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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낮 GM대우 점퍼를 입은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부평공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18일 낮 GM대우 점퍼를 입은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부평공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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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내가 'GM대우 12월 조업 중단'이라는 기사를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 내가 특별히 말을 안 하니까, 아내도 내 눈치만 보고 있는데…. 어떻게 말하나, 2년 동안 그렇게 고생시켰는데…."

인천 부평구 청천동 GM대우 부평공장의 생산직 노동자(정규직) 김형민(가명·50)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름살 많은 얼굴에 근심까지 더해져 매우 지쳐보였다. 그는 "많이 불안하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내 그는 어렵사리 '2001년 2월 19일'이라는 날짜를 내뱉었다. '대우 사태'로 정리 해고된 날이었다. "복직될 때까지 2년 가까이 '노가다'로 그나마 버텼는데"라며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면 가정파탄 나게 된다"고 전했다.

한동안 먼 곳을 바라보던 김씨는 "1989년 입사했는데, 처음 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20년 만에 처음 본 일은 부평공장 2공장이 한 달간 휴업하는 것과 신차 출시가 1년 늦춰지는 것이다. 김씨는 "'대우 사태' 때도 한 달 내내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18일 GM대우 부평공장 인근에서 만난 김씨의 한숨은 꽤 길었다. 두려움을 토로한 건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찾은 GM대우 부평공장과 그 주변지역엔 온통 불안함과 근심으로 가득했다.

썰렁한 GM대우 부평공장 앞... "난방 안 틀 정도로 어렵다"

18일 낮 GM대우 부평공장 앞 거리의 썰렁한 모습.
 18일 낮 GM대우 부평공장 앞 거리의 썰렁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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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부평공장 서문 앞에 도착한 이날 낮 12시, 점심시간을 이용해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보행자 신호가 파란불일 때, 공장 앞 4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엔 30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길을 건넜다.

거리엔 그보다 조금 많은 사람들이 식당이 몰려있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내 몇 명씩 짝을 이뤄 식당으로 흘러들어갔다. 몇몇 식당을 둘러보니 손님을 가득 채운 곳은 많지 않았다. 공장 내 구내식당이 있다고는 하지만 노동자 1만명이 넘는 대공장 앞 식당가의 풍경치고는 썰렁했다.

공장 주변에 나부끼는 펼침막은 싸늘한 분위기의 정체를 나타내고 있었다. 공장 쪽 울타리에는 'GM대우차를 타자', GM대우차 택시만 이용하자'라는 메시지가 선명했다. 맞은 편 펼침막에는 '외주화 저지, 해고자 복직'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생산직 노동자(정규직) 최형욱(가명·39)씨는 GM대우 내부 사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수출도 안 되고, 수출해도 대금을 못 받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얼마 전부터 온갖 비품 아껴쓰기를 한다. 복사할 때 이면지를 쓰고, 점심시간에 불을 끄고, 웬만큼 춥지 않으면 난방을 안 해준다. 또한 사장이 내일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경영설명회를 연다. 원래 연초에 하는 건데, 이례적이다. 직원들의 불안감을 없애려는 목적 같다."

이번 경영설명회가 불안감을 없애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최씨의 생각이다. 조업 중단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다. 중형차인 토스카·윈스톰을 생산하는 2공장은 12월 내내 휴업한다. 2009년 1월엔 단 8일 가동될 예정이다. 칼로스·젠트라 등 소형차를 생산하는 1공장은 12월 22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쉰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자료를 보면, 전체 생산의 90% 이상을 수출하는 GM대우의 하락세가 눈에 띈다. GM대우는 올해 1~10월 환율 상승에도 작년보다 6.2% 줄어든 62만860대를 수출하는 데 그쳤다. 특히, 10월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3%가 줄어든 5만9061대를 수출했다.

