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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겉모습만 봐서는 차라리 시집에 가까운 이 책은 사실 시집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작가 르 클레지오의 소설 <오로라의 집>은 신비스러운 이미지와 영감으로 가득찬 한 편의 시이면서 동화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명의 이기를 고발하는 준엄한 경고문이기도 하죠. 

 

이 책에는 <오로라의 집> <세상밖으로 또는 오를라몽드> 두 편의 짧은 소설이 담겨있습니다.

 

'오로라의 집'은 주인공이 소년시절에 보았던 신비스러웠던 집 '빌라 오로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빌라 오로라'라는 이름은 사람들끼리 불려지던 이름이죠. 새벽의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산뜻한 진주빛 구름을 띤 집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름마저 무척 낭만적이고 아름답죠.

 

주인공 '나'는 이 신비스러운 빌라 오로라에서 유년시절의 무한하고도 아름다운 꿈을 꾸게 됩니다. 마치 엄마의 자궁안에서 커가는 생명처럼 아직 일정한 형체를 띠지 않는 가능성과 꿈이 빌라 오로라에서 무르익어갑니다. 티티새와 들고양이들, 담쟁이 넝쿨이 가득한 이곳에서 소년은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신비, 고요와 정적의 속삼임을 듣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소년이 더 이상 '소년'이 아니게 되었을 때 그는 다시 빌라 오로라를 찾게 됩니다. 몇 년동안이나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이곳은 이제 철거를 앞두고 쇠락하기 직전의 위태로움에 처하게 되죠. 그가 소년이었던 시절 그렇게나 궁금해 했던 빌라 오로라의 여주인은 마지막 꺼져가는 불의 눈빛으로 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곳을 몰래 나오게 됩니다.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그는 깨닫게 됩니다. 빌라오로라를 변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납득했다. 내 세계에서 멀어지고 눈을 돌림으로써 내 세계가 변하도록 내버려 둔 이는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나는 다른 세상을 바라보았고 다른 세상에 존재했다. 오로라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36쪽)

 

<세상밖으로 또는 오를라몽드>에도 소녀가 등장합니다. 폭약 폭발로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집 '오를라몽드'의 소녀는 남몰래 이 집에 숨어듭니다. 소녀가 이 집을 사랑하는 이유는 종합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햇빛을 전해주기 위해서죠.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지만 바다와 하늘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 바다와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의 테라스를 소녀는 무척이나 사랑하죠. 그곳에 앉아 눈을 감고 몸안까지 들어오는 열기를 잘 간직했다가 입원실에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면 햇빛과 바다색을 엄마에게 전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폭탄이 터지는 날 소녀는 몰래 이 집에 숨어듭니다. 자신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아는 친구에게 절대 함구할 것을 부탁했지만 소녀는 마지막에 철거대원들에게 구조되고 맙니다. 결국 그 집을 두고 떠나와야 하는 소녀는 물끄러미 집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나고 말죠.

 

"왜 그 사람들은 전부 부수고 싶어하는 걸까… 그들은 아마도 땅 전체를, 바위들을, 산들을 완전히 부수어버릴 것이고 잔해와 먼지 아래에 바다와 하늘을 묻어버릴 것이다." (104쪽)

 

짧은 줄거리, 간략한 대사들로 함축되어있지만 이 두 편의 소설은 자연의 파괴, 물질만능주의에 젖어있는 현대인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 두 주인공은 끝내 그 거대한 병폐에 이기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오로라의 집>의 주인공이 세상의 변화에 그저 고개를 숙일뿐인 '어른'이라면 <세상밖으로…>에 나오는 소녀는 최소한 용감하게 맞서싸우는 용기를 지니는 '어린이'라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아마 우리 순수의 원형은 어린시절 우리가 꿈꿔온 세계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끝으로 이 책에는 프랑스 갈리마르에서 부록으로 수록한 '당신이 꿈꿔온 집은?'이라는 제목으로 10가지 항목의 테스트가 나와 있습니다. 재미삼아 시작해 보지만 막상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

 

질문: 우리 집에서 있었으면 하는 동물은? *

1. 정원에서 뛰어다니는 그레이하운드  

2. 금붕어들과 아주 작은 개

3. 커다란 개, 암탉들과 양 떼

4. 거실에서 우아하게 기지개 펴는 고양이와 집을 지켜줄 개.

 

만약 이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면 얼마나 난감할까요. 이외에도 '내가 생각하는 부엌은?' '나의 이웃들은?' '당신이 꿈꿔온 욕실은?'…과 같은 질문이 이어집니다. 이게 의외로 어렵답니다. '살고싶은 집'이 아니라 '사고싶은 집'만 생각하신 분들에게는 아마도요.

덧붙이는 글 | 오로라의 집/ 르 클레지오 지음, 조남선 옮김/ 문학에디션 뿔/7천원


오로라의 집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조남선 옮김, 뿔(웅진)(2008)


태그:#르 클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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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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