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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역사교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40개 역사ㆍ교육단체로 구성된 '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대표들이 9일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의 교육과학기술부를 항의방문해서 '부당한 역사교과서 수정지시'와 '채택 변경지시'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40개 역사ㆍ교육단체로 구성된 '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대표들이 9일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의 교육과학기술부를 항의방문해서 '부당한 역사교과서 수정지시'와 '채택 변경지시'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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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 아닌가? 수정 권리는 교과서 저자에게 있고, 교사에게는 자신이 가르칠 교과서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마음대로 교과서를 수정하는) 이 상황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절차인가. 이게 과연 민주주의인지 판단해 보라."

차마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 김한종 교원대 교수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빛은 흔들렸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라는 한 기자의 물음에 그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국가(교육과학기술부)가 직접 역사교과서 수정 내용과 항목을 정하는 요즘. 결국 국가의 압력으로 금성출판사가 저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밝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민주적 절차는 생략되고 원칙이 무시된 상황. 이런 상황은 그동안 1300여 역사교사의 시국선언과 670여 역사학자들의 항의, 그리고 역사전공 대학원생들의 반발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저자 동의 없이 교과서 내용 바꾸다니, 민주주의 사회 맞나"

그렇다면 역사학계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면 지금의 "말도 안 되는 상항"은 달라질까? 답은 알 수 없지만,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는 학계·교육계·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역사교과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금성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중학교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는 필자 9명은 금성출판사에 보내는 공개질의서를 통해  "저자와 동의 없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작업을 철회하라"며 "오는 17일까지 이에 대한 답신이 없으면, 집필진의 저작권 보호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집필 작업을 중단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역사학계, 교육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는 현 상황은 교과서 문제를 넘어선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고, 차마 그럴 수 없는 일이 사실이 되고 있다"며 "교과부가 출판사 팔을 비틀어서 내용을 수정하게 만들고, 시도교육감은 경주하듯이 학교장을 종용해 역사교과서를 교체하게 만드는 지금의 상황은 변칙과 반칙의 이중주"라고 개탄했다.

이어 윤 회장은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가장 부끄럽다"며 아래와 같이 교과부, 교육청, 학교장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학교에 엄연히 수십 년 동안 역사를 전공하고 가르친 교사가 있는데, 두 시간 교육 받은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 특강을 맡길 수 있나. 무엇보다 교육계의 어른이라고 봤던 교과부, 교육청, 학교장들이 무수한 반칙을 하면서 스스로 정한 규칙을 어기고 있다. 그렇게 교육자의 모습을 포기하면서 어떻게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가지라고 할 수 있나."

▲ "이게 과연 민주주의?" "교과서 재선정 성과 있다"
ⓒ 김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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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발전, 독재자들의 업적으로 미화할 텐가?"

또 4·19 혁명을 '데모'로 폄하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교과부 제작의 DVD 학습자료 <기적의 역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국가는 지금 자신들은 공정한 역사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는데, DVD 내용을 보면 우리 사회가 피땀으로 이룩한 발전의 성과를 일부 독재자의 업적으로만 미화하고 있다"며 "결국 그 편향된 내용으로 한국 교육을 대체하겠다는 의도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주 교수는 "지금 일본 등 동북아에서는 역사전쟁이 벌이지고 있는데, 정부는 그에 대해서는 무능하면서 왜 '역사내전'에만 힘을 쏟느냐"며 "오히려 정부는 역사 전쟁에 나서야 할 교수들을 좌편향으로 몰아가고 있어 학자로서 회의감이 든다"고 밝혔다.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4·19 혁명은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인데, 이걸 모독하고 폄하하는 건 헌법 정신을 모독하는 반역행위"라며 "4·19 혁명은 우리 민주주의의 뿌리인데, 이걸 일개 데모로 표현하는 건 이명박 정부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천박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교과부, 역사교과서 논란 출판사와 저자 싸움으로 몰고가나

또 이날 금성출판사가 발행한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 저자인 김한종 교수는 출판사의 일방적 내용 수정에 맞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문제만은 아니다.

교과서 수정 논란이 김 교수와 금성출판사가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면, 가장 큰 이득은 결국 이제까지 교과서 논란을 주도한 교과부가 보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렇다.  

김 교수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출판사를 상대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만약 법원이 김 교수의 손을 들어주고, 책이 출판이 금지되면? 교과부가 눈엣가시로 여겨온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는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게 된다.

결국 교과부는 출판사와 저자의 싸움으로 몰아간 뒤 부담스런 교과서 논란에서 슬쩍 빠지고, 자신들은 '좌편향' 교과서 제거라는 열매를 챙기는, 말 그대로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김 교수는 "누구를 상대로 어떤 소송을 낼지 법 전문가와 심각하게 상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와 김한종 교수 등은 항의 서한을 교과부에 전달했다. 

한편 이날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사립중고교 교장회에 참석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과 역사관을 길러주는 역사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근현대사 교과서 선정문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특히 사학에서 협조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자리를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학계, 교육계, 시민사회단체의 공동 기자회견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열렸다.
 역사교과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학계, 교육계, 시민사회단체의 공동 기자회견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열렸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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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역사교과서, #김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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