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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좌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근·현대사 교과서와 관련하여 11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에서 열린 '균형잡힌 근현대사 교과서 선정 관련 고등학교장 연수'에 참석한 학교장들이 연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최근 '좌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근·현대사 교과서와 관련하여 11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에서 열린 '균형잡힌 근현대사 교과서 선정 관련 고등학교장 연수'에 참석한 학교장들이 연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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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일) 아침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근현대사 교과서 교체 안건이 토의되고, 통과되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내년부터 내가 선택하지 않은 교과서로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10일 아침 기습적으로 열린 학교운영위원회

학운위가 오늘 열린다 내일 열린다 하는 소문이 계속 있었습니다. 학운위 교원위원인 선생님들께 여러 번 여쭈어 보았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혹시나 하는 희망도 가져봤습니다.

오늘 2교시. 우연히 우리 학교 역사교사 6명 모두 수업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전 10시에 3학년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이 수능성적표를 나누어주게 되어서 나와 또 다른 3학년 담당 근현대사 선생님은 교무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급하게 어떤 선생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지금 학운위가 열리는 것 같다고.

11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에서 열린 '균형잡힌 근현대사 교과서 선정 관련 고등학교장 연수'에 참석한 학교장들이 연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11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에서 열린 '균형잡힌 근현대사 교과서 선정 관련 고등학교장 연수'에 참석한 학교장들이 연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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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실로 달려가보니 학운위가 열리고 있었고, "금성출판사 교과서…"라는 말씀을 하고 계셨었습니다. 근현대사 교과서를 선정하는 회의 자리에 역사 교사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급히 들어가서 방청하고 설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교감 선생님께서 말리셨지만, 학운위 위원장님께 발언 기회를 신청하고 설명을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왜 이 교과서를 선택하고 쓰고 있는지 설명드렸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싸늘했습니다. 이제 표결을 해야 하니 나가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말을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너무나 말을 못해서 이렇게 된 것만 같아서 눈물이 났습니다.

학운위를 설득할 생각을 했던 것이 착각이었나 봅니다. 학부모로 구성된 학운위 위원들 처지에서는 일개 교사도 아닌 교장 선생님의 방침에 반기를 드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 학교에 다니는 나의 아이에게 혹시나 불이익이 갈까 걱정을 하시나 봅니다. 교장 선생님들을 비민주적인 분들이라고 오해하시는 걸까요?

다음은 우리 차례다

금성출판사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금성출판사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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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우리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어제 그제 들려오는 부천시 여러 고등학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께서 전교조 지부에 학운위 파행사례로 접수하고 경기도교육청에도 지도를 요청하겠다고 흥분하셨습니다.

교원위원인 선생님들은 오늘 아침 출근하셨을 때도 모르고 계시다가 10시가 되어 갑자기 학운위 회의에 오라는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학운위는 가정통신문, 홈페이지 등에 회의가 열린다고 일주일 전쯤 미리 공지를 하고 열려야 하는데 규정을 어겼습니다. 물론 오늘 아침 교육행정실 게시판에 공지를 올리기는 했더군요. 오늘 회의 여는데 오늘 말입니다.

긴급한 상황이면 학운위를 급히 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스컴을 타고 이슈가 되어서 전국이 다 알고 있는 사안이고, 우리 역사 교사들에게도 교과협의회를 하라고 하신 사안이므로 긴급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물론 긴급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오늘(12월 10일)까지가 교체주문 마감일이니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경기도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작은 학교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이니 그냥 읽고 넘기시겠지요. 하지만 지금 저는 마르틴 니묄러의 글이 떠오릅니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 어떤 엄청난 사건도 갑자기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작고 사소한 일들이 모이고 쌓여서 큰 일이 되고, 거대한 불의가 자행됩니다. 사소한 교과서 교체 소동이니 그냥 넘기면 다음엔 어떻게 될까요? 차근차근 진행되어서 결국에는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을까요?

저의 이 주장이 그저 논리의 비약이나 기우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두렵게도 사회 모든 분야에서 비상식, 비논리, 법절차 무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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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근현대사교과서, #부천,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학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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