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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중앙지법(형사8다독, 형사법정 522호)에서는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을 비롯한 촛불관련 구속자5인(박원석, 한용진, 김동규, 권혜진, 백성균)에 대한 2차 공판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재판장에서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이 읽은 모두진술문입니다. 박원석후원회가 모두진술문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나에게 죄가 있다면 국민의 편에 선 것입니다"

지난 5월 회의에서 발언하는 박원석 공동상황실장
▲ 박원석 지난 5월 회의에서 발언하는 박원석 공동상황실장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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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가족과 동료, 선후배 그리고 지인들에게 감사와 안부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마음으로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시는 국민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경찰과 검찰은 지난 여름의 촛불운동을 불법 폭력시위로 규정하고 그것을 주도한 혐의로 저와 이 자리 동료들을 기소했습니다. 저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각계각층 국민이 참여한 민주주의 축제였던 촛불운동을 불법 폭력으로 매도하는 검참의 공소를 인정할 수 없으며, 저와 동료들에게 부당하게 씌워진 혐의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제가 일관되게 진술을 거부하고 묵비권을 행사한 것도 무엇을 감추거나 숨기려 함이 아니라 촛불에 대한 탄압과 부당한 수사에 항의와 거부의 의사를 표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이 법정에서 비로소 무엇이 옳고, 누가 그른 것인지를 분명히 가리고자 합니다.

촛불집회 발단의 배경과 원인은 무엇인가?

촛불구속자 무죄석방을 위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기자회견
▲ 촛불은 죄가없다! 촛불구속자 무죄석방을 위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기자회견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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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여중생 여고생들이 주축이 되어 촛불이 시작될 때만 해도 그것은 우연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촛불은 그로부터 100일이 넘도록 지속되면서 지난 87년 6월 항쟁에 이어, 우리 현대사에 획을 긋는 대사건으로 발전했습니다. 촛불운동은 특히 그 중심에 시민사회단체나 정당이 아닌 청소년, 네티즌, 주부 등 보통 시민들이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집회 시위와는 다른 시민참여의 새로운 현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각자 생활현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광장과 거리로 불러낸 것인지, 왜 일상에 있던 사람들이 학업이나 생업도 뒤로한 채 거리에 나선 것인지, 그 배경과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이 사건의 전체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전제일 것입니다.

지난 4월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면서,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가 기정사실화되었습니다. 미국산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은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 내부는 물론 국제적인 경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06년 3월 작성된 한미 간의 쇠고기수입위생조건을 보면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만을 수입대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처한 한국정부의 우려와 경계가 반영된 것입니다. 인근 국가이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많은 일본이나 대만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왔습니다. 일본을 예로 들면 지금까지도 일본은 '2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만을 수입대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우려가 국내외적으로 높고 안전성에 대한 입증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정부와 축산업자들이 요구해왔던 사항들을 대부분 수용하는 협상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국내 협의 절차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득도 없이 철저하게 밀실에서 이루어진 협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광우병 발병위험이 매우 높은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 수입이 허용되었습니다. 30개월 미만의 쇠고기 중에서는 그간 수입이 금지되었던 척추 뼈, 뇌, 눈, 곱창과 같은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까지 수입이 허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되어도 한국정부는 즉각적인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했고, 도축장에 대한 승인 취소 권한도 종전과 달리 모두 미국정부에 내주었습니다.

검역주권마저 송두리째 포기한 협상이었습니다. 졸속협상, 굴욕협상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정부는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답변만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가 얻을 국익인지 정부는 분명하게 제시하고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이 느끼는 밥상의 불안과 공포를 '괴담'으로 치부하고 쇠고기 수입 강행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시점에 청소년과 네티즌을 중심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운동이 시작된 것은 국민스스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실질적인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도모해야 할 정부가 실체도 없는 '국익'을 내세워 국민을 위험으로 내모는 것에 크게 실망하고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촛불이 갈수록 더 커진 것은 말로는 소통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대운하', '0교시 자율학습'과 같은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의견을 힘으로 누르려 했던 이 정부의 반민주적이고 독선적인 정책추진태도 때문입니다. 실제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것 이상으로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싫으면 안 사먹으면 그만'이라는 대통령의 막말이었으며, 미 축산업자들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국민의 혈세로 전 일간지에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광고를 낸 정부의 어이없는 행태였습니다.

