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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지난 5월 촛불 정국을 촉발시킨 '촛불 소녀'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또 미국발 금융한파가 몰아닥친 가운데 인터넷 아고라 광장에서 맹위를 떨친 '미네르바'를 '올해의 누리꾼'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오마이뉴스>는 지난 14일까지 누리꾼들로부터 추천을 받았고, 편집국 심사를 거쳐 최종 결정했습니다.

'촛불소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와중에 등장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대한 다수 국민들의 평화적 저항을 상징합니다. 또 '얼굴 없는 온라인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네르바'는 정확한 분석력과 날카로운 독설로 현 정부의 무능력한 경제 정책의 정곡을 찔렀습니다. 올해 촛불 소녀와 미네르바의 출현은 인터넷이라는 소통의 광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 공간의 소통엔 해방적 잠재력이 있습니다. 2009년, 인터넷은 한국사회에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던질지 주목됩니다. <편집자말>

지금도 서울 청계광장을 지나면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삶의 어떤 중요한 순간이 그곳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저절로 몸과 마음이 그리 움직인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권의 물줄기를 시원하게 터준 그곳.

 

이 대통령의 향기와 기풍을 느끼기 위해 청계광장을 서성이는 건 아니다. 추억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적힌다. 바야흐로 5월의 봄바람이 불어오던 그때, 권력의 오만함을 꾸짖는 촛불의 물줄기는 그곳에서 시작됐다.

 

봄바람을 탔던 것일까. 아니면 "작은 불씨가 광야를 불태운다"는 작은 진리가 실현된 것뿐일까. 아무도 기획하지 않았지만, 촛불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불길이 됐다. 하지만 불길이 그냥 시작될 리 없다. 역사적 사건은 원인과 배경 없이 시작되지 않는다. 

 

불길이 시작된 그곳에 여중고생이 있었다. 그녀들은 최고 권력자를 향해 "네 마음대로 하라고 국민이 뽑아준 게 아니다"라고 외칠 줄 알았고, "전교조의 사주를 받은 학생들"이라는 말에 "우리의 배후는 바로 당신"이라고 받아칠 줄 알았다. 때로는 "살고 싶다"고 절규했고, 종종 "같이 살자"고 외쳤다.

 

세대를 잇는 노둣돌과 험한 물줄기 위로 다리를 놓은 그녀들

 

말이 진실하고, 행동에 진정성이 있으면 호소력이 생기는 법. 그녀들에게는 우리의 최고 권력자에는 없는 그런 점들이 있었다. 그녀들의 외침은 세대를 잇는 노둣돌이 됐고, 험난한 물줄기를 건너게 해주는 다리가 됐다. 그래서 1만의 촛불이 2만이 됐고, 10만이 100만이 됐다.

 

'명박산성'이 설치돼도 <아침이슬>은 그걸 훌쩍 뛰어넘어 대통령의 귀에 닿았고, 광화문 거리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집단 군무가 펼쳐졌다. 거리와 광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단순한 문구가 새롭게 구현되는 현장으로 보였다.

 

시간은 흘렀다. 5월의 바람은 꽃을 틔우기도 하지만, 꽃잎은 그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법이다. 불길은 꺼지거나 잡혔다. 돌아보면 꿈 같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한판 흥겹게 놀아본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그 거리와 광장에서 우린 어떤 꿈을 꿨던 것일까.

 

불길이 사라진 이후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 너무 팍팍해 지난 시절과 꿈이 더욱 처연하게 눈에 밟힌다.

 

<아침이슬>을 들으며 "뼈저리게 반성했다"던 최고 권력자는 다시 대운하를 만지작거린다. 경제위기가 왔다. "내가 당선되기만 하면 주가가 3000을 간다"던 대통령의 말 대신, 암흑의 시대를 예고하는 '미네르바'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종합부동산세는 간데없고 듣도 보도 못한 '애견세'가 솔솔 피어나온다. 역사교과서는 이념의 전쟁터가 됐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을 보장한 교사는 교단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낙하산 반대", "공정방송 사수"를 외친 YTN 기자들도 거리로 내몰렸다.

