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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심한 경기 침체로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가 영세민 생활안정 대책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기부금 축소와 제도 미비 탓에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들이 어려워지면서 영세민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몇 차례에 걸쳐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실태와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불황 속에서 희망을 키워가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지원대상자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편집자말]
서민층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대표적인 곳인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을 받은 제윤도 한아름광고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사무실에서 학원에서 주문한 책자 편집작업을 하고 있다.
 서민층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대표적인 곳인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을 받은 제윤도 한아름광고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사무실에서 학원에서 주문한 책자 편집작업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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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구제금융 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는 2008년 겨울, 구조조정에 대한 직장인들의 두려움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의 절망이 넘쳐나고 있다. 무엇보다 "돈의 씨가 말랐다"는 자영업자들의 아우성이 들끓고 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사장님'들이 있다. 이들 역시 다른 자영업자들처럼 작은 가게 하나로 경기 한파와 맞닥뜨렸다. 수천만원의 빚이나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어쩌면 이번 겨울은 평범한 이들의 겨울보다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올 터다. 

하지만 이 '사장님'들은 "그래도 희망이 절망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과연 무엇이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을까? 그것은 바로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다.

대표적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인 사회연대은행, 신나는 조합 등에서는 영세민이나 저소득 소외계층에게 보통 연 2%의 저리로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창업지원금은 2000만원(최대 3000만원)으로 겉보기엔 가게를 창업하기에 부족한 금액일 수 있다.

그럼에도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이용한 사람들은 대부분 홀로서기에 성공해 희망을 나누고 있다. 8일 만난 제윤도(53)·강내형(42) 대표의 사연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말보다  더 큰 힘으로 다가올 것이다.

노트북 하나로 시작한 사업, 대출 자금이 필요했는데


"오타가 났네요. '국산'이라는 글자만 빼달라고 했는데, 메뉴 이름까지 다 뺐네요."


이날 오전 10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아름 광고 2층 사무실에서 만난 제윤도 대표는 기자에게 얼마 전 주문받은 식당 차림표를 가리키며 껄껄 웃었다. 경기 불황에 조그마한 실수가 짜증을 부를 만하지만 그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지하 출력실로 내려갔다.

지하 출력실은 냉기가 돌았다. 최근 주문이 많이 줄어 실사출력기를 사용하는 빈도가 줄어든 탓이다. 작업한 인쇄물이 쌓여있어야 할 선반은 텅 비어있었다. 33㎡(10평) 남짓한 사무실에도 경기 한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비닐에 쌓인 채 한쪽 벽면에 걸린 코트가 눈에 띄었다.

제 대표는 코트를 가리키며 "실사 출력을 주문한 업체가 폐업해 돈 대신 코트를 가져왔는데, 지인들에게 팔고, 아내에게 몇 개 갖다 주니 6개가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상태가 매우 좋다"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여유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경기 한파에 대한 걱정을 찾긴 쉽지 않았다. 그의 웃음 뒤에 긴 인고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입을 열기까진 알 수 없었다. 제 대표의 이야기는 'IMF' 직격탄을 맞아 횟집을 처분한 지난 1999년으로 되돌아간다.

제윤도 대표와 부인이 강서구 등촌동의 한 건물 지하에 마련된 '한아름광고' 작업실에서 식당 메뉴판을 실사출력기로 인쇄하고 있다.
 제윤도 대표와 부인이 강서구 등촌동의 한 건물 지하에 마련된 '한아름광고' 작업실에서 식당 메뉴판을 실사출력기로 인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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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퀵서비스 배달업을 하던 제 대표는 교통사고가 나서 무릎 연골이 완전히 파열됐다.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해진 그는 한 시민단체에서 웹디자인 교육을 받은 후 2002년 서울 강서 등촌자활후견기관의 자활프로그램을 신청해 광고기획사를 공동 창업하게 됐다. 하지만 결과는 천만원의 빚뿐이었다.

제 대표는 2004년 노트북 하나 들고 다시 광고기획업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임대 아파트 베란다가 작업 공간이었다. 3년간의 노력 끝에 사무실이 필요할 정도로 일이 많아졌지만, 신용불량자에다가 담보가 없는 그에게 대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회에 대한 원망이 희망으로!