정부는 처음부터 과학적인 근거 제시나 설득 없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의견을 '괴담'으로 몰아붙였으며, 불법촛불집회를 주도한 사람들을 처벌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심지어는 장학사와 교장 교감들을 동원해 청소년들의 집회참석을 감시하고 가로막는 졸렬한 행동으로 국민의 조롱과 비판을 자초했습니다. 촛불의 위력에 밀려 대통령이 두 번이나 국민 앞에 사과를 해 놓고도 돌아서서는 '추가협상'이라는 빈껍데기 대책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거대한 컨테이너 장벽과 물대포 그리고 방패와 곤봉으로 촛불 끄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런 정부에 국민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억눌렀던 권위주의 정권의 독재적 형태가 눈앞에서 다시 벌어지는 믿기 어려운 상황들을 목격했습니다. 지난 20년간 이루어놓은 민주주의의 미약한 성과마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누구라도 이 상황에서 저항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민주사회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정책결정 과정에 의견을 제시하거나 찬반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따라서 건강이나 생명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정책을 다수 국민의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집단적 의사표시를 한 것은 우리 헌법의 국민주권의 원리나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그리고 저항권력 기본권)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한 집회시위였으며, 권리의 행사였습니다.

오히려 부당한 것은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당한 국민의(권리의 행사와) 의사표현을 물리력으로 억압하고 봉쇄한 정부의 대응이며, 갈등을 악화시키고 사태를 키운 책임도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촛불 운동은 누가 주도한 것인가? - 반미좌파 세력의 기획과 선동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5월24일 청계광장
▲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 5월24일 청계광장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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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촛불운동이 반미좌파 세력의 치밀한 기획과 선동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촛불운동이 한참 자행되던 당시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 보수언론은 촛불 배후설을 끊임없이 유포했습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나 한국진보연대와 같은 일부 반미반정부 성향 단체와 그 단체들에 소속된 개인들이 촛불집회를 기획하고 주도했으며, 치밀하게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검찰도 공소장을 통해 저를 비롯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파견활동가들이 서로 공모하여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주장은 근거도 없을 뿐더러 수백만 명이 참여했던 국민적인 저항을 소수의 기획과 선동에 의한 것으로 왜곡하는 것입니다. 지난 촛불운동이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시작되고 증폭된 것이라는 점은 당시 많은 언론보도나 민주주의의 새로운 현상으로 촛불을 주목한 여러 연구자들의 분석과 저술을 통해서 이미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때문에 배후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었으며, 네티즌과 시민들은 수사기관의 배후 찾기에 대해 각자가 배후이며, 서로가 배후라고 거침없이 밝혔습니다. 촛불운동이 일부 반미반정부 세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의 허구성은 촛불운동 기간 열렸던 주요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구성만 살펴보더라도 곧 바로 드러납니다. 일례로 지난 5월 2일 첫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1만 여 명 중 중고생과 일반시민은 7천3백여 명으로 전체 참가자의 7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진 5월 3일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8천명의 참석자중 중고생은 5천 2백 명, 주부 등 일반시민은 1천 4백 명으로 대다수 참가자가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 또는 대학의 학생회 등과는 무관한 시민들이었습니다. 경찰과 검찰이 대표적인 불법집회, 시위로 지목하고 있는 5월 31일 촛불문화제에도 참가자 3만 8천 명 중 시민은 2만 명, 주부 2천5백  명, 중고생 1천 명 그리고 네티즌 3천 명 등으로 시민사회단체나 정당 등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시민으로 분류된 참가자가 약 7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대 군중이 모였던 6.10 촛불문화제에도 네티즌 등 일반시민의 참여는 6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제가 인용한 참가자 숫자와 구성비는 모두 경찰이 증거자료로 제출한 정보보고에 따른 것입니다. 참가자 숫자를 터무니없이 축소하고 그 구성 또한 부정확한 경찰의 정보보고에 따르더라도 지난 촛불운동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생명의 안전을 지키고자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들이 시작하고 주도한 것이며, 배후세력의 기획과 선동 운운하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거리에 나선 아이들
▲ 미친소 싫소! 거리에 나선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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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광우병대책회의는 5월2일 청계광장에서 청소년, 네티즌을 중심으로 첫 촛불문화제가 열린 이후 사안의 중대성과 시급성을 느낀 시민사회단체들이 5월6일 긴급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전국적으로 약 1500개 단체들이 참여의사를 밝힌 가운데 만들어졌습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그 자리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무효와 전면 재협상'을 포함한 4대 요구사항을 발표하고,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시민들의 촛불문화제를 지원할 것을 결정했으며, 실무적인 역할을 위해 상황실을 구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결정은 촛불문화제 준비와 개최에 따르는 인적, 물적, 시간적 부담을 네티즌이나 개인이 아닌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 감당하기로 한 것일 뿐,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중심이 된 촛불문화제의 성격에는 하등의 변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한 많은 단체들은 오랜 기간 사회진보와 개혁을 위해 권력을 감시하고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을 해 왔습니다.