사무직도 어렵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 불안 느껴

18일 저녁, 잔업이 사라진 인천 부평구 청천동 GM대우 부평공장을 인근 아파트에서 바라본 모습. 공장의 모습이 불빛을 내뿜고 있는 주변 아파트와 달리 매우 어두운 모습이다.
▲ 어두운 GM대우 18일 저녁, 잔업이 사라진 인천 부평구 청천동 GM대우 부평공장을 인근 아파트에서 바라본 모습. 공장의 모습이 불빛을 내뿜고 있는 주변 아파트와 달리 매우 어두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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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업 중단과 다소 거리가 먼 사무직 노동자들 역시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체감하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생산관리부의 김동환(가명·34) 대리는 "법인카드가 끊겨 회식을 못하고, 해외 출장이 거의 취소됐다, 또 GM이 어렵다고 하니 직원들이 술렁이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관련 부서의 한 노동자는 "신차 출시가 1년 미뤄지다 보니, 기술연구소가 멈춰버리고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사실상 어떻게 일을 해야 할 지 모르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미 내년 1~2월에 예정돼 있던 1공장 신차 라인 공사도 무기한 연기됐다.

조업 중단은 생산직 노동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그중에서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힘들다. 한 달 전부터 사상 처음으로 잔업·특근이 모두 사라진 탓에 5000여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활은 이미 버겁다.

조립 1부(1공장)에서 2년6개월째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박승현(가명·29)씨는 "2시간 잔업으로 하루 10시간 일하고, 주말 하루 특근해서 한 달에 130만원을 벌었지만, 감산에 들어간 이후로 버는 돈은 100만원도 채 안 된다"고 밝혔다.

공장이 쉬는 동안 보수의 70%만 받게 되니 생활은 더 어렵다. 박씨는 "공장에서는 '알바 하겠다', '노가다라도 하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나마 1공장은 사정이 낫다. 2006년 6월 이후 차체 2부(2공장)에서 일했다는 이수현(가명·27)씨는 "막막하다"고 전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자르고 생산대수를 줄이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2공장은 예전부터 잘 돌아가지 않았다. 오래 일했던 사람들은 IMF 때보다 더 심하다고 한다. 더 나빠질 것 같은데, 솔직히 언제 잘릴지 기다리고 있다."

협력사·인근 상가 "GM대우 망하면 다 망한다"

GM대우 조업중단의 영향은 비단 부평공장 안 노동자들에게만 끼치는 게 아니다. 인근 부평공단·남동공단의 GM대우 협력회사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GM대우와 협력사들의 생산액은 인천 지역 총생산의 25%에 이른다.

계기판 등을 만드는 S사의 최아무개 관리팀 관계자는 "GM대우 차가 안 팔리면 우리 회사 부품도 안 나가고, 또한 신차 프로젝트에 우리도 참여하고 있는데, 출시가 늦어져 피해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한 협력회사의 생산직 노동자 김철규(가명·45)씨는 "12월부터 석 달 동안 일하는 날은 며칠 안 된다"며 "GM대우는 대기업이라 70% 유급 휴업이지만, 우리는 월급이 아예 안 나온다, 어떻게 겨울을 견딜지 대책이 안 선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문을 닫을 곳은 어쩌면 GM대우 인근 식당·상가일지 모른다. Y슈퍼마켓의 주인은 "하루 50만원이던 매출이 10만원으로 줄었다, 그것도 대부분 마진이 없는 담배"라며 "한 달 전 가게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윤현순(59)씨는 "빚을 내서 세금 내고 있다, 매출이 반으로 줄었는데, 재료비는 오르고 집 주인이 집세도 올려주라고 하니, 죽기 일보 직전"이라며 "이미 망한 곳도 많이 있다, GM대우 망하면 여기 다 죽는다"고 강조했다.

이날 저녁 부평공장 인근 풍경은 그 어느때보다 이곳의 사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불황이면 소주가 많이 팔린다고 하지만, 이곳 술집은 한산했다. 노동자들이 지갑을 닫은 이유도 있지만, 잔업이 없어져 이들의 근무 시간이 오후 3시 50분까지로 줄어든 탓이 크다.

저녁 7시에 일을 시작하는 야간 근무 노동자들이 출근하기까지 부평공장 인근은 싸늘했다. 그 시각 인근 아파트에서 불 꺼진 공장을 내려다보니, 노동자들과 상인들의 한숨까지 더해져 더 캄캄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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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GM대우, #조업중단, #비정규직, #부평,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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