"사채도 사치였던 제게 사회연대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생명줄이었다."


제 대표는 사회연대은행의 'KB기금 창원지원사업'을 통해 2000만원을 지원받았던 2007년 6월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당시 그의 형이 빌려준 돈과 합쳐 등촌동에서 보증금 1500만원·월세 65만원·권리금1100만원의 사무실을 얻고 1500만원짜리 실사출력기를 샀다.

그의 인생이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는 "처음엔 아내와 함께 일해서 월매출 600만원·순이익 300만원을 올리면서도 저축 한 푼 못하며 근근이 살았다"며 "하지만 지난 10월 18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말했다.

11월엔 경기 한파로 매출액이 1200만원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처음 사무실을 열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홀로서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사회연대은행이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매달 46만원씩 사회연대은행에 상환하고 있다. 돈이 없더라도 이 돈만큼은 꼭 갚고 있다. 내가 상환하는 돈으로 다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되면 사회연대은행에 많은 돈을 기부하고 싶다. 예전에 열심히 살아도 잘 살 수 없고 '강부자'만 잘사는 사회에 대해 정말 많이 원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이크로크레디트로 도움을 받게 돼 희망을 가지게 됐다. 정말 고맙다."

"소액 창업, 성실함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8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강화식당의 강내형 대표가 사회연대은행의 '신한지주 부부 창업지원사업' 약정서를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8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강화식당의 강내형 대표가 사회연대은행의 '신한지주 부부 창업지원사업' 약정서를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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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대은행은 한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이날 오후 만난 강내형 강화식당 대표는 2007년 1월과 2008년 11월 두 차례에 걸쳐 사회연대은행의 '신한지주 부부 창업지원사업'의 자금지원을 받아 새 삶을 살게 됐다. 밴댕이·병어 요리를 파는 그의 식당은 작년에 비해 30%의 매출 신장을 이뤄 최근 월 17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극심한 불황으로 매출이 작년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이 지역 50곳의 가게 중 손가락을 꼽을 만큼 잘되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4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지금의 가게를 차리기까지 1995년부터 강원도 속초, 충청남도 공주 등 전국에서 식당업을 하면서 대출받은 수천만원의 빚도 대부분 갚았다.

그는 가게가 자리 잡기까지 사회연대은행의 RM(Relationship Manager·사후관리자)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50쪽에 이르는 사업계획서를 내보이며 "RM들이 정말 전문적으로 창업지원을 도와줬다"며 "바쁠 땐 가게 계산대를 봐주는 등 인간적인 관계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수차례의 음식점 창업과 처분을 반복한 그는 "이젠 가게 모습만 봐도 저 가게가 성공할지, 못할지 알 수 있다"며 "실패라는 인생의 비싼 수업료로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많은 예비 창업자를 위해 성공 비결을 귀띔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성실함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제일 중요한 건 그 분야의 전문가,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있다고 해서 바로 창업을 하지 말고, 설거지라도 해보면서 현실이 어떤지 깨달아야 한다. 또 잘되는 가게에 수백 번 가서 주인의 습관·행동양식·비법 등을 배워야 한다. 돈을 쉽게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강 대표는 "그 다음으로 시장조사가 중요하다"며 "소액자본으로는 좋은 입지조건을 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대신 객관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수백 번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상권 정보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8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강화식당의 강내형 대표가 야채를 다듬고 있다.
 8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강화식당의 강내형 대표가 야채를 다듬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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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고객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좋은 재료를 써야 자신감이 생긴다"며 "당장 힘들다고 안 좋은 재료를 쓰면 오래 못 간다, 가격이 부담되지만 좋은 재료를 쓰면 고객들이 그 가치를 알게 되고, 입소문이 나 새 고객이 유입된다"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이날 만난 제윤도(53)·강내형(42) 대표는 사회연대은행의 대출재원이 늘어나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제 대표는 "다른 창업대출기관에는 접근하기 힘들다"면서 "사회연대은행은 준비만 돼있으면 대출을 해준다,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도 마찬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사회연대은행의 자금 지원을 받고 '정말 살 만한 세상이구나'하는 희망을 느꼈다. 최근 실업으로 젊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있다는 것을 알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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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이크로크레디트, #사회연대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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