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극심한 경기 침체로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가 영세민 생활안정 대책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기부금 축소와 제도 미비 탓에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들이 어려워지면서 영세민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몇 차례에 걸쳐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실태와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지난 주말 한나라당이 정부의 내년 수정예산안과 13개 감세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야당에서는 사회기반시설 투자 예산이 올해보다 26% 늘어나는 데 비해 서민지원 예산 증액은 10%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가운데 작년보다 무려 6.5배 늘어난 130억원 규모의 서민지원 예산이 있다. 바로 보건복지가족부의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 지원예산이다. 하지만 예산심의 과정에서 이 예산을 언급한 의원·언론은 없었다. 관심조차 없었다는 뜻이다.

 

단 한 명의 의원만은 예외다. 강명순 한나라당 의원의 노력이 없었다면 마이크로크레디트 관련 예산의 행방은 아무도 몰랐을 터다. 예산 증액에 대해 그는 "이제야 국가가 정신을 차렸다"며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강 의원 얼굴에 나타난 뿌듯함은 비단 의정활동 경험이 6개월에 불과한 초선의원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엔 36년 빈민운동가로서, 10년 전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한국에 도입한 활동가로서 느끼는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예산안이 통과되기 직전인 지난 11일 오전 강 의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강 의원을 만난 이유는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대한 인식 부족과 함께 기금·운영비 부족, 미흡한 제도적 장치로 인해 아직 한국 사회에 자리매김하지 못한 마이크로크레디트의 과거·현재·미래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한국, 방글라데시보다 못하다"

 

복지부에서 마이크로크레지트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하긴 했지만 이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은 아직 미흡하다고 강 의원은 말했다. 그는 "대출 이자를 20%로 올려야 한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또한 최빈국인 방글라데시와 우리나라 상황은 많이 다르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글라데시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1976년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엔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이러한 생각을 한 사람이 없나?"

 

강 의원은 "마이크로크레디트를 단순히 저소득층에 대한 대출로 이해하면 안 된다"며 "정말 적은 돈을 빌려 조금씩 아주 느린 속도로 돈을 갚아나가면서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심리적·정서적인 자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걸인도 기업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유누스 총재의 철학을 전했다. 다음은 강 의원이 강조한 2006년 10월 19일 유누스 총재의 서울평화상 수상소감문의 일부다. 

 

"신용 대출은 인권이다. 8만명의 걸인들에게 통상 10달러씩 대출해줬다. 그들은 구걸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물건을 파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들이 구걸을 중단한다면 그들도 자신들의 능력으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마이크로크레디트로 빈곤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강 의원은 공동체를 중시하고 민간·관·기업 3자가 역할을 분담하는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디트를 강조하기도 했다.

 

다음은 강명순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공무원의 모욕으로 시작된 한국의 마이크로크레디트

 

- 강 의원은 한국에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처음으로 도입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1972년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1990년부터는 문맹인 빈민여성들을 교육시키고 자활의지를 기르는 사업을 했다. 하지만 빈곤퇴치를 위해서는 경제적인 자활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IMF 사태' 직후인 1999년 많은 곳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돈을 지원해준다는 기관이 전혀 없었다. 그때 그라민은행과 예술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을 했다.

 

당시 그라민트러스트(그라민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운동을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한 기구)의 라티피 총재가 시티그룹 지원 하에 한국 파트너를 찾고 있었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느 날 시티그룹 관계자가 우연히 제가 나온 방송을 보면서 연결됐다. 그렇게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알게 됐고, 그라민은행의 초청을 받아 방글라데시로 갔다."

 

- 그라민은행에서 받은 교육은 어땠나?

"방글라데시는 거지들이 바글바글하고 너무 가난했다.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라한테 도움을 받는다는 게 너무 창피하게 느껴졌다. 또 그라민은행이 초창기 정신을 잃고, 은행처럼 수신업무를 강화하는 데 실망했다. 초창기엔 사람이 적기 때문에 한두 명이 귀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지원할 수 있었지만, 조직이 거대화되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행히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오해가 풀렸다."

 

- 한국에서 생소한 마이크로크레디트를 도입했으니, 쉽지 않았겠다.

"사람들이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뭔지도 몰랐다. 특히 공무원들은 그라민은행이 있는 방글라데시와 한국 상황은 맞지 않다며 헛된 자존심을 세웠다. 법인 하나 설립하는 데 3년 넘게 걸렸고, 그 과정에서 공무원으로부터 '어떻게 너희들을 믿을 수 있느냐?'며 모멸적인 언사를 들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도 공무원들은 가난한 사람을 믿을 수 없다며,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이 돈 떼먹지 못하게 할까만 생각했다."

 

경제적 지원보다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자활이 중요

 

- 마이크로크레디트가 한국에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마이크로크레디트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자리매김 됐다고 보나?

"이젠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 10개다.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크레디트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국회의원들도 단순히 대출의 관점에서만 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뿐만 아니라 지식이나 '빽'이 많아야 성공한다. 가난한 사람은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이 짧다. 실패했던 경험 탓에 용기도 없다. 경제적 지원만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성공할 수 없고,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 그렇다면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측면을 바라봐야 하는가?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돈 문제가 아니다. 정말 적은 돈을 빌려 조금씩 아주 느린 속도로 돈을 갚아나가면서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심리적·정서적인 자활이 중요하다. 형제도 사채업자도 외면한 빈민들에겐 힘들어도 의지할 데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100만원만 지원받아도 '사회 전체가 외면하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줬다'면서 운다.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다. 100만원에 호떡, 붕어빵 장사를 해서 '자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심리적 치유가 없다면 수천만원의 지원금으로도 자활할 수 없다."

 

- 국회의원이 된 지 반년이 지났다. 국회의원으로서 보는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어떤 모습인가?

