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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를 앞둔 우리 집 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일제고사 대신 현장학습 권유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을 학교에서 쫓아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말도 안 되지."

"그렇지, 말도 안 되지 잉."

 

"그런 게 어딨어, 성추행하고, 뇌물 쓰고 애들 폭행하는 선생님들도 멀쩡하게 학교에 남아 있다는디, 나쁜 놈들이지."

"너 그런 거 어떻게 알어?"

"인터넷 보면 다 나오잖아."

 

요즘 아이들, 어른들보다 더 잘 압니다

 

요즘 아이들은 알 거 다 압니다. 다 보고 듣습니다. 어른들보다 눈빛이 맑고 어른들보다 손놀림이 더 빠릅니다. 인터넷 검색을 더 빠르게 더 많이 검색해서 봅니다. 세상을 넓게 봅니다.

 

"선생님이 니들 편에 서서 좀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겠다고 한 건데 잉…."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편에 서서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보는 시험에도 힘들어하는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좀 더 '빡세게' 줄 세우고 경쟁시키겠다는 일제고사 따위를 강요한다면 당연히 맞서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선생님이라고 봅니다.

 

그런 선생님들을 학교에서 쫓아내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까지 주눅들게 만들어 아예 참교육을 원천봉쇄 하려는 이 추악한 교육 현실 속에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니들 일제고사 언제 보냐?"

"다음 주에(12월 23일)."

"아빠 생각에, 그게 안 봤으면 좋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파면을 당한 그 선생님들을 위해서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너희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해놓고도 처참하게 당하고 있는데, 가만 있으면 안 되잖아 그렇지? 그 선생님들이 막힌 교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니 눈물이 나오더라."

 

그날 저녁, 학교에서 돌아온 녀석이 엄마에게 일제고사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선생님한티 말했는데, 내 소신대로 하랬어."

"다른 애들은?"

"다른 애들?"

"너처럼 일제고사 거부하겠다는 애들이 있데?"

"몰라, 없는 거 같은디."

"그럼 다들 일제고사 보는 게 좋데?"

"아니, 시험 보는 거 좋아하는 애들이 어딨어?”

"그럼 왜 보는겨?"

"학교에서 보라니께 보는 거지 뭐."

 

나는 녀석에게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시험을 보고 안 보고의 문제가 아님'을  설명해 줬습니다. 참교육을 실천하다가 학교에서 파면을 당한 선생님들에 대한 기본 예의임을 강조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나섰으니 이제 학부모와 학생들이 나서야 할 것입니다. 앞서서 힘들게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할망정 뒤따르지 않는다면 누가 바른 일에 앞장설 수 있겠습니까?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해요,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까요"

 

"전화 받어 봐."

"누군디?"

"아무개 선생님."

 

일제고사를 거부했다가 우리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아내가 잘 아는 아무개 선생에게 전화 문의를 했던 모양입니다. 아무개 선생은 참교육을 실천하고자 무지 애를 쓰고 있습니다. 단 한 번도 매를 대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참한 선생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해요,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까요, 혼자 거부한다면 녀석이 힘들지 몰라요."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때 학생운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으로 두 차례나 옥살이를 했던 아무개 선생조차 우리 아이의 일제고사 거부에 대해 걱정이 드는 모양입니다.

 

"녀석이 일제고사 안 봐도 되느냐구 물어보니까, 어떤 선생님이 소신껏 하라고 했다는디요?"

"만약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그 대신 현장학습을 가겠다고 신청하면 그걸 받아준 담임선생님이 피해를 볼 지 몰라요."

"설마 그랬다고 담임 선생님이 불이익을 당하겠어요?"

"이번 일을 보면 알잖아요, 저들이 어떤 짓을 할지 몰라요,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들이니까요."

"담임선생님이 피해 볼 수 있다믄 그냥 결석처리 하쥬, 뭐."

"그래도 되긴 하지만 공연히 무단결석 처리 당할 이유가 없죠.”

"그까짓 거, 무단 결석 좀 하믄 어떻습니까?"

 

그놈의 일제고사 때문에 해직당하는 교사도 있는데 학교 한 번 빠지는 게 대수이겠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여전히 걱정이 앞서는 모양입니다. 결석하는 건 큰 문제가 없는데 그 이후가 힘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재시험을 보게 하는 선생도 있을지 몰라요."