 

"어째 MB는 나보다 더해, 나 땐 그래도 1980년대였지, 지금은 21세기잖아!"라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성대 모사한 어떤 개그맨의 일성이 개그로 들리지 않는 역설. 이 역설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떨림은 곧 울림이 될지니... 고맙다, 촛불소녀들

 

진정 우리는 "믿을 자 하나 없는"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것일까. 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기엔 우리가 만들고 쌓아올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정희선(고3·가명)양을 다시 만난 건 지난 17일 밤 명동에서였다. 정양은 옅은 화장에 모자를 쓰고 '쥐잡기 무한도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지난 5·6월 청계광장과 시청 앞 서울광장 등에서 자주 촛불을 들었던 정양은 곧 대학에 들어간다. '소녀'라는 타이틀을 벗고 성인이 되는 것이다.

 

정양은 "땡땡이 치고 참여했던 촛불 집회를 통해 세상이 사람들의 참여로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곧 '88만원세대'가 된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기죽거나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촛불 집회를 경험한 청소년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는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와 <한겨레21>이 지난 6월 실시한 면접조사에서도 나왔다.

 

면접에 참여한 333명의 중고생 중 61%가 "촛불집회 참여 이후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당시 김철규 센터장은 "촛불집회 참여 학생들이 광우병 의제에 대해서 학습도 하고 고민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형성된 사회적 태도와 정치적 지향이 성인이 된 뒤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주목된다"고 밝혔다.

 

또한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청소년모임 Say No'와 '미친교육반대 청소년 인권보장을 위한 청소년연대'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활동가들도 "촛불집회 이후 자신의 인권과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청소년들은 월등히 많아졌다"며 "인터넷을 통한 활발한 정보 취득과 교류도 그런 분위기 조성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또한 광장의 촛불은 꺼졌지만 지역과 YTN 앞의 촛불은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 방송 독립을 위해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행진했던 이들은 지금 도처에 깔려 있다. 지금 명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쥐잡기 무한도전'에는 연일 두 배로 유쾌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500일 넘게 싸웠던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갔다.

 

교사들은 교단에서 쫓겨났지만, 징계의 부당함을 알만큼 머리가 커버린 10대 학생들은 선생님을 보내지 않고 있다. 교육청의 엄포에도 일제고사에서 백지 답안지를 내는 영특함을 보인 것도 그들이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세월은 사람을 허투루 관통시키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린 분명 어제와 다른 존재다. 찾아보면 희망의 증거는 도처에 널렸고, 우리는 여전히 지난 5·6월 광장의 기억을 잊지 않았다.

 

여중고생이 우리들 사이에 놓았던 소통과 이해의 노둣돌은 어디로 사라진 게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진실이 아니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언제든, 그리고 어디서든 우리는 그 노둣돌을 밟아 서로 다가갈 수 있다.

 

그녀들이 없었다면, 2008년은 무척 팍팍했을 것이고 2009년의 희망을 모색해야 하는 이 겨울은 더욱 추웠을 것이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았지만, 더없이 큰 위안과 희망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져준 그녀들.

 

그 '촛불소녀'들에게 <오마이뉴스>는 '2008년 올해의 인물'이라는 명예를 헌정한다. "새로운 민주주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담론은 잠시 차치해 두자. 그냥 덕분에 잘 놀았고, 진하고 징한 감동을 가슴에 새겼다. 사람은 때로 그런 기억만으로도 한 세월을 견딘다.

 

지금도 청계광장과 광화문을 지나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살짝 가슴이 떨린다. 그 떨림은 훗날 큰 울림이 될 것이다. 촛불소녀들은 우리에게 그걸 알려줬다. 고맙다, 촛불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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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소녀, #촛불집회, #명박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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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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