또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해서도 이전부터 문제제기를 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단체들이 촛불문화제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자연스러운 결정입니다. 검찰은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촛불집회를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촛불운동은 투쟁단체나 집단이 주도한 것이 아닌, 자발적 국민의 참여가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대책회의 상황실 구성원들이 집회의 실무적인 준비와 진행을 맡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들끓는 국민의 여론이 하나의 장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지원한 역할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상황실장으로서 제가 한 역할 또한 국민의 의견과 여론이 정확하게 표출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노력한 것입니다. 따라서 대책회의나 저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불의한 권력에 맞서 '국민의 편에 선 것' 뿐입니다. 

촛불집회는 불법, 폭력 시위였나?

6월10일 명박산성 앞에서
▲ 비폭력은 우리의 힘! 6월10일 명박산성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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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 촛불문화제가 허가 받지 않은 미신고 불법집회였으며, 차도를 점거해 교통을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한 불법, 폭력시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촛불문화제에 문화예술인들이나 시민들의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있었던 사실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마치 정치발언과 구호, 거리시위만 있었던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촛불문화제는 전체적으로 공연, 장기자랑, 자유발언 등이 어우러진 시민축제의 형식이며 그 가운데 정치성 구호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문화제의 한 측면만을 부각시켜 전체를 정치집회로 보는 것은 지극히 자의적인 기준이며, 판단입니다.

야간에 미신고 불법집회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야간집회를 허가사항으로 하고 있는 현 집시법 10조에 대한 위헌심판제청 신청이 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만큼, 별도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국민대책회의는 집시법 10조가 명백히 위헌적인 조항이고 촛불문화제는 따로 신고가 필요 없는 문화행사이지만, 불법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수차례 신고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설득력 없는 사유를 들어 신고를 반려하고 결과적으로 미신고 집회를 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 책임은 경찰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경찰과 검찰은 5월 24일을 시작으로 국민대책회의가 불법시위를 주도했으며, 행진과 거리 시위과정에서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을 방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폭력시위를 조장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5월 24일의 거리시위는 국민들의 거듭된 재협상 요구와 호소에도 불구하고 수입위생조건 변경고시를 강행하려고 했던 정부에 대해 보다 분명한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고시 강행을 막고자 했던 시민들의 절박한 심정이 비계획적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당시 저는 무대에 올라 네티즌들과 시민들에 의해 거리행진이 시작된 것을 현장에 있던 전체 참가자에게 알리고 동참을 권유한 바 있습니다. 검찰은 이를 두고 제가 불법 거리시위를 선동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의 행동은 현장에서 발생한 주요 상황을 전체 참가자에게 알리고 공유할 책임이 있는 상황실장으로서 당연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며, 기왕에 시작된 행진이 보다 질서 있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만일 지금 제 눈앞에 동일한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저는 당시와 같은 상황판단과 행동을 할 것입니다.

5월 24일 첫 거리시위가 시작된 이후 협상무효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효과적인 압력수단으로 거리행진을 계속해야 한다는 합의가 촛불문화제 현장과 네티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 방법을 통해 국민의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지만 모두 묵살된 상황에서 이는 불가피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대책회의는 거리시위가 평화적으로, 질서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5월 말부터는 방송차량을 준비하고 자원봉사자를 조직, 배치했으며, 일관되게 평화시위의 원칙을 천명하고 고수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폭력시위의 근거로 밧줄을 이용해 경찰버스를 끄려 내거나 파손한 사례 그리고 소수의 시위대에 의해 쇠파이프가 등장한 사례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소수였지만, 이 같은 사례가 나타났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경찰의 조직된 폭력과 무자비한 시위진압에 비하면 폭력이라고 할 수도 없는 미미한 것들이었으며, 경찰폭력에 흥분한 소수의 시위대에 의한 우발적 행동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국민대책회의는 이조차도 촛불집회를 불법, 폭력시위로 몰아가려는 경찰과 보수언론에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체를 호소했으며, 현장에서도 적극적인 만류와 제재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같은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언론보도 등을 통해 확인된 바입니다. 폭력을 조장하고 조직적으로 행사한 것은 오히려 경찰이었으며, 마구잡이식 연행과 무자비한 진압 그리고 거대한 명박산성이 바로 폭력의 증거들입니다.

