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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별 관심이 없던 나를 눈뜨게 해준 것은 지난 8월 미국 리먼 브러더스를 비롯한 미국은행 파산이 휩쓸고 온 경제위기 보도들이었다. 이는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우리 수업에서도 빠질 수 없는 큰 이슈거리였고 내가 그렇게 어렵다고 무시해 버리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나 '경기종합지수' 등 경제용어들을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익히기 시작했다.

주변 한국인들 역시 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나는 중국인이다). '이명박 정부가 올라서고 나서 되는 일이 없다'는 반정부 태도로부터 '두번째 IMF가 시작된 것 같다'며 한국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모두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세계를 내다보는 시야가 넓지 않은 나로서는 이는 단지 먼 나라인 미국 얘기처럼 들릴 뿐이었다.

경제위기, 우리 가족에게도 찾아오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중국에서 건너온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면서 석 달 째 월급을 못받았다. 지금으로선 월급을 받을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중국에서 건너온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면서 석 달 째 월급을 못받았다. 지금으로선 월급을 받을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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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미국 경제위기 소식이 알려지는 와중에 중국에 계시는 엄마에게 아빠 월급이 3개월째 연체되어 그동안 여기저기 지인들한테서 돈을 빌려서 내 생활비를 마련해서 보내주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아빠는 서울에서 대학원 공부를 막 시작한 딸이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부담을 느낄까 봐 차마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시고 혼자서 속 썩이고 계셨던 것이었다.

꽤 지나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아빠는 회사 부도로 인하여 3개월 동안 3번이나 현장을 옮기셨고 연체된 월급은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아직까지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아빠는 중국에 계실 때 담배제조회사(한국에서 말하자면 KT&G와 비슷함)에서 사무일을 하셨다. 내 뒷바라지를 위해서 기꺼이 회사를 접으시고 한국행을 택하셨다. 그전에는 현장일과 같은 막일은 해보신 적도 없으셨다. 그러던 아빠가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오로지 나를 위해 이 현장, 저 현장을 옮겨 다니면서 참고 견디셨을 그 서러움은 정말 한입으로 다 표현하기에도 모자랄 것이다.

대전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좀 더 견문을 넓히고자 선택한 서울이었지만 나에게는 힘든 '두 번째' 유학이나 다름없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경제위기는 그렇게 나와 아빠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살금살금 찾아왔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경제위기를 생생하게 듣게 됐다.

경제위기, 취업난에 취업난을 더해주다

지난해 <88만원 세대>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선진국인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사진은 영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2006)
 지난해 <88만원 세대>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선진국인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사진은 영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2006)
ⓒ 불타는필름의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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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은 취업난을 겪고 있는 그리고 또 앞으로 겪게 될 지금의 20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나는 선진국인 한국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몇 개월 전 '한국인 절반 이렇게 산다- 비정규직 800만 시대'라는 시리즈 기사를 보면서 또 한 번 충격으로 경악했다. 내로라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힘들어 비정규직에 몸담으면서 불안에 떠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지방에서 OO대를 다니고 있는 이씨(25, 한국인)는 졸업을 앞두고 걱정거리가 태산 같다. 이력서를 여기저기 넣고 면접도 몇 차례 봤지만 아직까지도 취업 여부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씨는 "정말 속상하다, 지방대를 나와서 취업이 힘든 것도 있었는데 이번 경제위기로 취업이 더 힘들어졌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이제 신입을 잘 뽑아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가리지 않고 아무데나 취직하는 것이 목표이다. 취직이 안 된다면 정말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다"면서 눈시울을 흐렸다.

또 대학생인 윤씨(24, 한국인)는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데 요즘에는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구하기 힘든 것 같다. 음식점 같은 데도 가족들이 직접 일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아르바이트생을 쓰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메신저에서 만난 중국인 강씨(25)는 한국 경제 불황이 중국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강씨는 중국 베이징외대를 졸업하고 가이드의 꿈을 펼치고자 지난 7월 중국 후난성(湖南省) 장자제(張家界)의 모 여행사에 취직했다. 강씨는 "장자제는 중국에서 여행 중심도시이고 관광산업으로 새롭게 부각되어 있는 곳이다. 한국인들한테 인기 있는 관광지로서 해마다 관광객 중 70%가 한국인이고 여름철에는 하루에 평균 1000명 정도의 한국관광객이 찾아갈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어 구사에 능통한 강씨는 이런 점을 파악해서 그 회사에 취직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강씨는 "우리 회사의 주 수입원은 한국인인데 지금은 예전보다 수입이 엄청 못해졌다. 8~9월까지만 해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100팀 정도(1팀당 10~20명 정도라고 함) 있었는데 12월에 들어서면서 4팀으로 줄어들었다. 한국인들이 여행을 오지 않는 데다가 경기불황으로 한국 돈 값이 떨어지다 보니 피해 보는 건 우리다. 경제위기도 위기지만 외환위기라고 하는 쪽이 더 맞을 것 같다. 빨리 환율이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심지어 이런 위기로 인해 여행사를 그만둔 동료도 있었다고 하면서 가이드의 꿈을 키우고자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 이런 위기에 직면하니 예전처럼 일할 힘이 없다고 말했다. 할 일이 없는 요즘에는 게임으로 하루하루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중국 경제도 위기, 유학 통해 재충전하자

경제 위기라지만 유학 등을 통해 재충전 기회로 삼으려는 이들도 있다.
 경제 위기라지만 유학 등을 통해 재충전 기회로 삼으려는 이들도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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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닥쳐온 경제위기와 취업난에 다들 숨가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런 위기를 나름대로 기회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중국인 석씨(24)는 이번 경제위기로 인해 급속도로 발전하던 중국경제가 성장을 멈추는 추세에 놓여 있다고 하면서 대학을 나와도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이제는 신화에 가까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가 이렇게 침체되어 있을 때일수록 유학생활을 하면서 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는 석씨는 지난 11월 일본으로 출국해 현재 일본 '도고로자와'라는 도시의 대학원에서 유학 중이다.

한국인 송씨(20)는 스스로 운이 좋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 사회가 경제위기로 힘든 시기에 입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제대하면 경제가 많이 회복되어 있을 것이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취업문이 열릴 수도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었다.

내년 경제는 제발 좋아졌으면...

미국에서 벌어진 먼 나라 얘기인 줄로만 알았던 2008년 경제위기는 결국 내 얘기였고 가족 얘기였고 내 친구들 얘기였다. 2009년에는 조금씩 성장해가는 경제와 더불어 조금 더 성장했을 나 자신을 굼꾼다. 오늘도 서울에서 하는 '두 번째' 유학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2008년 경제위기를 통해 알게 된 아빠의 더 큰 사랑, 결코 아빠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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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중앙대 신문방송 대학원에 재학중인 중국인 유학생입니다.



태그:#경제위기, #대한민국 경제, #경제, #리먼브라더스,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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