서, 고문서의 관점에서, 미술사적 관점에서 접근해서 분석하고 있다.

병든 형을 살리기 위해 동생은 손가락을 자르고, 병자의 아내는 허벅지 살을 잘라냈다는 내용의 일제시대 기사. 이 일로 인해 동생과 아내는 조선 총독부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 동아일보 1922년 10월 3일자 기사 병든 형을 살리기 위해 동생은 손가락을 자르고, 병자의 아내는 허벅지 살을 잘라냈다는 내용의 일제시대 기사. 이 일로 인해 동생과 아내는 조선 총독부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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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고전소설 전공자의 입장에서 판소리 텍스트 분석을 통해 <삼강행실도>가 민중들에게 어떻게 수렴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삼강행실도>의 윤리를 식민지 통치에 효과적으로 이용했는지를 당시 발행되었던 신문과 잡지를 통해 살펴본다.  

문자와 책이 권력에 이용되었을 때 얼마나 날카로운 비수가 될 수 있는지를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 비수에 찔려 상처받고 고통 받던 이들도 많았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이제는 병중의 부모를 위해 손가락을 자르거나 허벅지 살을 베어내도록 강요하는 권력은 없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문자를 통해서 또 다른 권력의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시도는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주영하 외 4인/휴머니스트/2008.11/13,000원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 - 삼강행실도를 통한 지식의 전파와 관습의 형성

주영하 외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엮음, 휴머니스트(2008)


태그:#삼강행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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