경찰 폭력은 구체적으로도 문제가 되어 런던에 본부를 둔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은 조사관을 파견해 촛불 집회 당시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뒤 보고서를 내, 절제되지 않은 공권력의 행사와 폭력진압 그리고 그로 인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이를 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얼마 전 촛불집회 당시 경찰의 폭력진압과 인권침해가 있었으며, 그 책임을 물어 경찰청장과 지휘책임자들을 징계하라는 권고를 포함한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실제 경찰은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려는 100여명의 시민을 차도도 아닌 서울 광장 안에서 무차별 연행한 바 있으며, 5월 31일에는 경복궁역 인근에서 아무런 물리적인 위협도 되지 않는 시위대에게 살수하며 다수가 안면 등에 부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6월 1일 새벽 동십자각 인근과 안국역 주변에서는 토끼몰이식 진압과 연행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경찰이 휘두른 방패와 곤봉에 찍히고 맞아 부상을 당했으며, 서울대 음대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을 진압경찰이 군홧발로 머리를 밟고 걷어차는 동영상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6월 29일에는 서울시의회 부근에서 경찰의 마구잡이식 진압과 연행을 몸으로 막고자 길에 누운 시민들을 무참히 밟고 지나가, 현장에 있던 한국 YMCA연맹 사무총장이 골절상을 당하는 등 많은 시민이 다쳤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6월 10일 광화문 네거리를 가로막은 5M높이의 컨테이너 장벽과 매번 집회 때마다 소통을 거부하는 이 정부의 태도를 상징하듯  겹겹이 둘러친 차벽이야 말로 거대한 구조의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경찰의 무차별적인 연행과 폭력진압으로 약 1천5백 명의 연행자와 무려 2천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 건의 고소고발이 있었지만, 지금껏 어느 하나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경찰과 검찰의 폭력시위 주장은 그야말로 도둑이 회초리 드는 격의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촛불운동의 의미, 교훈, 과제는 무엇인가?

조계사에서 108배 하는 박원석 공동상황실장
▲ 수배자 박원석 조계사에서 108배 하는 박원석 공동상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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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운동은 비록 광우병위험 쇠고기의 수입을 막고 재협상을 관철시키지는 못했지만 많은 의미와 교훈 그리고 숙제를 우리 사회에 남겼습니다. 어떤 권력이나 권력자도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거슬러 성공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비록 이명박 정부가 물리력으로 거리의 촛불은 껐을지 모르나,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이미 회복 불가능할 만큼 깨지고 바닥났습니다. 취임 1년도 안되어 20%대에서 올라갈 줄 모르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길고 긴 통치의 출발선에서 이처럼 바닥을 모두 드러낸 대통령과 정부에 무엇이 남아있어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겠습니까?

촛불운동은 우리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정부는 물론 기존의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도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불신이 팽배해 있습니다. 국민들은 믿을 수 없는 그들만의 정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결정의 주체가 될 것을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민주주의 운영의 원리와 체계에 대한 국민의 새로운 요구와 열망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수렴하고 확립할 것인지 도전과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촛불운동 과정에서 확연히 자리 잡은 쌍방향 의사소통의 원리를 국정운영이나 정책결정 과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과거처럼 정부나 권력을 가진 특정세력이 지식과 정보를 독점적으로 전유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일방적인 명령이나 계몽으로는 국민과 소통할 수 없으며, 정부가 마음을 열고 공론의 장에 다가설 때만 비로소 국민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지금처럼 일방통행식의 대국민 관계를 고수한다면 국민의 지지는 더욱 멀어질 것이며, 그 결과는 실패한 정부로 남는 것뿐입니다.

