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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에서 나왔지만 해는 아직 멀쩡, 송악산 쪽으로 차를 몰았다. 흘낏 운전하는 새신랑을 쳐다보았다. 혼자 왔을 때는 쏜살같이 산으로 들어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는데, 이렇게 되면 나도 출세한 건가. 남편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송악산을 들어가니.

사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힘들 때도 있다. 특히 다리가 아파 천천히(그땐 기어가는 느낌이다) 걸어가는데 자동차들이 내 옆을 쌩쌩 지나가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느껴진다. 그때가 그랬다.

 

처음 사계리로 들어서서 방을 구하러 다닐 때와 사계리에서 자고 모슬포항까지 걸어서 갔을 때, 어림으로는 가까웠는데 실제로는 왜 그리 먼지 지루하고 힘들었다. 게다가 차들은 어쩜 그렇게 신나게 송악산으로 들어가는지, 도대체 저 산에 뭐가 있기에 저렇게 쏜살같이들 들어가나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말목장과 바다가 멋있게 바라다보이는 높은 해안선이 있을 뿐이다. 아래로는 기암절벽, 위에는 멋있는 말들이 어슬렁. 그리고 사계리가 일목요연하게 눈앞에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아마 사계리는 잘 모를 것이다. 용머리 해안이나 모슬포 항은 알아도 말이다. 모슬포항과 용머리 해안 가운데에 '사계리'라는 마을이 있다. 그리고 사계리에는 산방산도 있고 그 바다에는 형제섬도 있다. 또 하나 형제 섬이 보이는 콘도식 민박집도 있다.

 

 

서서히 해가 기우니 잠자리를 찾아야 할 시간. 그 새 휘황찬란한 펜션이 참 많이도 생겼다. 그 휘황찬란함에 반한 울신랑 한 펜션 앞에 차를 댄다. 물으니 오늘은 예약이 다 차서 방이 없댄다. 덜 찬란한 그 옆 집에 가 물으니, 5만원이란다. 나 은근히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하고 다른 데로 가자고 졸랐다.

"여기 말고 내가 꼭 가고 싶은 데가 있어, 그리로 가자."
"어디야? 그랬다가 없으면 어쩌라고. 여기도 몇 개 안 남았다는데…."
"글쎄 난 그 집을 꼭 가야만 해. 거기 가 봐서 방이 없다거나 방이 자기 맘에 안 들면 다시 오더라도, 난 그 집을 꼭 가 봐야만 한다구."

내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무조건 가자고 하면 이 남자 가끔 고집을 부린다. 적당히 보조를 맞추면서 밀어붙여야 못마땅한 듯 하면서 따라준다. 그래서 간 곳은 사계리 입구에 있는 콘도식민박집, 훼미리민박이다. 7년 만에 다시 찾았다. 그때는 이 집을 지은 지 얼마 안 되었고, 주위에 마땅한 숙박 시설도 없었다. 혼자라고 4만원짜리를 3만 5천원에 해 주었는데, 좀 과장하자면 내겐 화려한 왕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우선 깨끗했고, 그 다음은 침대에 누우면 형제섬이 있는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건 숫제 침대가 바다 한가운데에 턱하니 놓여있는 기분이었다. 그때 방을 정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에서 성게국이 궁금해 물으니, 성게를 넣고 끓인 미역국이라고 했다. 성게국을 먹고나니 김치가 반 정도 남아 있어, 돈을 내면서 어렵게 부탁을 했다.

"저어, 제가 남긴 김치 좀 싸 주시면 안 될까요?"
"김치요. 싸 드리지요."


난 가난한 여행자. 언제나 아침은 빵과 우유로 간단하게 해결했는데, 방에 있는 간이 부엌을 보고는 라면이 먹고 싶어졌던 것. 그런데 식당 주인은 내가 먹던 김치는 놔두고 새 김치를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다.

사실 방이 멋있긴 하지만 내 예상보다는 비쌌다. 겨우 잠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나와야 하는 여행자에겐 더욱 더. 이튿날 아침 배낭을 멘 나는 방과 특별한 작별인사를 했었다.

 

'아름다운 방아 고마웠다. 난 네가 늘 그리울 거야. 다음에 꼭 다시 올게.'

아무튼 나는 그 집을 찾았고 7년전 그 방(3층)을 새신랑에게 보였줬다. 흐음, 과연 마음에 들어했다. 다시 내려와 숙박비를 내고, 김치를 사러 갈 요량이었다. 또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그런데 김치를 사러 간다는 말을 들은 주인 아주머니, 정말 김치를 사러 가는 거냐고 물으신다.

"예, 라면이나 끓여먹으려구요."
"그럼, 우리 집에 묵은지가 있는데 맛은 없어요. 그래도 드시겠다면 갖다드릴게요. 우리 살림집은 여기가 아니고 저 오토바이를 타고 조금 가야하지만."
"주시겠다면 저흰 아주 좋지요."

방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는데 정말 김치를 가져오셨다. 예쁜 그릇에 가득 담긴 김치는 침이 넘어갈 정도로 맛있어 보였다. 우리는 라면을 끓여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그런데도 김치는 반이나 남아있었다. '이 맛있는 김치를 그냥 남겨 둘 수는 없지.' 나는 다시 내려가 아침에 끓여먹을 즉석 국을 사왔다.

여행을 여러날 다니다보면 진수성찬이라도 사먹는 밥에 질릴 때가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준비할 물품은 쌀과 고추장과 도시락용 구운김이다. 이것만 있으면 전 날 저녁을 먹고 남은 반찬을 적당히 싸다가 한 끼 정도는 해결할 수가 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훌륭한 아침밥를 해서 먹었다.

 

 

아침 일찍 용머리해안으로 출발. 아직 매표소 직원도 나오지 않은 시간에 도착했다. 용머리 해안은 마치 산방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처럼 산방산 바로 밑에 있다. 수천만년 동안 층층이 쌓인 사암층 암벽에다 180만 년 전 수중폭발에 의해 형성된 화산력 응회암층이 어우러진 해안 절경이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풍경은 한 바퀴 돌아보는데만 30분은 족히 걸린다. 용머리라는 이름은 언덕의 모양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인가 했더니 가족팀이 먼저 와 있었고, 해산물을 파는 아주머니들도 장사를 시작하기 전인지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벌써 나와 산방산을 앞에 두고 낚시를 하는 분도 있다. 묵묵히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모습이 꼭 도인 같아 보였다. 아직은 단체 관광객이 밀려들기 전이라 한적하고 상쾌했다. 그 거대한 풍경 속을 겨우 몇이 거닐고 있자니, 공룡이 등장하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마지막 돌계단을 딛고 올라와 다시 하멜선 쪽으로 갔다.

 

 

1653년 네덜란드 사람, 핸드릭 하멜이 타고왔다는 스패로우호크선. 그것을 원형축소하여 복원해 놓고, 안에는 그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았다는데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하멜선은 우람한 모습으로 용머리 해안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하멜선 우측으로는 검은 모래가 있는 해안선이 아침 해를 받아 빛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제주에는 10월 초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송악산 , #사계리, #용머리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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