"재시험은 왜요?"

"아주 일부긴 하지만 그런 선생들이 더러 있어요, 어떤 못된 선생은 수업시간에 일제고사 거부했다고 모욕감을 줄지도 모릅니다. '니가 그렇게 잘 났어, 니가 뭐가 그렇게 잘 나서 시험을 거부해'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 선생이 있다면 아이들 가르칠 자격이 없는 거죠. 아니, 일제고사를 거부하겠다는 것은 선생님들에게 좀 더 바른 교육 하시라고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건데, 그런 선생들도 다 있단 말입니까?"

"그럼요, 사고치는 애들이긴 하지만 그 애들 교무실에 불러 놓고 손모가지를 잘라 버리니 마니 하는 선생도 있으니까요."

"그런 선생들이야 말로 학교에서 나가야 하는디, 진짜 참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선생님들이 파면을 당하고 있으니... 만약 우리 애한티 그런 식으로 모욕감을 주는 선생이 있다면 가만 못 있쥬."

 

"그런 모욕감을 준 선생이 자신이 그랬다고 말하겠어요."

"교실에 다른 애들이 있잖유."

"다른 애들이 증언하겠다고 나서겠어요? 쉽지 않아요. 애들 위해 힘쓰는 좋은 선생들은 옷 벗고 나가야 하고 그런 선생 같지 않은 사람들은 교감 승진하겠다고 난리치고 있으니..." 

"아, 근디, 이런 얘길 우리 집 사람한티 했나요?"

 

아내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아내를 설득하는 게 문제였습니다. 아니, 아내가 이런 사실을 녀석에 말했다면 그게 더 큰 문제였습니다. 생각대로 아내는 불안해했고 아무개 선생이 말한 얘기를 녀석에게 해줬다고 합니다. 그 말을 전해들은 녀석 역시 불안한 눈빛이었습니다.

 

집안에 갑자기 침묵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습니다. '교육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마라,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 만약 국가의 방침에 한 치라도 어긋나는 교육적 결단을 내렸다가는 가차 없이 사살한다'라는 식의 계엄령이 선포된 것처럼 냉기가 흘렸습니다.

 

집안에 흐른 냉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든 이 어지러운 난국, 아니 집안 분위기를 수습해야 했습니다. 그날 저녁은 그냥 실실 눈치만 보다가 보냈고 다음날 새벽, 녀석의 등굣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버스 타는 길에서 늘 만나는 계룡산. 늘 그랬듯이 눈앞에 의연하게 펼쳐진 계룡산 뒤편에서 조금씩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청산처럼 의연하게 허공처럼 여유롭게' 일단 녀석을 불안감에서 해방 시켜야 했습니다.

 

나는 녀석이 이 어지러운 난국을 당당하게 헤쳐 나가리라 믿었습니다. 얼마 전 단체 매질을 가하겠다는 선생에게 단체 매질의 부당함을 당당하게 말했던 녀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선생에게 단체로 맞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 당했고 결국 허벅지에 피멍자국을 내고 왔지만 말입니다.

 

"엄마한티 들었지? 일제고사를 거부하게 되면 만에 하나 학교에서 아주 못된 선생님한티 모욕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게 될지도 몰라, 그걸 감당해 낼 자신 있어?"

"글쎄, 그런 얘기 들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어떤 선생님이 너한티 소신껏 결정하라고 했다며."

"그러긴 했는디."

"이것저것 다 떠나서 일제고사 보는 건 어뗘?"

"당연히 싫지."

"싫으면 안 보면 되잖어, 파면을 당한 선생님들은 또 얼마나 억울하겠어, 어쨌든 니가 결정할 일여, 아빠는 니가 일제 고사를 거부하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니가 감당하기 힘들다면 거부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무엇보다 니 생각이 중요하니까."

"알았어, 좀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할게."

"그려, 아빠는 니가 부당한 일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길 바래."

 

녀석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부당한 일과 마주칠 것입니다. 녀석이 그 부당한 일에 맞서 얼마나 잘 이겨내는가에 따라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었습니다. 녀석을 태우고 학교로 달려가는 버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스스로 되물었습니다.

 

'이 추악한 현실에서 나는 얼마나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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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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