촛불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시장 만능주의와 탐욕스러운 이윤추구에 제동을 걸고 시장독재에 강한 경종을 울렸습니다. 광우병은 초식동물인 소에게, 소에서 추출한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입니다. 광우병위험으로부터 자신의 건강,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들었던 소박한 촛불은 광장과 거리의 투쟁을 거치며 이윤보다 인간이라는 품격있는 깨달음으로 발전되고 승화되었습니다. 또한 광우병에서 시작된 촛불은 교육과 의료, 언론, 불, 전기, 가스 등 사회의 필수적인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촛불운동은 모든 것을 시장과 이윤의 논리에 내 맡기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고 더 평등한 민주주의를 실현해 함께 사는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시대의 과제이며 미래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피켓을 들고 있는 동료 간사
▲ 촛불을 지지합니다 피켓을 들고 있는 동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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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 같은 촛불의 교훈이나 촛불이 남긴 과제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폐쇄적, 독점적, 권위주의적 권력개념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을 장악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적 기본권을 억압하는 각종 악법을 추진하고 권위주의 정치의 도구였던 공안기구들의 권한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어처구니없는 역주행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그 여파로 인한 실물 경제의 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민생의 보호와 안정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는 종부세, 상속세, 법인세 완화 등 1%도 안 되는 재벌과, 부자, 특권층을 위한 감세정책을 펴고 있으며, 경기활성화라는 명분으로 건설자본을 살리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재정을 집중 투입하는 예산안을 편성했습니다.

반면 저소득층과 약자에게는 최저임금을 내리고 비정규직의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칼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이 눈이 높아 청년실업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취업문제로 가슴앓이를 하는 대학생, 청년들의 염장을 지르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살리기'의 방향과 수혜대상이 무엇이며, 누구란 말입니까? 단언컨대 그것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 그리고 중간층을 위한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1% 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부자살리기'에 다름 아닙니다.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신에다 생존의 불안과 고통까지 겹친 지금, 언제 다시 촛불이 거리에 옮겨 붙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만일 다시 한 번 촛불이 거리에 옮겨 붙으면, 그 촛불은 단지 몇몇 정책에 대한 반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민생을 도외시 한 채, 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정책으로 우리 사회를 더 짙은 차별과 양극화의 늪에 몰아넣는 이 정부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이라도 촛불의 교훈을 되새겨 무엇이 국민과 소통하는 길인지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존경하는 방청객 여러분!

지난 촛불운동은 건강과 생명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정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고자 했던 국민의 자구적 실천이었으며 부당한 정책결정과 불의한 권력행사에 대항한 정당한 국민주권의 행사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의 자제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00일이 넘도록 수백만의 군중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불상사가 없었던 것은 그 같은 국민의 평화의지와 노력 그리고 성숙한 민주주의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정당한 목적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진행된 촛불운동을 빈약한 근거와 편협한 논리로 불법, 폭력의 틀에 가두려는 검찰의 공소는 마땅히 기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장시간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12 박원석

촛불원석지기지友와 함께해요.
박원석은

89년도 대학에 입학하여, 학교와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애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차례 옥고도 치렀습니다. 졸업 후 94년 참여연대의 창립멤버가 되어 14년 동안 부패한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의 관점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운동에 매진하였습니다. 08년 5월에는 광우병위험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 활동에 참여, 공동상황실장을 맡았고, 6월말 수배 되었습니다. 같은 해 7월5일부터 조계사 117일 천막농성과 이후 잠행농성 중 체포되어 현재 감옥에서 촛불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기지友는 이런 활동을 합니다

·2008년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밝혔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촛불에 담긴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합니다.
·촛불정신을 훼손하는 부당한 시도에 맞서 촛불투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활동을 합니다.
·양심수 석방을 위한 민가협 목요집회 참석 등 다른 촛불지기와 연대합니다.
·박원석님의 재판, 수형 생활에 필요한 자원활동을 합니다.
·면회를 통해 감옥에 있는 박원석님에게 바깥소식을 전합니다.

○ 후원까페 : '촛불원석지기지友' (http://cafe.daum.net/candl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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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감옥에 있는 박원석 실장으로 부터 부탁받고 '모두진술문'을 올립니다.
저는 박원석 후원회인 '촛불원석지기지友'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참여연대 간사 천웅소입니다.



태그:#광우병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지기지우, #촛불,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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