"'국회의원으로서 권력 맛을 보니까 어떠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맛볼 새가 없다. 운동할 때는 내 일만 생각하면 됐는데 국회의원이 되니 정말 일이 많아졌다. 한나라당 안 야당으로서 동료의원들에게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전파하는 데도 힘을 썼다. 국정감사를 하면서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징그럽게' 했다. 빈곤 퇴치를 위해 조직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위해 제도권이 어떻게 변해야하는지 느꼈다. 정말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디트 대안 마련해야"

 

- 최근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대한 법제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대출 회수에 대한 걱정이 많은 정부에서는 대출 이자를 20%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부는 마이크로크레디트를 대출 사업으로만 본다. 이자가 20%면 누가 빌려 쓰느냐.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고리채 장사를 하는 거다. 은행에는 몇 천억, 몇 조원씩 대주고 있지 않나? 가난한 사람들은 돈 빌려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돈을 안 갚을 수가 없다. (※ 국내 대표적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인 사회연대은행의 대출 회수율은 85%에 이른다.)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잘되기 위해서는 중앙·지방 공무원이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대해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단순히 저소득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으로만 생각하면 나중에 실적만 내고 끝낸다. 가난한 사람들이 정치·사회·문화·교육·정신·영적인 빈곤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마이크로크레디트를 빈곤층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으로서 생각해야 한다."

 

- 빈곤 계층의 경제적·심리적·정신적 자활을 도와줄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들이 운영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원대상자를 사전·사후관리 하기 위한 실무자 인건비 지원은 거의 없다. 정말 내버려뒀다. 또한 돈을 대출해주고 관리하는 데 운영비가 없어 전문가를 쓰지도 못한다. 실무자들의 월급이 밀리는 등 사회복지시설과 마찬가지로 인건비 지원에 인색하다. (※ 현장에서는 운영비 부족으로 인한 활동가 수 부족, 업무 과다 등으로 더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들의 희생을 밟고 서 있는 거다. 이럴 거면 공무원들도 월급 받지 말고 헌신 봉사해야 한다. 국가가 빈곤문제를 해결 못하고 민간에 이를 떠넘기면서 '너희들이 알아서 모금해서 해결하라'는 건 국가의 직무유기다."

 

- 대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기관들이 수신기능을 갖춘 대안은행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가차원이든 민간 기관 차원이든 수신업무를 하는 은행사업을 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지만, 국가차원에서 큰 은행에 돈을 수혈해주는 것처럼 사회적 기업으로서 민간은행에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정부의 지원이 많아져서 민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점이 우려된다."

 

- 마이크로크레디트가 한국에서 뿌리내리기 위해선 어떤 점이 강화되어야 하는가?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공동체를 강조하는 길이다. 한국에는 두레처럼 어려울 때 상부상조하는 좋은 제도들이 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로 다섯 명 정도로 이뤄진 소그룹들을 지원해주고, 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돕고 상부상조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간·관·기업 주도형이 아닌 3자가 모여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에서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율적인 노력을 해야 하고, 기업에서는 사회적 책임성을 담은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서 민간의 역량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입법부 모두 기금 조성, 체계적인 법제화에 크게 노력해야 한다."

 

"빈곤은 가진 자들이 나누지 않았기 때문... 빈곤 없는 세상 가능하다"

 

- 금융위기 속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늘고 있지만, 창업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점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앞으로 'IMF 사태' 때보다 더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충격이 커진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마이크로크레디트 예산으로 매년 20억원을 지원하다가 내년엔 130억원을 책정했다. 복지부에서도 경제위기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국가가 정신을 차렸다는 게 굉장히 좋은 징조다.

 

마이크로크레디트로 지원받은 사람의 대부분은 요식업 창업이다. 이는 실패의 공간이동일 뿐이다. 예전에 지원받은 곳은 콩, 고추 농사를 지으면서 된장과 고추장을 팔았다. 임대아파트를 고쳐주는 사업도 유용하다. 기획창업이나 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 강 의원이 생각하고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 있다면 설명해 달라.

"금융위기로 은행에서 나온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적 기업이 (은행의 VIP룸처럼) 은행의 한 부분에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코너를 만들어 여수신 업무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세제혜택을 줘서 은행들이 사회적 기업을 위해 공간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들은 지원대상자에 대한 사전사후관리를 하고, 그들이 지치지 않도록 심리적·정서적 자활을 돕는다. 중소기업중앙회 등에서 지원대상자들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입법부는 주체들이 각자 일을 잘할 수 있게 법을 만들어야 한다."

 

- 강 의원은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해 어떤 미래를 꿈꾸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할 때, 그들을 확실하게 긍정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희망을 공유할 때만이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고 이를 나눠먹을 수 있다. 유누스 박사는 빈민들의 재활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빈곤이 발생했느냐고 물었다. 빈곤은 빈민들이 선택한 게 아니다. 빈곤은 대물림됐고, 가진 자들이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 있는 사람, 정치가, 경제학자, 은행, 배운 사람들이 빈곤 문제를 푸는 열쇠를 갖고 있다. 돈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 체계적으로 나누는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해 빈곤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최근 주요기사]
☞ [현장] 서울시교육청 앞 1천여 촛불... 징계교사, '출근투쟁' 선언
☞ ['널 기다릴께 무한도전x2' 9일째] 256명 미션도 성공
☞ '낙동강 살리기' 설문조사 여론조작 의혹
☞ '벌금 300만원 구형' 강기갑 "모범선거 하려 했지만"
☞ [엄지뉴스] 명동 한복판에 웬 경찰이 쫙 깔렸네
☞ [E노트] 대박 동영상... "미쳤어, MB가 미쳤어!"


태그:#마이크로크레디트, #마이크로크레딧, #강명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