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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첫 눈이 제법 많이 내린 다음날. 함라초당의 초입은 겨울 찬바람에 야생화의 흔적으로 쓸쓸함이 묻어났지만 아직도 그 자취는 그대로였다.
 
3년 만이다. 한창 여름의 절정을 꽃피웠던 3년 전 7월에 찾은 함라초당은 야생화의 향기가 그득한 곳이었다. 콘크리트에서 일상을 살아 온 사람에게는 들꽃이 귀한 꽃인 듯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은은함이 있었다.
 
그 흔적들이 궁금해 겨울의 문턱에서 무작정 발걸음을 옮긴 이 곳. 들꽃도 들꽃이지만 그 들꽃에 기대어 사람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건네는 주인장(배동문·함라초당 대표)의 마음씨가 더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돈 많이 버셨어요?”
 
툭 던진 기자의 질문이 참 무색하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를 알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던진 질문이라니···
 
‘도가 안정되면 돈이 된다’는 주인장의 철학처럼 그저 좋아서 큰 도시를 버리고 터를 잡은 이곳에 애착을 갖다보니 돈에 대한 욕심은 없어지고, 아니 애초부터 돈에 대한 애착은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부산이 고향인 주인장은 소위 말하는 지연, 혈연, 학연도 없는 익산을 선택한 지 올해로 9년째다. 그저 안사람이 자란 곳이 이곳이어서 찾기는 했지만 의지할 만한 곳은 없었다.
 
21세기의 모범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보니 땅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안사람이 들꽃을 좋아해 꽃을 심게 되었고, 그 꽃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자연스럽게 체험학습장이 되었다. 물론 도시를 버리고 자연으로 귀농하기까지는 준비작업도 있었지만 일단은 중심을 사람에 맞추었다. 그러니 그리 넉넉하지는 않아도 마음은 언제나 한 가득이다.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체험공간을 확대했다. 들꽃학교이다. 일반인부터 초등학생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산부인과에서는 산모들을 대상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 차도 마시고 꽃구경도 하며 안정을 유지한다. 돈 벌기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휴식이 될 수 있어 산모들의 나들이는 특히 더 아낀다.
 
“들꽃을 외우고 하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느낌이지요.”
체험활동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이 자연과 동화되는 모습이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한번은 한 학년을 대상으로 200여명의 학생들을 받은 적이 있는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급급해 아이들이 무엇을 알아 가는지도 몰라 다시는 많은 인원을 절대로 받지 않는단다.
 
계절마다 들꽃심기, 꽃차 마시기, 글 단풍 책갈피 만들기, 구절초 비누 만들기 등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다도를 통한 예절교육을 병행했다.
 
“체험학습이 끝나면 돌아가기 전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앞으로 농사지을 사람하고 물으면 손드는 학생들이 한명도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함라초당 같은 곳에서 살고 싶은 학생하고 손들어 보라면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어요. 우릴 어릴 적에도 그랬지만 농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지금의 아이들에게 있는 것 같아요. 야생화를 키우는 일도, 들꽃을 통한 체험학습장도 따지고 보면 농사일인데 고정관념이 문제겠지요.”
 
땅에 대한, 예전방식의 농사일도 이제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배동문씨가 사는 동네는 35여 가구가 오밀조밀 모여 있다. 함라초당의 구절차로 인해 그 마을 이름도 아홉마디 풀향기마을이 되었다.
 
좀 욕심을 내보자면 이 마을 한 가구당 10가지씩의 색다른 꽃을 심어 350여 가지의 꽃들을 피어나게 하고 자연스레 식물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농업도 이제는 이런 방식으로 조금은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일단은 크게 짓고 투자를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내용, 알맹이가 없으면 농업도 성공할 수가 없다.
 
즉, 화려한 시작에 치우치니 정작 중요한 사람이 빠졌다는 말이다. 사람이 꽃과 사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조성하고 마을 사람들이 생각을 같이 하면 우리 농업도 경쟁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배동문씨의 지론이다.
 

“경제가 힘들수록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지혜가 더 강해지기도 하지만 고난을 견디는 힘은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과 준비하는 자세에서 만들어지죠. 관심이 없고 변화에 대해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겉보기에는 다른 사람과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큰 차이로 나타납니다.”

 

미리 준비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함라초당이 그런 곳이다. 처음에는 야생화가 경쟁력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9년이 지난 지금은 큰 자랑이 없어도 사람들이 자연을 담으러 찾아온다.

 

꽃차를 팔고 체험학습을 통해 이익을 내는 것보다는 잊힌 향수들을 자연을 통해 끄집어내고 싶은 것이다. 처음 야트막한 야산을 가꾸어 함라초당을 만들었던 초심을 잃고 싶지 않다. 들꽃이며 올챙이, 작은 벌레들이 순리대로 찾아오는 곳. 그래서 사람도 그 자연에 녹아내려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겨울초입, 지천에 깔린 들꽃도 숨을 죽인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신목리 아홉마디 풀향기마을 옆쪽에 작은 산책로가 눈에 띈다. 함라초당으로 가는 입구이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상구재라는 이름의 모임공간으로 이곳에는 야생화도 있고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 은은한 꽃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여유도 있다.
 
특히 상구재에서 바라보는 왜소한 느티나무가 자꾸 시선을 잡아끄는데, 지난겨울 뿌리가 드러나 거의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작은 느티나무가 그 다음해 봄에 멀쩡히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원을 비는 나무라고 이름 짓고 ‘소비나’라 부른다.
 
상구재를 뒤로하고 한참을 위쪽으로 올라가다보니 안채가 나온다. 안채 앞 넓은 잔디밭과 구절초 꽃밭사이에 덩그러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소나무의 이름은 ‘기룡보살’이다.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땄다.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수많은 소나무들 중의 한그루이지만 함라초당과 인연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감싸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룡보살'나무 옆에 자리한 잔디밭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놀이공간이 된다. 이곳에 모여 족구도 하고 잔디밭에 앉아 간식도 먹으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따스한 계절을 보낸 이곳도 겨울이면 숨을 죽인다.
 

구절초 가을걷이를 끝내고 온돌방에 구절초 꽃잎을 15일간 말리는 작업을 하고 나면 겨울로 들어선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채비에 야생화의 모습은 흔적만 남겨두고 있지만 간간히 뒤늦게 핀 국화의 모습들이 흰 눈 속에서 화사함을 드러내고 향이 좋다는 편백나무는 혼자서 씨앗을 퍼트려 산책로 곳곳에 작은 나무들을 뿌려놓았다.

 

국화 중에서 가장 늦게 핀다는 금국은 노란 빛을 담고 언덕배기 쪽에 터를 잡았다. 보랏빛을 띤 쑥부쟁이랑, 꽃잎이 작은 갯국, 꽃이 지면 겨울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털머위도 간간히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연은 참 오묘하다. 보일 듯 말 듯 구석에 핀 들꽃을 통해 계절을 익히니 말이다.

따스한 꽃차 입 안 가득 꽉 찬 한 모금. 그래서 문득 또 가을이 된다.

 


태그:#함라초당, #배동문, #모형숙, #야생화,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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